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사면하지 않겠다.”
이 ‘매정한’ 딸은 알베르토 후지모리(73) 전 페루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36)이다. 페루 상원의원인 그는 유력한 대선 후보다. 후지모리는 재임 10년(1990~2000) 동안 학살·납치·횡령 등을 저질러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게이코 의원은 지난 4월24일 방송 카메라 앞에서 “아버지의 재임 시절 일어났던 잘못을 인정하고 페루 국민에게 사죄한다”고 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겠다”는 말도 덧불였다. 그러면서도 게이코 의원은 후지모리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는 데는 반대했다. “경제성장 등 긍정적 부분도 많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거리두기’ 나선 후지모리의 딸
1990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지모리는 1992년 친위 쿠데타로 헌법을 정지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후지모리의 철권통치는 1996년 헌법 개정으로 3선 연임의 길을 열어놓으며 독재 수순에 들어갔다. 2000년 부정선거 논란 속에 3선에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의혹 등이 불거지자 일본으로 달아났다. 재임 중에는 높은 경제성장률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게이코 의원은 17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해왔다. 2006년 선거에서 페루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어 국회에 입성했다. 아버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꿈을 키워왔다. 그의 사과를 두고 아버지와 ‘거리두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선 예선 투표에서 1위와 8% 차이로 2위를 한 게이코 의원이 막판 뒤집기 카드로 아버지를 ‘버렸다’는 것이다.
‘후지모리-게이코’의 부녀 관계는 누구와 매우 닮았다. ‘심봉사-심청이’ 이후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녀인 ‘박정희-박근혜’ 관계와 대차대조표를 그려도 별로 빠지는 구석이 없어 보인다. 스물두 살의 나이로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시작했던 박근혜. ‘야인’ 박근혜는 1998년 대구 달성 재보선에서 61%의 압도적 지지로 국회에 입성했다. 1997년 12월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어떠한 정치적 능력도 보여준 적이 없던 그에게 압도적 표가 몰린 데는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가진 고정 지지층의 힘이 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11년 5월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다. 다른 예상 후보들의 지지율을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다. 그러니, 게이코 의원처럼 막판에 살아보자고 아버지를 ‘배신’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박정희라는 이름은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굴곡과 그대로 포개진다. 그의 ‘딸’이 출마할 것으로 점쳐지는 2012년 대선은, 그래서 과거사를 걸러내는 ‘필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 내부 경선에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딸’에게 요구할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는 자산이자 부채다. 가지고 갈 것과 버리고 갈 것이 섞여 있다는 얘기다. 5·16 군사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평가했던 박 전 대표. 아버지에 대한 박 전 대표의 ‘과거사 인식’은 어디쯤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박 전 대표는 정계에 입문하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때까지 숱한 과거사 발언을 쏟아냈다. 과거사 청산 작업이 본격화한 참여정부 때 특히 많았다. 때로는 공격적으로, 때로는 신경질적으로, 어떤 때는 나름의 진정성을 담기도 했지만, 큰 틀은 과거사와 아버지를 연결하는 모든 선을 끊어내는 데 맞춰졌다. 박 전 대통령이 남로당과의 ‘선’을 끊어내고 살아났듯이, 딸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잘라내 자신과 아버지 모두를 살려내려는 듯했다.
유신독재의 위헌성에 눈 감는 박근혜
‘유신독재’는 보수 정당도 머리에 이고 가기에는 버거운 짐이었다. 유신독재와 정수장학회 문제 등에 대해 한나라당 안팎의 사과 요구가 거세지던 2004년 8월, 난리가 났다. 박 전 대표는 당 의원연찬회에서 ‘선전포고’를 했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라는 얘기가 많은데 이미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했다. 그런데도 또 사과해라, 사과해라 하는 것은 순수한 뜻이 아니라 대표 헐뜯기다. 박 전 대통령이 역사에 죄가 많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면 왜 지난 선거 때 도와달라고 했느냐. 치사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2005년 1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과장됐다고 발표했다. 박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발표 내용은 한마디로 가치가 없고 모함”이라고 했다.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사전에 ‘합’을 맞춘 인터뷰였을 텐데도 거르지 않은 듯한 생짜 발언이 거침없이 나왔다.
박 전 대표의 정치에서는 유독 ‘헌정질서’가 강조된다. 그는 자서전 (2007)에서 “사실 아버지 시절에는 북한의 남침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기에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족한 면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계셨다. 나는 그분들에게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왔다”고 썼다. 특유의 두루뭉술한 사과보다도 ‘북한의 남침 위협’에 맞서야 했다는 헌정질서 유지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전제가 되는 유신헌법 자체가 위헌적이었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감는다.
2007년 1월 법원이 대표적 ‘사법살인’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지난번 법’은 유신헌법이다.
그러던 박 전 대표였지만 이제는 과거사 발언을 아낀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폭압적 유신체제의 ‘전위’였던 긴급조치 1호에 대해 “현행 헌법뿐만 아니라 유신헌법 아래에서도 위헌이었다”고 선언했다. 박 전 대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4년 전인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박 전 대표는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고, 유신체제는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고 했다. 정계에 입문한 지 14년. 박 전 대표는 ‘단말마 정치’라는 비판에도 주요 순간마다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며 차근차근 정치적 능력을 키워왔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이제는 아버지의 자산과 부채를 이야기할 것이 없다. 박 전 대표는 나름대로 정치적 커리어를 쌓아왔다. 독자적으로 많은 난관을 뚫고 자리를 잡았는데, 부친과 연결해서 플러스·마이너스를 매기겠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진심어린 사과와 견해 표명 있어야그래도, 도저히 ‘아버지 시절’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당한 것처럼 연좌제를 적용하라는 소리는 안 한다. 그래도 아버지가 저지른 죄에 대해 자숙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대권은 그리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피해자 가족만 수백만 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5·16 쿠데타 직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의 ‘경고’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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