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 분수대에서 초등학생들의 물놀이가 한창이다. 광장 분수대에서의 물놀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거기서 그것밖에 할 수 없느냐는 것이 문제다. 한겨레21 김정효
광장은 ‘넓은 마당’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광화문광장’은 특이한 또는 기형적 공간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광장과는 사뭇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은 광화문 앞에 있는 세종로라는 큰길의 가운데에 조성된 긴 마당을 뜻한다. 넓다기보다는 길기 때문에 사실 이곳은 광장이라고 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또한 세종로의 복판에 있기 때문에 ‘세종로광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이처럼 광화문광장은 그 이름부터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다. 광화문광장은 대단히 중요한 곳이고, 그만큼 우리는 그 문제를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침수에 속수무책인 광화문 광장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광화문광장은 서울 도심에서 이뤄진 획기적인 개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이 만들어 일본 제국의 장교이던 박정희가 자동차가 완전히 지배하는 길로 개조한 세종로의 가운데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노닐 수 있는 마당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 길을 사람들이 걸어서 건넌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오가며 주변 경관을 즐기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더욱이 그러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일이 모두 가능해졌다.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은 여전히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통해 사회의 발전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요컨대 공간의 문제, 특히 공적 공간의 문제는 결코 공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 이 점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적 공간을 개혁하는 것은 공적 공간을 왜곡하는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다. 공적 공간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와 연관해서 이해해야 비로소 그 개혁의 방도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광화문광장의 문제는 생태적·문화적·정치적 차원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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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광화문광장의 생태적 개혁. 현재 광화문광장은 돌로 덮인 마당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돌들을 시멘트로 고정해놓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광화문광장은 뜨거운 햇빛을 그대로 반사할 뿐만 아니라 물이 전혀 스며들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돌 마당의 정체는 ‘시멘트 마당’인 것이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침수다. 지난해 여름, 광화문광장은 침수로 큰 논란을 빚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도심의 시멘트화’를 꼽았다. 인왕산과 백악산 등 주변 산들의 중턱부터 흙을 볼 수 없을 지경으로 아스팔트·보도블록·콘크리트로 뒤덮인 상황에서 광화문광장의 시멘트화를 강행해 심각한 침수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광화문광장은 물이 스며들고 풀이 자랄 수 있는 곳으로 크게 개혁돼야 한다. 광화문광장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른 반생태 도시인 서울의 문제를 해결하는 생태적 개혁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민주주의 위기의 상징적 공간둘째, 광화문광장의 문화적 개혁. 현재 광화문광장은 긴 돌·시멘트 바닥 위에 이순신 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이 놓인 기이한 공간이며, 무서운 이순신 장군상 앞에는 아이들이 들어가서 노는 분수가 설치된 부조화의 공간이다. 이 때문에 올여름 광화문광장은 건축가들이 뽑은 최악의 공간으로 선정됐다. 광화문광장은 비록 세종로의 가운데에 설치된 긴 마당이기는 해도 서울의 공간문화를 이끄는 곳이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광화문광장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그 사람들에게 광화문광장은 멋진 곳으로 여겨져야 할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순신 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광화문광장을 완전히 빈 곳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광화문광장의 어디서나 광화문과 백악산을 잘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광화문광장과 광화문을 직접 잇는 건널목을 만들어야 한다. 이름은 광화문광장이지만 이곳에서 광화문으로 가려면 서쪽은 네 번의 건널목을 지나야 하고, 동쪽은 네 번의 건널목을 지나거나 두 번 건널목을 지나고 한 번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광화문광장과 광화문의 문화적 통합은 이뤄질 수 없다. 끝으로 문화부와 미국 대사관 건물을 시민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 예컨대 문화부 건물을 한글박물관으로, 미 대사관 건물을 어린이도서관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셋째, 광화문광장의 정치적 개혁. 현재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광장이 아니라 통치의 광장이다. 서구에서 잘 볼 수 있듯이, 민주국가에서 광장은 시민의 주권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행사되는 무정형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광장 이용을 민주국가의 중요한 지표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광화문광장은 지금 우리가 이 나라의 곳곳에서 겪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명박과 오세훈으로 대표되는 한나라당 정권은 광화문광장의 자유로운 이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이 억압되고 통제되는 곳이다. 매일 경찰 수백 명이 광화문광장 안팎에 배치돼 오가는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많은 시민단체들이 크게 고생해서 광화문광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한나라당 정권은 여전히 시민의 주권을 억압하고 광화문광장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정권은 자신의 능력을 치장하고 과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광화문광장을 활용하고 있다. ‘광복절 기념식’을 이곳에서 여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본래 세종로 일대는 미 대사관 때문에 지독한 통제의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한나라당 정권의 반민주성 때문에 심각한 정치적 통제와 과시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큰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곳광화문광장은 아직 여러 면에서 미흡하지만 사실 적잖은 성과이며 큰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곳이다. 광화문광장은 하루빨리 반민주성·반문화성·반생태성의 문제를 개혁해 생태문화의 광장이자 생태민주의 광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 과제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전 서구에서 확인된 상식을 지금 여기에서 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식조차 정치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억제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다. 광화문광장이 생태문화의 광장이 되려면 우선 생태민주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광화문광장이 도심에서 시민의 주권과 자연의 회복을 구현하는 곳이 된다면 그 자체로 중요한 세계적인 생태문화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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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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