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학번 정아무개(28)씨에게 대학은 문이 없다. 남들에게 넓게 열린 정문이 정씨에게만 보이지 않는다. 봄이 온 캠퍼스도 정씨에게는 높은 담장으로만 둘러친 폐쇄의 공간이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갈 수 있는 장소도 아니다. 등록금 낼 돈이 없는 이에게 대학은 ‘남의 나라’였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적금 두 개 깨고 집도 줄여야 하나” </font></font>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간 정씨는 2004년 2학년 1학기분 등록금을 대지 못했다. 학교 행정 용어로, ‘미등록 제적’됐다. 중간고사까지 마쳤는데 학교에서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며 정씨를 제적시켰다. 당시 등록금은 200만원 중반대였다. 시쳇말로 ‘1천만원 등록금 시대’에 견줘보면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정씨는 이마저도 버거웠다. 어머니 혼자 식당일이나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리는 살림에 빚까지 있었다. 1학년 1·2학기는 등록금 대출로 버텼는데, 결국 이자도 제때 못 낸 정씨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군 입대를 한 정씨는 2007년 1월 제대한 뒤 최근까지 아르바이트로 살아왔다. 빚을 갚고 대출금을 갚다 보니 모아놓은 돈도 없다. 정씨는 “지금도 대학을 못 접었다. 한이 된 거 같다. 다시 공부하고 싶은데 등록금이 너무 비싸 재입학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이 등록금은 뛰어올랐다. 등록금에 더해 재입학금도 따로 붙는다. 정씨는 “구직을 하고 싶지만 학력이 계속 걸린다. 다시 등록금 대출을 받을 생각도 해봤지만 과거 대출금 갚느라 허비한 몇 년을 생각하면 그러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던 정씨였기에 지금의 상황은 더욱 아프다. “정부 정책이나 복지 전반에 실망이 크다. 국가에 환멸을 느낀다.”
살인적인 등록금이 남긴 상처는 세대를 넘나든다. 안정된 직업을 가진 50대 중산층에게도 자녀의 대학 등록금은 가계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국회 4급 보좌관 박수권(52·가명)씨가 그런 경우다. “1천만원짜리 적금 두 개를 깼다. 주말이면 거르지 않던 외식도 포기했다. 자식 둘을 명문대에 보냈다는 만족과 자부심은 순간이었다.”
박씨의 학비 부담은 올해 들어 2배로 늘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를 다니다 입대한 아들이 올해 2학년으로 복학했기 때문이다.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는 2학년생 딸의 학비 450만원에 아들 학비 400만원을 대기 위해 연초에 1천만원짜리 적금을 깼다. 15년째 타온 헌 승용차를 새 차로 바꾸려고 매월 30여만원씩 붓던 적금이었다. 1학기 학비를 대는 데만 이렇다.
연소득이 7천만원 정도로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2010년 월 400만원)의 150%에 육박했지만, 1년에 1700만원이나 되는 두 자녀의 학비를 대려면 식비와 의복비, 노후를 대비한 저축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딸은 가계 부담을 덜어주려고 영화관에서 시급 5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1년 가까이 하고 있다. 박씨는 “이 생활을 2년 넘게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며 “남들 다 간다는 어학연수라도 보내려면 아파트 평수를 줄여야 할 판”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등록금 폭탄, 물가 폭탄의 2~3배</font></font>서울 은평구에서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하는 강병술(54)씨에게도 대학 등록금은 벗어날 수 없는 질곡이다. 그는 2년 전 대기업 부장을 끝으로 직장 생활을 접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25년 직장 생활로 남은 것은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인 그에게, 사립 여자대학에 다니는 딸의 학비를 마련할 방법이라곤 창업 말고 없었다. 점원 급여를 아끼려고 부부가 돌아가며 매장을 지키고, 저녁과 새벽 시간엔 대학생 딸까지 나와 일을 거든다. 이렇게 해서 강씨 가족에게 한 달 떨어지는 순익은 350만원 남짓. 딸의 1년 학비 700만원을 대고, 고3인 아들의 학비·학원비를 지출하고 나면 4인 가족의 생활비를 대기에도 힘이 부친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내년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강씨는 “집안 사정을 아는 아들은 대학에 가면 저녁 시간에 가게에 나와 일을 돕겠다고 한다”며 “자식 둘을 편의점 알바로 고용해야 하는 가장의 심정이 어떻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강씨의 네 식구는 편의점을 시작한 뒤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는 꿈도 꾸지 못했고, 명절 연휴에도 귀성은커녕 부부와 두 자녀가 번갈아 매장을 지켜야 했다. 낮밤이 따로 없이 일하느라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아내는 며칠 전 “집을 팔고 작은 원룸을 얻어 자식들에게 내준 뒤 우리 부부는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두렵다. 30년 남짓 남은 노후의 생계를 무엇으로 꾸려나갈지 막막하다.
대학생은 가계의 ‘폭탄’이다. 대학생이 두 명 이상 있는 집은 폭탄을 줄줄이 이고 살아야 한다. 그 폭탄은 지난 10년 사이 덩치를 크게 키웠다. 대학 등록금 추이를 살펴봤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가 6월9일 국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국립대 등록금은 2000~2011년 정확히 두 배(100.7%)로 올랐다(표1 참조). 사립대 등록금은 72.0%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가 43.3% 오른 점을 고려하면 대학 등록금의 상승세는 도드라진다. 특히 지난 2000~2008년에 등록금은 고삐가 풀렸다. 이 기간에 국립대 등록금 증가율(90.0%)과 사립대 등록금 증가율(63.7%)은 물가상승률(29.3%)의 2~3배를 넘어선다. 연평균을 기준으로 보면, 국립대 등록금은 8.4%, 사립대 등록금은 6.4%가 뛰었다. 물가상승률은 3.3% 수준이었다. 물가는 약간 높은 수준이었지만, 대학 등록금은 물가수준을 타넘고 혼자 인플레이션을 탔다. ‘등록금이 미쳤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니었다.
2008년 이후 등록금은 안정세로 돌아섰다. 이 기간에 국립대의 연평균 등록금 증가율은 1.7%, 사립대의 증가율도 1.7%였다. 이 기간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인 3.3%보다 낮았다. 물가와 비교하면 등록금은 떨어졌다. 2007년 이후 등록금에 대한 여론이 비등점을 맴돌고, 금융위기가 함께 닥치자 대학들이 대부분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소폭만 인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추세가 등록금 폭탄을 이고 사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큰 위안이 되진 않았다. 살인적인 등록금 수준이 2007년 정점을 찍은 뒤 ‘더 오르지 않고 약간 하락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등록금은 쓰고 혜택은 짜다</font></font>우리나라의 등록금 수준은 외국과 비교해도 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내놓은 ‘교육일람 2010’(Education at a Glance 2010)을 보면, 우리나라 국공립대의 평균 등록금은 4717달러였다(표2 참조). OECD가 통계를 확보한 19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5943달러) 다음으로 등록금이 비쌌다. 19개 회원국 가운데서 국공립대의 등록금이 아예 공짜인 나라도 8개국이나 됐다.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뿐 아니라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멕시코나 체코도 여기에 포함됐다. 사립대 등록금을 봐도 우리나라는 비교 대상이 된 7개 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미국이 가장 높은 2만1979달러였고, 우리나라는 8519달러였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미친 등록금의 나라’ 미국을 바라보며 위안을 삼아야 할까. 실상을 따져보면 그 얄팍한 위안마저 접어야 한다. OECD의 ‘교육일람’을 찬찬히 뜯어보면 주목할 만한 내용이 나온다. OECD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과 ‘받는’ 재정 지원을 기준으로 회원국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표3 참조). 여기서 미국은 등록금은 비싸지만 학생들에 대한 재정 지원이 후한 국가로 분류됐다. 실제로 OECD 통계를 보면, 미국의 교육 관련 공공 지출 가운데 학생에게 직접 장학금 등으로 지원되는 비중이 14.8%였다. OECD 회원국 평균인 11.4%보다 크게 높았다. 우리나라의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미국은 등록금이 높지만 이에 대한 ‘할인 및 면제’ 혜택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박거용 상명대 교수(영어교육학)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공립대 비중도 높고 장학금 수혜율도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고통은 등록금 액수가 가리키는 것 이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등록금은 비싸고 학생 지원은 인색한’ 나라로 ‘유이하게’ 뽑힌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침 OECD의 ‘교육일람 2010’에는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 설명한 대목이 있다. “두 나라는 고등교육 분야의 공적 투자가 국내총생산(GDP)과 견줬을 때 세계에서 가장 적다. …그러나 일본은 학생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생들에 대한 공적 지원은 전체 고등교육 관련 예산의 25% 수준으로 OECD 평균을 넘는다. 대학생에 대한 대학의 교육비 지출 역시 OECD 평균을 넘어섰다. 반면에 한국은 일본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대학 등록금은 우리나라보다 전반적으로 낮은 반면, 대학생이 받는 장학금 등 정부의 재정 지원액은 GDP의 0.16%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생이 받는 재정 지원액은 0.01%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일본 친구들보다 ‘더 내고 덜 받았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돈값’ 못하는 교육의 질 </font></font>교육의 질은 어떨까. 한국 대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사용료에 합당한 교육을 받을까. 안타깝게도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교육의 질을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몇 가지 수치로 질을 가늠하는 수밖에 없다. 먼저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봤다. 우리나라 대학교 교원 1인은 학생 32.7명씩을 맡았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OECD 평균은 15.8명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칠레의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가장 많았는데, 30명이었다. 일본은 10.4명, 미국은 15.0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교원당 학생 비율이 높은 이유를 일부 부실대학에서 찾을 수도 없다. 대학 정보공시 사이트인 ‘대학 알리미’(www.academyinfo.go.kr)를 보면, 사립대 가운데 등록금이 가장 비싼(964만원) 명지대의 1인당 학생 수가 27.0명이었다. 그다음 연세대(869만원·32.1명), 이화여대(869만원·31.1명)였다. 이른바 명문대학들의 강의실도 ‘콩나물시루’였다.
우리나라 대학은 책도 적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지난 3월 공개한 ‘2010 대학 도서관 통계분석 자료집’을 보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서울대 도서관은 409만5천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캐나다 지역 주요 113개 대학 도서관의 평균 장서 수 441만7천여 권보다 못하다. 국내 최고의 대학 도서관은 미국에 가서는 평균에도 못 미친 셈이다.
OECD가 집계하는 ‘대학생 1인 평균 교육 비용’도 교육의 질을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지표다. 대학생 한 명을 가르치려고 대학이 평균적으로 지출하는 액수를 환산한 결과다. 내용을 보면 참담하다(표4 참조). 지표로만 보면, 한국 학생들은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가장 ‘저렴한’ 교육 혜택을 받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이 학생 한 명을 위해 쓴 돈은 한 해 평균 8920달러였다. 통계가 확인된 28개 회원국 가운데 바닥에서 8번째였다. OECD 평균인 1만2907달러에 크게 못 미쳤다. 등록금이 가장 비싼 미국에서는 대학생 한 명에 투입되는 비용이 무려 2만7010달러였다. 한마디로 비싼 만큼 ‘돈값’을 했다. 등록금이 대부분 무료인 북유럽 대학생들은 1인당 1만6천~1만8천달러 수준의 혜택을 받았다. 일본의 대학생들도 한 명당 1만4천달러 이상 교육 혜택을 받았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많이 내고 혜택 덜 받는 부당거래</font></font>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 대가로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 혜택은 정작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싸구려’ 수준이었다. 종합하면, 한국의 대학은 아주 많이 거둬들이고, 대신 아주 적게 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과 학부모들은 해마다 이런 ‘부당거래’에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color="#1153A4">등록금 1천만원 시대의 어록</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우리나라같이 등록금 싼 데가 없죠”?</font></font>
말은 생각을 드러낸다. 등록금 1천만원 시대는 ‘슬픈 현실’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입에서 ‘소신’으로 등장한다. 살인적인 등록금을 두고 총장과 대통령은 대출을 권유한다. 대통령과 장관은 때로 박자가 어긋났다. 오락가락하는 말을 들으며 서민들은 울고 웃는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2005년 7월24일 한국중견기업인협회 주최 최고경영자 하계 세미나)
“대학교 입장에서는 최소한 1500만원의 등록금은 받아야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
송자 전 연세대 총장( 2006년 2월호)
“학생들은 등록금 동결이나 인하 투쟁을 할 게 아니다. …국민소득 수준으로 보아도 등록금의 인상은 크게 잘못된 게 아니다. 선진국의 일류 사립대학들의 등록금은 그 나라의 개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다. …이렇게 보면 못해도 우리의 등록금은 연 1천만원은 훨씬 넘어야 한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2008년 3월28일 헌법재판소 대강당 강연)
“대학생들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등록금 투쟁을 하던데 이해가 안 간다. 사교육비를 많이 쓰는 건 괜찮고 대학에서 쓰는 건 데모를 한단 말인가.”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2010년 1월2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
“우리나라같이 등록금 싼 데가 없죠. 교육의 질에 비해서 아주 싼 편이죠.”
김준영 성균관대 총장(2011년 3월2일자 인터뷰)
“등록금 인상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마련한 다양한 제도, 특히 학자금 융자제도를 많은 학생들이 활용한다면 등록금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2008년 9월 9일 ‘대통령과의 대화-질문 있습니다’ 5개 방송사 생방송)
“지금 정치적으로 공약들이 나온 데가 많다. 내 자신은 반값 등록금 공약을 한 적이 없다. …형편대로 내면 좋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 대해서는 이자를 낮추고, 이자 없이 가는 쪽으로 확대하는 게 좋겠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2011년 4월26일 서울·경기 지역 학보사 편집장 간담회)
“반값 등록금 공약은 내가 만든 것.”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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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color="#1153A4">등록금 폭등 원인은?</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규제 완화와 지원 축소, 정부 책임이다</font></font>
뭘 믿고 우리나라의 등록금은 이렇게 높을까.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 된 대학 등록금을 두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마부’인 정부에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은 쥐꼬리만큼 하면서 규제는 대폭 완화해, 등록금 폭등의 빌미를 줬다는 말이다. 재정 지원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정부의 대학 교육 투자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6%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비율인 1.0%에 크게 못 미쳤다. 정부 지원이 인색하니 대학들은 ‘자력갱생’의 길로 나서야 했다. 대학에 대한 민간 재원 조달액은 GDP 대비 1.9%로 OECD 평균인 0.5%의 4배에 가까웠다. ‘민간 재원’의 절대액은 결국 등록금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자료를 보면, 국공립대 세입 가운데 등록금의 비율은 2009년 기준 37.8%였고, 사립대는 66.5%였다.
정부의 마구잡이식 규제 완화에도 책임이 컸다. 첫 신호탄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 규제 완화였다. 사립대들은 그해 입학금을 최고 87.5%까지 올렸다. 평균 증가율은 52.1%였다. 그 뒤에도 1990년대 초반 대학의 등록금 인상률은 10%를 쉽게 넘어섰다. 봄마다 캠퍼스는 분쟁으로 들끓었다. 두 번째는 1996년 도입된 대학설립준칙주의였다. 대학 설립 규제가 완화하면서 대학 수가 1.5배 늘었다. 이 과정에서 부실 사학이 대거 등장했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사학들의 유일한 수입원은 등록금이었다. 2002년 국립대 수업료와 입학금에 대한 규제 완화도 등록금 인상을 부추겼다. 특히 2000년대 등록금 인상은 국립대가 주도하는 양상이었다. 2000년 이후 국립대의 등록금이 6.5% 오르는 동안, 사립대의 등록금은 5.1% 올랐다. 정부는 2007년 이후 등록금에 대한 여론이 끓어오르자 뒤늦게 등록금 상한제 등의 제도를 도입해서 진화에 나섰다.
대학 재정 지원은 늘어날 기미가 보일까.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11월 ‘고등교육 재정투자 10개년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2020년까지 대학 교육에 재정투자를 국가총생산 대비 1.0% 수준에 이르도록 해마다 대학 관련 예산을 6.8%씩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담았다. 현실성은 얼마나 있을까? 없는 쪽에 가깝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장기재정운용계획’에서는 대학 교육 분야에 대한 재정투자를 2014년까지 연평균 4.3%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안을 담고 있다. ‘돈줄’을 쥔 재정부의 계획이 현실에 더 가깝다. 대학에 대한 나라 예산은 ‘반값 등록금’ 비용은커녕,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아 현상 유지하기도 버거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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