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야권의 후보는 한나라당에 비해 명료하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그리고 희망제작소 등 시민운동을 주도해온 박원순 변호사와, 박영선·추미애·천정배 의원과 신계륜 전 의원의 4파전으로 치러지는 9월25일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의 승자가 경쟁하는 구도다. 선거관리위원회 후보자 등록 기간(10월6~7일) 전인 10월3일께 박 변호사와 민주당 후보, 민주노동당 후보가 단일화를 위한 2차 경선을 통해 범야권 후보를 선출할 계획이다.
박원순, 민주당 입당 가능성은 낮아
큰 이변이 없는 한 박 변호사가 범야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박 변호사는 ‘안철수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행정, 새로운 인물을 갈망하는 바람을 타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9월6일 박 변호사 지지를 표명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뒤 발표된 몇몇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 원장의 지지층 상당수가 박 변호사 쪽으로 옮아간 것이 확인된다. 이후 박 변호사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서 수직 상승했다. 추석 연휴가 지난 뒤에도 한나라당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큰 격차를 보이며 우위를 이어가고 있다.
둘째, 박 변호사는 범야권 후보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는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포함해 굵직한 선거 때마다 야권의 영입 대상 1순위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입각 제의를 받은 바 있다. 게다가 민주당 안에서 다른 야당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용이하면서도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거론되던 한명숙 전 총리가 출마하지 않음에 따라 ’범야권’이라는 타이틀을 독점할 수 있게 됐다. 한 전 총리의 불출마도, 안 원장의 지지 선언만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박 변호사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한 전 총리는 불출마 선언문에서 “국민들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정치권의 ‘변화’와 2012년 정권 교체”라고 밝혀, 변화를 통해 통합의 디딤돌을 놓고 정권 교체를 이루자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 변호사는 추석 연휴 직후인 9월14일과 15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났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그리고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는 노회찬 고문과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제1야당인 민주당이 박 변호사를 반드시 주저앉힐 이유가 없다. 민주당이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박 변호사가 민주당 후보로 본선에 나서주는 것이지만, 그럴 경우 얻는 게 있는 반면 잃는 것도 적지 않다. 큰 선거를 수십 차례 치러본 정당의 경험과 조직과 자금의 지원, 호남 출신 유권자 등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안정적 지지를 끌어올 수 있는 반면, ‘반한나라당 비민주당 성향의 무당파층’이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시민후보, 범야권 단일후보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 입당해 다른 민주당 후보와 경쟁하거나, 범야권 단일후보가 된 뒤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박 변호사는 민주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 “민주당이 다른 여러 정당들과 함께 통합하고 여의도 정치로 대변되는 정치를 혁신하려는 움직임이 조금 더 본격화되면 함께할 용의가 있다”며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그런 움직임의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 신인이라는 약점 보완해야민주당이 범야권 단일후보 2차 경선에 앞서 당내 ‘플레이오프’를 치르지만, 반드시 민주당 후보를 범야권 후보로 만들기 위해 한나라당과 본선을 치르듯 박 변호사를 꺾으려 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손학규 대표 등 지도부가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꼽히던 한 전 총리의 출마를 위해 쏟은 노력과, 한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이후 경선 모양새를 갖추려고 박영선·추미애 의원의 출마에 쏟은 열정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경선을 하는 이유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통합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제1야당의 자존감 확인 성격이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예상치 못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안전판을 마련해두자는 성격이 더 짙은 것 같다. 만일의 사태란 유력한 범야권 단일후보로 거론되는 박 변호사가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의 검증을 빙자한 정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을 말한다.
민주당 내에서 나오는 박 변호사에 대한 우려는 그가 대중적 지지가 높다고 하더라도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없는 정치 신인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게다가 시민운동가 출신이기 때문에 유권자가 들이대는 잣대가 보통의 정치인보다 더 엄격할 수 있다. 회색이나 어두운 색 계통의 옷에 묻은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새하얀 옷은 작은 얼룩도 도드라져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박원순의 정체’라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 참여연대 시절의 활동이나 국가보안법에 대한 견해를 놓고 이념 공세를 펼치고 있는 극우 성향의 조갑제닷컴은 논외로 치더라도, 박 변호사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에서 시민들이 기대하는 모습과 다른 부분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지지층이 흔들릴 수 있다. 대기업 사외이사 참여나 재산 관련 문제는 이미 거론되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가정보원에서 박원순 변호사와 관련해 준비하는 게 몇 가지 있고 곧 터뜨린다는 말이 있다”고 귀띔했다. 국정원은 2009년 박 변호사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패한 악연이 있다. 9월16일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박 변호사 쪽은 “박 변호사가 살아온 삶이 있어 큰 줄기에서는 걱정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언제 조직적인 공세가 본격화할지 예의주시하며 ‘고정 레퍼토리’에 대해서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경선 후보 4명 가운데 범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박 변호사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큰 이는 박영선 의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천정배 최고위원이나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출신의 추미애 의원, 그리고 14대 총선 때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됐고 조순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지사를 지낸 바 있는 신계륜 전 의원에 비해 중량감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신선한 이미지를 갖춘데다 성실한 의정 활동으로 인지도와 지지도를 꾸준히 높여왔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박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와 친노계 등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서울에는 지역구가 48개 있는데 이인영·우상호·이미경 위원장 등 25명의 지역위원장이 지지를 표명했다.
민주당은 박영선 의원 내세울 가능성 커
민주당은 범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면 좋겠지만, 안 되더라도 경선다운 경선을 치러야 본선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비롯해 몇 차례의 재보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야권의 단일화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것은 범야권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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