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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대기업 목에 누가 ‘증세 방울’ 달까?

재보선 참패 뒤 힘받는 한나라당 내 감세 철회론… 진보정당·시민단체가 제기한 증세론이 넘어야 할 조세저항이라는 산
등록 2011-05-26 17:50 수정 2020-05-03 04:26
» 4·27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의 신주류로 부상한 소장파들은 추가 감세 철회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월20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대표 권한대행인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조찬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4·27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의 신주류로 부상한 소장파들은 추가 감세 철회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월20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대표 권한대행인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조찬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의 목에 ‘증세’ 방울 달기.”

국책연구소의 한 조세전문가가 최근 뜨거워지고 있는 감세·증세 논란을 지켜보며 던진 화두다.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부가 출범하자 국회에서 현 정부의 감세 정책 철회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조세전문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감세 철회는 당연하고 한발 더 나아가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증세론에 가세할 태세다. 정치권에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와 ‘증세’가 가장 강력한 화두로 부상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자기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걷어가겠다고 하는데 좋아할 국민은 많지 않다. 증세가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법인세로 확대된 한나라당 내 감세 철회론

“우리나라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개최하고 7대 무역수출국이 되는 등 국민의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개인에게 별로 돌아오는 게 없다고 한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5월20일 청와대 조찬 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각을 세우며 한 말이다. 증세론에 재차 불을 지핀 것은 역설적으로 한나라당의 감세 철회론이다. 4·27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의 신주류로 부상한 소장파들은 추가 감세 철회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재정 건전성 등을 이유로 2010년부터 시행 예정이던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 과표구간 세율 인하를 2년간 유보해 2012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는데, 이제 이를 아예 백지화하자는 것이다(그림 참조). 2010년 정기국회 때도 소득세 추가 감세 철회 주장이 제기됐으나 성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추가 감세 철회론이 소득세는 물론 법인세로 확대됐다.

한나라당 내 추가 감세 철회론자들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노선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감세 철회를 통해 확보되는 10조~14조원의 재원은 서민 복지에 지출한다는 복안이다. 당내 쇄신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의 한 의원은 “추가 감세를 철회하고 불평등 구조와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장파의 리더 격인 정두언 최고위원은 법인세율 인하를 철회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 기류는 복잡하다. 친이계 의원들은 감세 고수를 외치고, 친박계 의원들은 소득세 감세는 철회하되 법인세 감세는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우여 원내대표도 최근 법인세 감세 철회 공약을 번복하는 발언을 했다. 감세 철회 여부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의 논란은 5월30일 의원총회에서 일단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113조원 vs 138조원’. 앞의 수치는 MB 정부의 대규모 감세(법인세·소득세·상속증여세·양도세·종합부동산세 등)로 인해 2008~2012년 집권 5년간 예상되는 누적 감세 효과다. 이 가운데 2011년까지 4년간의 감세 효과만 76조4천억원에 달한다. 뒤의 수치는 2008~2011년에 늘어난 국가 채무 규모다. 단순하게 말하면, MB 정부가 감세를 하지 않았으면 지난 4년간 국가 채무 증가액이 절반 이하로 줄었을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감세 혜택은 주로 부자에게 집중되고, 재정 압박은 복지 축소로 이어져 양극화를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정부·여당은 고소득층은 물론 서민층에 대한 감세가 함께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부자 감세’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MB 정부 출범 이후 2009년 상반기까지 국민 1인당 감세 효과를 분석해보면 고소득층(소득세 최고 과표 구간인 8800만원 초과)이 중·저소득층(8800만원 이하)에 비해 33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적하효과의 환상깨진 사실 시인한 결과"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중이 2010년 기준 3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인 95.8%에 비해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국가 채무 통계에서 빠지는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포함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공공기관 채무는 2005년 319조원에서 2009년 599조원으로 급증해, 2009년의 경우 국가 채무 360조원을 훨씬 상회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4월 말 보고서에서 “정부가 2014년까지 재정수지(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포함한 관리대상수지 기준) 균형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2015년까지도 연간 관리대상수지가 10조원 이상의 적자를 지속할 것”이라며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인하를 재정 균형이 이뤄지는 2014년까지 2∼3년간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조세부담률 및 국민부담률 국제 비교. 최고한계 법인세율 국제 비교.

» 조세부담률 및 국민부담률 국제 비교. 최고한계 법인세율 국제 비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경쟁국에 비해 법인세 부담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2000년 이후 OECD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인하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해 2010년 기준 24.2%로 OECD 국가 평균 25.9%보다 낮은 수준이다. 경쟁국인 싱가포르(17%)·홍콩(16.5%)·대만(17%)보다 높지만, 일본(39.5%)·미국(39.2%)·독일(30.2%)·오스트레일리아(30%)·중국(25%) 등에 비해서는 낮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소니 등 일본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삼성전자에 뒤지는 이유에 대해 법인세 부담이 훨씬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커서 경쟁력 약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주장은 허구다”라고 말했다. 소득세의 실질 세부담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2009년 기준 38.5%로 OECD 국가의 최고세율 평균 41.5%보다 낮다.

한나라당이 법인세·소득세 추가감세 철회를 강행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MB노믹스)은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지는 셈이다. MB노믹스의 두 기둥은 ‘감세’와 ‘규제 완화’다. 이를 통해 대기업을 지원하고, 대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면 서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양극화 심화로 이어졌고, 이는 고물가, 일자리 창출 부진, 부동산 시장 침체 등과 맞물려 4·27 재보선 패배를 낳았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은 “적하효과의 환상과 신화가 깨졌음을 한나라당이 시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김성식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감세 철회는) 편향된 MB 정책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감세 철회는 기본이고 이왕 내린 세금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고 공세를 편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감세 철회와 ‘등록금 반값’ 실현을 위한 여야 협의체 구성을 공식 제안했다. 정 최고위원은 법인세를 노무현 정부 수준으로 되돌리자는 복안이다. 민주당의 ‘조세통’인 이용섭 의원은 감세 철회를 위한 소득세법과 법인세법 개정안을 이미 제출해놓았다. 이 의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한 종합부동산세를 다시 정상화하는 방안도 제기했다.

진보정당·시민단체, 증세 제기

하지만 일부 야당 의원과 조세전문가, 시민사회단체들은 단순한 감세 철회나 원상회복 수준을 넘어 증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악화와 더불어 향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복지재정 수요 증가에 따라 추가적인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막대한 지출이 소요되는 서민복지를 내세우면서도 감세 정책을 유지하며 조세부담률을 낮추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우리 사회가 본격적인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급증하는 복지 재원을 확보하려면 감세 철회를 넘어 증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 부담은 더욱 작아졌다. 조세부담률(경상GDP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기준으로 19.7%로 참여정부 때인 2007년의 21%보다 낮아졌다. 이는 OECD 평균치인 25.8%를 크게 밑돈다. 조세수입과 사회보장기여금이 경상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국민부담률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진다. 우리나라 국민부담률은 2009년 25.6%로 역시 2007년(26.5%)보다 더 낮아졌는데, 이는 OECD 평균치인 34.8%에 비해 훨씬 낮다. 김재진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복지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성장률 둔화, 저출산·고령화의 급진전, 제조업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등 거시경제 여건상 세수 확대는 쉽지 않다”며 “결국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 증세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 감세 철회 관련 법인세 및 소득세법 개정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감세 철회 관련 법인세 및 소득세법 개정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증세론은 사실상 부자와 대기업에 타깃이 맞춰져 있다. 경실련은 “법인세·소득세의 최고세율을 높이고 재산세를 인상하는 등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가장 적극적이다. 이 대표는 이미 부자와 대기업 증세에 초점을 맞춘 소득세법과 법인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았다.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 과표구간을 각각 1억2천만원과 1천억원으로 높이고, 최고세율도 각각 40%와 30%로 높이는 안이다(표 참조). 박선숙 민주당 의원도 복지 수요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조세부담률을 고려해 조세 부담을 서서히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감세와 고환율 유지를 통해 사실상 대기업에 막대한 현금을 안겨주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법인세율이 명목상 차이가 나지만 유효세율(실제 납부 세금을 기준으로 한 세율)은 큰 차이가 없는 점을 고려해 조세 형평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세율을 높이는 방안과 달리 진보신당과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목적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부자 증세(사회복지세 도입 및 부자 감세 철회) - 보편적 증세 - 사회보험료 개선’이라는 3단계 복지 재원 확충 방안을 제시했다. 진보신당 대표인 조승수 의원이 발의한 ‘사회복지세안’은 소득 상위 5% 고소득층과 0.3% 대기업을 대상으로 소득세·법인세·상속증여세·종부세 납부액의 15~30%를 사회복지세로 추가 징수한다는 것이다. 정동영 의원은 부유세를 신설하자는 구상이다. OECD 국가 중에서 부유세를 유지하는 나라는 8개국으로, 이들의 GDP 대비 부유세액 비율은 2007년 기준으로 평균 0.6%다. 하지만 상당수 의원들과 전문가들은 목적세 신설 방안을 국민에게 설득시키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

민주당, 조세 저항 의식해 증세 언급 회피

민주당이 차기 총선·대선에서 무상급식과 무상의료, 무상보육, 대학생 반값 등록금 등 ‘3+1 무상복지’를 간판 상품으로 내걸고 여기에 일자리, 교육, 주거 안정, 기초노령연금까지 추가하겠다고 의욕을 보이면서도, 정작 복지 재원에 대해서는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 없이 해결하겠다는 것도 조세 저항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20조~30조원으로 추정되는 관련 복지 재원을 민주당의 공언대로 재정 개혁과 조세 개혁, 건강보험 보험료 징수 체계 개혁 등만으로 조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야당 의원은 “당내에서 증세 관련 준비가 안 돼 있고, 의원들 간에 컨센서스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정치권이 복지 확대를 강조하며 증세라는 말을 피하려는 것에 대해 “떳떳치 못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당장 증세에 합의하더라도 국민 소득이 꾸준히 늘어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와 함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국가 운용의 ‘그랜드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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