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가 안 돼.”
구석구석 돌아보는 김 사장을 보며 이 사장이 볼멘소리를 한다.
“요즘도요?”
“누가 슈퍼 와, 다 마트 가지. 일수가 자꾸 밀려.”
“우리한테 갖다 써요. 그쪽 거래 그만하고.”
이 사장이 웃는다.
“그게 쉽게 되나.”
맞다. 쉽게 되지 않는다. 일수가 하루라도 밀리면 다시 빌려야 하는 게 일수 쪽의 생리다. 30일, 60일, 100일 등의 단위로 이자를 붙여 내야 하는 일수를 단 하루라도 밀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100만원을 빌려 1만2천원을 하루하루 갚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한 게 2년 전이다. 그런데 원금에 이자가 붙어 벌써 500만원을 넘었다. 일수가 밀린다는 것은 1만∼2만원의 수익도 올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대형마트가 싹쓸이하는 형편에 그런 날은 늘어간다.
“누구?”
이 사장은 돈을 다 세고 나서야 낯선 인기척을 느낄 여유가 생겼다. 메론맛 하드 하나를 건넨다.
“응, 우리 헤드.”
‘헤드’는 대부업자의 똘마니를 뜻하는 은어다. 기자는 (주)불곰대부의 OJT(직장 내 훈련) 중이었다. 지난주 추심에 이어 이번주는 대부업 이야기다.
(주)불곰대부(이하 불곰)다. 불곰은 추심업이 주된 업무다. 대부가 부수입원이다. 대부업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라는 이름을 단 업체들은 대개 대부가 주다. 빌려준 돈을 추심하며 자금을 늘려가는 것이 대부업체의 일이다. 불곰의 김 사장이 추심업체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대부업으로 자리잡으려면 ‘중치’(10억원 이상의 사채업자를 뜻하는 은어. 서울 명동이나 강남에서 많이 활동) 정도의 전주(錢主)가 뒤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 김 사장의 뒤에 전주가 있긴 하지만 ‘잔치’(5억원 미만의 사채업자)여서 큰 구실을 하지는 못한다.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김 사장의 화끈한 성격도 한몫한다. 전주를 모시려면 간, 쓸개를 빼줘야 한다. 김 사장은 그렇지 못하다.
서민금융보다 친숙한 불법 대출 광고“안산 갈 일 있는데 나가지?”
김 사장의 권유에 따라나선 경기 안산의 한 주택가 행복마트는 말이 마트일 뿐 동네 구멍가게였다. 오늘 일이 추심이 아니라 대부라는 건 돈을 건넬 때 알았다. 김 사장이 직접 채무자를 찾은 것은 남편과 12시간 맞교대를 하는 이 사장을 배려해서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른바 ‘실사’를 하려는 것이다. 김 사장의 2년 단골인 이 사장은 대출금 상환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그런데 2개월 전 상환 연기를 요청했다. 김 사장은 표시 나지 않게 현장을 둘러봤다. 하지만 이 사장도 김 사장이 직접 온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300만원을 빌려준 김 사장은 한 달 안에 330만원을 돌려받을 것이다. 10% 이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사장이 보름 안에 주느냐, 한 달을 채우고 주느냐, 두 달이 다 돼 주느냐에 따라 이율은 수십%에서 수백%까지 천차만별이다. 미등록업체의 대부업은 무조건 불법이다. 김 사장이 선이자로 돈을 떼지 않고 따로 담보를 요구하지 않아 단골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불법은 불법이다. 미등록업체의 특성상 이율을 어기는 것은 두렵지 않다. 이 모든 상황을 이 사장은 안다. 이 사장은 일단 300만원의 일부로 일수를 막고, 떨어진 아이스크림과 새우깡, 오징어집을 채워놓을 것이다.
이 사장 부부는 애초 왜 ‘햇살론’ 등 서민금융을 이용하지 못했을까. 불곰에서 나온 지난 5월 말 이 사장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사장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대출 문자나 대문 앞에 쌓이는 일수 전단이 서민금융보다 더 가까웠다. 하루 종일 틀어놓은 케이블 방송에서 10초가 멀다 하고 튀어나오는 “자격 조건 없이 10초면 대출”이라는 말이 더 친근했다. 실제로 대출은 쉬웠다. 그런데 손쉽게 빌린 돈은 이자 갚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약탈적 대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일수를 끌어왔다. 빚은 하루가 멀다 하고 늘고 있다. 부부가 24시간을 얼굴 볼 틈 없이 일해도 이자를 갚기 버겁다. “공부 잘하는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면” 마트는 문을 닫을 것이다. “가게 보증금과 현재의 주택 전세 보증금을 합하면 지금의 빚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사장은 말한다. 내년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나마 일수는 김 사장이 있으니까(막는다)”라고 이 사장은 김 사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해한다. 김 사장 옆에 앉은 헤드는 헤드가 돈다.
이 사장처럼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서민들은 221만 명(2010년 12월 기준)에 이른다. 이는 전체 등록 대부업체 1만4014개 가운데 금융감독원에 자료를 제출한 절반도 안 되는 6774개 업체를 기준으로 한 수치다. 물론 불곰 같은 미등록 대부업체는 산정하지 않았다. 수백만 명에 이를 이 사장같은 이들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채무자 57%가 회사원불곰의 대부 업무 대상 가운데 이 사장 같은 자영업자보다 더 많은 게 회사원이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221만 명 가운데 56.8%가 회사원이고 21.2%가 자영업자다. 불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불곰 사무실이 굳이 임대료가 비싼 도심 주변부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곰은 번듯한 15층짜리 오피스텔 빌딩에 있다. 원빈 ‘아저씨’가 지키는 전당포의 음습함과는 거리가 멀다. 벽면에는 깔끔하게 일정이 적혀 있다. ‘채권 압류 및 추심명령 결정문’ ‘제3채무자진술서-열람’ 등이 적힌 일정표는 그 자체로 그럴싸하다. 책상 5개가 오피스 가구점에서 맞춘 듯 도열해 있고, 그 끝에 김 사장이 앉아 있다.
“아무 책상에나 앉아.”
김 사장이 출근 첫날 기자게 던진 첫마디였다. 김 사장의 책상을 뺀 4개 모두 누군가 사용하는 듯 추심 서류들로 가득했다. 김 사장은 “빈 책상이야”라고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당시에는 위세에 눌려 이유를 묻지는 못했다.
처음 출근한 지 사흘 만에 법원 추심을 마치고 복귀한 직후였다.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럼요. 검색해보시면 알겠지만, 우리는 등록된 업체예요.” 거짓말이다. 김 사장은 대출 상담할 때만은 목소리를 바꿨다. 추심처럼 대부의 노하우를 몸으로 보여줬다. 전화 통화인데도 표정뿐만 아니라 눈빛도 달랐다. 걸려든 채무자를 ‘고객’으로 만들려고 불혹의 김 사장은 재주를 넘고 애교를 부렸다.
상대방에게 제시하는 대출 조건은 법정 이율 연 44%였다. 역시 거짓말이다. 그날 걸려온 전화는 급전을 빌리려는 듯했다. 3시간 뒤로 약속을 잡았다. 상대방에게 인감, 주민등록등·초본, 임대차계약서 등을 준비시켰다. 약속 장소는 사무실 인근 커피전문점이었다. 곧바로 사무실로 들이지 않는다. 믿을 만하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는 밖에서 만나는 게 원칙이다. 혹시 모를 단속을 우려해서다. 믿을 만하다는 판단 기준은? 그것은, 감이다. 단속 대비도 철저하다. 김 사장은 불곰을 미등록으로 운영하는 대신 다른 등록업체에 팀원으로 등록돼 있다. 물론 단속받은 적은 없다.
대출 약속을 위해 채무자를 만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김 사장 혼자 처리했다. 1시간쯤 지난 뒤 회사원과 함께 사무실로 왔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딸의 병원비를 대다가 월급으로는 감당하지 못해” 돈을 빌리러 불곰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믿지 않았다. 그의 감으로는 주식이든 도박이든 깔끔하지 않은 구석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김 사장에게 진짜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다. 김 사장은 금감원 자료에 나온 ‘생활비 충당 43.3%’의 비율을 믿지 않는다. 200만원을 손에 쥔 그 회사원은 한 달 뒤 230만원을 갚아야 한다. 처음 통화와 다른 이율로 약속된다는 것은 따로 만난 장소에서 이미 알려진 듯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그녀는 사무실을 나섰다.
워런 버핏 꿈꾸는 불법 대부업자
“옷 좀 깔끔하게 입고 와. 젊은 아줌마가 돈을 빌리러 왔는데 시커먼 놈이 앉아 있는데다 너저분하면 무서워서 누가 거래하려고 하겠어. 왜 돈 들여 책상을 들여놨겠어. 화분도 그렇고. 여자 사원이 있는 것처럼 깔끔해야 돌아서지 않지.”
빈 책상, 사무실에 커피 향이 배게 하는 커피메이커, 책상에 놓인 화분 따위는 모두 회사원들을 대출 고객으로 끌어들이려는 장식이다. 대부업을 이용하는 직장인이 늘고, 대부업체끼리의 경쟁이 심해지자 김 사장이 고안해낸 노하우다.
김 사장은 최근 카드대납에도 공을 들인다. 정보지 광고가 가장 효과를 보는 것이 회사원들의 카드대납이다. 카드대납은 카드가 연체돼 막혔거나 막힐 상황에 놓인 채무자 대신 카드사에 돈을 납부하고 한도액이 다시 설정되면 약속한 돈을 가져가는 것이다. 수수료는 보통 10~15%를 뗀다. 돈이 급한 채무자는 합리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달 잔액이 없는 상황이 오면 또다시 똑같은 곤경에 처해 결국 이자를 갚지 못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건 급전, 일수나 마찬가지다. 대부업계에 모습을 보이는 채무자들은 돈이 궁해지면 이성을 잠시 잃는다. 신용등급 유지나 카드 사용이 중요한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김 사장은 “광고 때문인지 점점 늘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지난 5월16일 발표한 자료를 봐도 불과 6개월 전에 비해 대부업 거래자가 31만 명이 늘고, 대출금은 11%(7497억원)가 늘었다.
김 사장이 추심에 비해 고객관리에 손이 많이 가는 대부업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에게 대부업은 미래 ‘성장’ 동력이다. 김 사장은 “종잣돈만 모이면 추심은 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에겐 이미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투자된 부동산 건설이 한 건 있고, 주식도 조금씩 투자량을 늘려가고 있다. 펀드 운용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는 토요일을 제외하면 그는 실물로, 이론으로 돈 공부를 한다. 사무실 구석 수납 공간에서 간이 침대를 꺼내 즐기는 쪽잠도 하루 네댓 시간뿐이다. 김 사장은 올 가을이면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리라 기대한다. ‘중치’가 되면 더 큰 돈을 주무르는 펀드 전문가가 될 것이다. “그쯤 되면 대부업자가 아니라 사업가지. 아니 워런 버핏이 될 거야.” 김 사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돈 앞에서 목숨 건 그의 노력을 보면 그 허세가 공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의 인식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스스로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추심도 대부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직업의식이 그 안에 이미 자리잡았다.
돈 떼인 추심·대부업체의 김 사장불곰을 나온 뒤 다시 후속 취재를 위해 불곰에 연락했을 때 김 사장은 꽤나 격앙돼 있었다. 카드대납을 해준 뒤 카드가 살아나지 않아 직접 추심에 나섰던 ‘그’ 대표이사(865호 표지이야기 ‘피도 눈물도 없는 추심의 세계에 뛰어들다’ 참조), “팔라우” “FDA” 운운한 자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특허를 앞세워 벤처기업으로 위장해 투자금을 끌어모은 뒤 잠적했다. 결국 김 사장은 돈 일부를 떼였다. “다 망해가는 ‘산소호흡기’(원금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였는데 사발 푸는 것에 넘어가서 낚였어.”
대부업체에서는 종종 있는 일로 업계에서는 떼일 확률을 40%까지 잡는다. 김 사장 처지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돈’물의 왕국에서 목숨을 건 무규칙 이종격투기는 계속된다. 먼저 가져가는 게 승자다. 그곳에서 몸담고 있는 대부업 선수들은 적게는 4만 명, 많게는 1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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