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앞 식당의 가격표가 많이 바뀌었다. 메뉴마다 500원씩 오른 게 기본이다. 정유사들이 ℓ당 100원씩 휘발유 가격을 내렸다지만,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고물가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진다. 아랍권의 민주화 바람에도 빵값 등 식량값 폭등이 한몫했다. 멕시코에서는 주식인 토르티야의 원료인 옥수수, 인도에서는 카레에 많이 쓰이는 양파 가격이 인상될 때마다 국민의 불만이 치솟는다. 고물가 시대에 세계의 주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물론 캄보디아, 영국, 독일, 에콰도르까지 각국 주부들의 살림살이 모습을 알아봤다. 공식 수치에 나타난 물가상승률보다 몇 배는 더 껑충 뛴 물가를 체감하고 있었다. 먼저 서울 도봉구에 사는 주부 박현정씨의 장보기 동행으로 시작한다._편집자
서울 도봉구 사는 전업주부 박현정씨… 기름값과 채소값에 놀라도 학원비 못 줄이는 학부모의 또 다른 불안
지난 4월13일 서울 도봉구의 한 대형 할인매장에서 박현정(45)씨를 만났다. 지난 1년간 물가는 박씨에게 롤러코스터였다. 지난해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해 리비아 사태까지 발생하자 기름값은 천정부지였다. “정부가 나서서 ℓ당 100원을 내렸지만 아직 피부에 크게 와닿지는 않아요. 내린 김에 조금 더 내리면 좋겠는데.” ℓ당 2천원대이던 휘발유값은 1900원대로 떨어졌다. 그래도 비싼 건 마찬가지다.
줄일 수 있는 건 모두 줄이다
지난 겨울 기름값보다 더 놀란 것은 채소값이다. 배추 한 포기에 2만원을 넘었던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날 쌈용 배추를 두 포기 샀다. 가격이 오르기 전 두 포기에 3천원쯤 하던 것이 5950원에 팔렸다. 가격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배추를 쇼핑카트에 담는 것을 주저했다. “한 주에 세 번 정도 삼겹살을 채소와 함께 먹던 것을 두 번으로 줄였어요. 아무리 비싸도 더는 못 줄이겠더라고요.” 구제역도 가계 부담을 더했다. 지난 겨울 장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고깃값을 끌어올렸다. 특히 편하게 즐겨먹던 돼지고기 삼겹살은 쇠고기값에 육박했다. “남자 아이 둘은 밥 먹고 돌아서기만 하면 배고프다고 하는데 먹는 것을 줄일 수는 없겠더라고요. 과하게 먹지는 말자는 정도로 일주일에 두세 번 먹던 것을 두 번으로 줄였죠.”
채소 코너의 끝에서는 인삼을 팔고 있었다. “봄가을로 수삼을 사다가 홍삼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올봄에는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보통 10만원 정도는 봄에 건강식품으로 들어갔는데 말이죠.” 물가가 오르고 가장 먼저 줄인 것이 건강식품이다. 열 뿌리를 5만원에 파는 인삼을 보며 박씨는 가격만 흥정할 뿐 구입하지는 못했다. 또 줄인 것은 외식이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던 것을 한 번으로 줄였다.
줄이지 않는 것을 물었다. ‘교육비’였다. 현재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인 두 아들에게 들어가는 학원비는 월 200만원을 조금 넘는다. 학원비는 고등학생이 된 큰아들이 영어·수학 이외에 국어와 과학까지 학원에 다니자 크게 늘었다. “학부모들끼리 얘기해봐도 먹는 것은 줄여도 아이들 교육비는 못 줄이겠다고 하더라고요.”
전업주부인 박씨는 아직 부업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대신 마트·시장별로 채소가 싼 곳, 공산품이 싼 곳, 생선·고기가 싼 곳 등을 나눠 발품을 팔아 절약을 한다. 장보기를 일주일, 이주일 단위가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나눠 꼭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고 버리는 음식을 최소화하고 있다.
“생선 먹기가 점점 무섭다”
사실 인터뷰 내내 박씨의 궁금함은 롤러코스터 물가가 언제 아래로 내려가느냐보다 일본 원전이 어떻게 되느냐였다. 정부에서는 안전하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시장의 인심은 피부로 와닿을 만큼 달라졌다. 박씨와 함께 장을 보는 옆으로 50m 넘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소금을 사려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소금 품귀 현상이 나자 이날 마트에서는 300포대(20kg)를 1인당 한 포대씩만 판매하고 있었다. 박씨도 이미 소금을 확보해뒀다. “아이를 둔 엄마들은 물가보다 안전이 더 문제죠.”
계산대에 섰다. 10만원이 훌쩍 넘었지만 박스 하나를 채우지 못했다. 유난히 사건이 많은 지난 1년. 박씨는 이제 롤러코스터 물가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일본 원전사고 추이를 다시 묻는다. “생선을 먹기가 점점 무섭다”며.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중산층 주부 헹 로타가 전하는 캄보디아 물가… 기름값과 고기류 제일 올라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아”
“버는 건 뻔한데 나가는 돈은 늘어만 가고. 정말 힘들어요.”
결혼 4년차, 두 살짜리 아들을 둔 헹 로타(23)는 소녀티가 나는 주부다. 남편 얘기만 나오면 행복한 표정이 줄줄 흐르는 새댁이다.
“옷가게를 제대로 해보려고요. 생계에 보탬도 돼야 하고.”
친정 지원과 텃밭 채소 재배로 생활비 줄여
‘옷가게 프로젝트’를 위해 로타는 1년 과정 의상학원에 다니고 있다. 의상학원 등록금은 무려 180달러(약 20만원). 캄보디아 소득수준을 고려하면 적잖은 돈이다. 육아와 살림에 전념해온 로타는 6개월 뒤 의상학원을 마치면 옷을 만들어 팔 생각이다. 로타가 배우는 의상은 캄보디아 여성들이 잔치 때 입는 드레스 정장으로 한 벌 가격이 약 40달러니 주문만 잘 들어오면 수입이 괜찮다.
4월12일, 시엠리아프 시내에서 40km 남짓 떨어진 로타의 집으로 향했다. 마당에 들어서니 개 서너 마리 다음으로 반기는 건 도요타 캠리다. 친정아버지가 1천달러를 보태주고 은행 융자를 받아 장만한 8천달러짜리 중고차지만 보물 1호다. 10년 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 넘게 훌쩍 늘어 2112달러이고 초등교사 월급이 100달러, 식당 노동자 월급이 50~70달러인 캄보디아에서 로타네는 중산층에 가깝다. 기술자로 일하는 남편의 월급은 100달러다. 남편은 중고 오토바이 매매 등을 해 월 최소 200달러는 벌어온다.
“매월 은행 융자 180달러를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아직 여덟 달이나 남았는데.”
로타네가 융자를 갚고 남은 몇십달러로 버티는 비결은 친정집에 얹혀살기다. 60명의 인부를 두고 농사를 짓는 부모님 덕에 쌀값은 들지 않는다. 이 덕에 로타 부부가 지출하는 건 약간의 먹을거리와 닭 모잇값, 그리고 하루 1달러 미만의 오토바이 기름값 정도다.
“지난해 기름값이 1ℓ당 3500리엘(약 959원)이었는데, 약 5개월 전부터 4500리엘로 올랐어요.” 물가가 가장 많이 오른 품목으로 로타는 기름값을 꼽았다. 물가 상승을 뼈저리게 느끼는 품목을 묻자 고기를 꼽았다. “체감 상승폭은 두 배예요!”
“옷을 안 사요. 채소도 밭에서 키운 걸로 대충 때우고.”
오전 10시30분께. 더 더워지기 전에 장에 가야 한다며 로타가 방과 부엌을 들락거린다.
“쇠고기와 생선은 500g만 사고 케이크 두 개, 바나나, 생강, 주스, 콩, 젓갈, 간장….”
꼼꼼하게 적힌 쇼핑 품목을 위에서부터 다시 훑는다. 역시 채소는 없다. 캄보디아 최대 명절인 ‘쫄 츠남’(캄보디아의 설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건만 시장은 그리 북적이지 않았다. 옆 나라 타이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느라 전기요금이 비싼 시엠리아프 지방에는 냉장고 없는 가정이 다수다. 하루에 두 번 장터를 다녀가는 게 흔한 까닭이다. 장터를 도는 로타는 깎아달라고 조르진 않았지만 이따금 표정이 일그러졌다. 시장에서 돌아온 로타와 가격을 비교해봤다. 우선 6천리엘 하던 생선 500g이 오늘 9천리엘이었고, 케이크는 두 봉지는 5천리엘에서 7천리엘로 올랐다.
명절이라 두 배 또 오른 물가“바나나는 딱 두 배 올랐어요. 한 묶음에 1500리엘이었는데 오늘은 3천 리엘이나 하잖아요!”
총 4만5천리엘을 지출했다. 명절만 아니었다면 2만리엘로 때울 수 있었단다.
“명절이라 또 오른 거예요. 설 연휴가 지나면 물가가 내려가야 하는 거잖아요?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아요.” 2년 안에 분가하려는 로타 부부의 계획은 로타의 옷가게 프로젝트에 달린 듯하다.
시엠리아프(캄보디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hr>고기류 크게 올라 채식 식단 짜는 영국 주부 레이철… “오른 가스요금과 대출 금리 인상 걱정돼”
런던 남동부에 사는 레이철 위더든(45)이라고 해요. 지난 4월11일 오후 과 인터뷰를 했어요. 집 근처 대형 슈퍼마켓 ‘테스코’에서 10대 초반의 아들 두 녀석과 장을 보고 있었어요. 한국인이라는 젊은이가 다가와 물었어요. “요즘 영국 물가 많이 올랐죠. 하실 말씀이 없으세요?”
1+1 이벤트 상품, 잽싸게 구입
할 말이 있던 참이었어요. 그날도 인플레이션을 체감했어요. 지난해 테스코에서 가족 네 사람을 위해 장을 보면 70파운드(약 12만원) 정도가 들었지만, 올해는 약 100파운드가 들어요. 구매량은 예년과 변함없는데 말이에요. 같은 종류의 물건이면 더 저렴한 브랜드를 선택하는 형편이에요. ‘하나 가격에 두 개를 살 수 있는’ 이벤트 상품을 발견하면 잽싸게 장바구니에 담아요. 이벤트 상품에 유기농이 거의 없다는 게 아쉬워요.
육류 대신 채소에 더욱 손이 가요. 닭·돼지·소·양 등 모든 육류의 가격이 크게 올랐거든요. 예를 들어 지난해 약 5파운드에 판매되던 양 정강이 살 600g을 올해 7~9파운드에 팔고 있어요. 매일 식탁에 고기를 올렸는데, 이젠 채식 위주의 반찬을 놓고 있지요. 고기는 없고 채소만 들어간 파스타가 부득이하게 우리 집 ‘단골 메뉴’가 되었어요. 일주일에 고작 한두 번 고기를 먹게 되었지요. 채식주의자의 삶과 다를 바 없어요.
휘발유 가격도 ℓ당 1파운드(약 1770원) 이상 올랐어요. 가스요금이 오른 게 가장 고민이에요. 지난해에는 매달 약 30파운드를 냈지만 최근에는 약 35파운드를 냈어요. 올해는 가스요금으로 60~100파운드를 지난해보다 더 부담해야 한다고 각오하고 있어요. 저희는 15년 동안 주택담보대출금을 매달 600파운드씩 갚고 있어요. 은행 빚이 많이 줄어들었으니 다행이지만, 불안한 소문이 떠돌고 있어요. 내년 상반기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인상된다는 얘기가 있어요. 세상에, 지금 5% 수준인데 최대 8%로 인상된다고 하니 걱정이에요.
결혼한 지 13년째 되는 남편은 소비 위축의 여파를 맞았지요. 택시 운전사인 남편은 기본요금이 오르긴 했지만 그 탓에 승객이 확 줄었다고 해요. 고물가 시대에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지 요즘은 주말에도 일을 해요. 남편의 수익은 사생활이라 말할 수 없지만, 저는 한 해 2만~3만파운드를 벌고 있어요. 부업으로 일주일에 세 차례 정도 판매업과 출판업을 번갈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과잉보호하지 않는다는 교육철학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요. 대학을 가지 않은 저는 16살 때부터 꾸준히 일을 해왔어요. 살림하랴 일하랴 고된 면은 있지만, 그나마 물가 인상 부담을 덜게 되었지요.
정부, 긴축재정 속 저소득층 지원 지속
정부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긴축정책으로 공무원 수를 대폭 줄였는데, 공공서비스를 포기하는 대신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 등을 지속해 더 가난한 계층을 끌어안으려는 선택이기도 해요. 할 말은 다 한 것 같네요. 전 그만 자전거에 물건을 싣고 돌아갈게요. 굿 바이~.
런던(영국)=글·사진 이승환 통신원
<hr>베이징에서 맞벌이하며 집 장만 돈 모으는 주부 차오잉의 절망… “생활비 지난해보다 두 배나 올라”
그는 지난 1년 사이 ‘폭삭’까지는 아니어도 적잖이 늙어 있었다. 1~2년 전만 해도 한껏 멋 부리기를 좋아하고 철마다 ‘신상’ 옷 사기를 취미로 삼았던 차오잉(35)은 올 들어서는 모든 취미생활과 사치품 소비를 중단했다. 고기마저 입에 잘 대지 않는다. 채식을 결심한 게 아니라 고깃값이 너무 올라 밥상에 올리기가 겁나기 때문이다. 뱃속에 있는 아기를 생각하면 영양보충을 해야 할 때지만 아기가 태어난 뒤 양육비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수입의 절반 이상을 저축해야 한다.
여러 명 공동 부담하는 ‘핀족’ 대유행둘 다 평범한 직장인인 차오잉 부부의 월수입은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다른 베이징 중산층 부부의 수입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아주 밑도는 것도 아니다. 2~3년 전만 해도 차오잉은 수입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외식도 하고 옷도 자주 사는 편이었지만 지금처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만큼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부는 무조건 수입의 3분의 2를 저축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 양육비뿐 아니라 내 집 마련을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차오잉은 (중국 정부 공식 통계와 달리) 물가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생활비에 심각한 압박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올해는 생활비가 두 배 정도 더 드는 것 같아요. 특히 채소, 과일, 달걀 값 등이 폭등해서 타격이 커요. 아무리 절약해도 채소나 달걀 같은 것은 안 사먹을 수 없잖아요. 가격이 얼마나 올랐느냐면, 사과는 지난해만 해도 3근에 10위안(약 1600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올해는 고작 1근에 7위안(약 1120원)을 받아요. 요즘은 파프리카 값도 엄청 올랐더라고요. 일주일에 두세 번 시장에서 장을 볼 때마다 물가가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수도세 등 공공요금은 많이 오르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전기세가 지난해에 비해 2마오(약 12원)쯤 더 오른 정도다. 공공요금이나 식용유 등의 가격은 정부가 통제를 하는 탓이다. 하지만 신문에서는 식용유 회사들이 가격 인상 조정안을 냈다거나 전기세와 가스세 등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보도가 흘러나와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연달아 금리를 인상하고 공공요금 인상을 저지하는가 하면 집값을 잡겠다고 부동산 정책 등을 내놓고 있지만 피부 물가는 변함이 없어요. 오히려 장바구니 물가는 갈수록 더 높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시대라고는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아요.”
올 초 베이징의 한 신문은 물가 인상으로 인한 식탁 물가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집 앞 공터에서 채소를 길러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가용족들이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출퇴근 때 같은 방향끼리 한 차를 이용하는가 하면, 결혼식마저 함께 치르는 ‘핀족’(비용을 아끼려고 여러 명이 공동으로 비용부담을 하는 사람)이 대유행하고 있다.
물가 더 오르면 고향 내몽골로 돌아갈 생각
차오잉 부부는 여건상 채소를 길러먹을 수는 없지만 물가가 이대로 더 ‘미친다면’ 고향인 내몽골로 돌아갈 생각도 하고 있다. 지금보다 수입이 줄어들지 모르지만 물가를 고려하면 고향은 아직 살 만하다. 베이징은 그야말로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상어의 ‘아가리’ 같은 곳이다. “집요? 집 사려고 돈을 모으고는 있지만 솔직히 기대는 안 해요. 이 물가와 집값으로 베이징에서 집을 산다는 건 우리에겐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이죠.”
베이징(중국)=박현숙 통신원
<hr>살림하는 베를린의 아빠 주부 불가로풀로스… 저가 구입과 자전거로 고물가 견디지만 공공요금 인상 부담
13살 티모의 가족은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 산다. 대안문화를 선호하는 자유로운 성향의 시민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요즈음 고급 주택화가 시작돼 임대료가 대폭 오르기 시작한 대표적인 곳이다.
물가 인상, 아직은 견딜만 하지만
티모의 아빠 안드레아스 불가로풀로스(45)는 왕년에 헤비메탈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하지만 티모가 태어난 1998년에 음악 활동을 중단한 뒤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왔다. 티모 엄마는 학습장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학습치료사로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2004년부터 티모 아빠는 공상과학소설을 쓰고 작사도 한다. 지면에 밝히지 말아달라는 작은 아르바이트도 일주일에 한 번 다니며 수입을 올린다.
티모네는 물가가 오르기 전에는 유기농 슈퍼마켓에서만 식품을 구입했다. 하지만 요즘엔 유기농 슈퍼마켓의 제품 가격이 너무 올라서, 종류는 많지 않지만 보통 슈퍼마켓보다 훨씬 저렴한 알디(ALDI)나 리들(LIDL) 같은 저가 슈퍼마켓을 이용하고 있다. 몇 년 전 시작된 유기농 제품 붐 덕에 유기농 슈퍼마켓에서만 살 수 있던 품목 중 유제품·바나나·달걀·감자 같은 기본 식품을 이제 저가 슈퍼마켓에도 값싸게 살 수 있다. 저가 슈퍼마켓은 채소·생선·고기뿐 외에도 유명 브랜드가 아닌 제품 가격이 보통 슈퍼마켓보다 20~50% 저렴하다. 같은 우유라도 상표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커서, 물가가 오르면 비싼 제품 대신 싼 제품으로 갈아타는 소비자가 많다 보니 물가 상승 부담을 서민들도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
물가가 인상되고 있지만, 티모네 가족이 견디기 어려운 정도는 아직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이 부부가 즐겨 마시는 커피, 와인 값이 올라 물가가 올랐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커피 맛을 중시하지만 부인과 함께 하루 6잔씩 마시는 원두커피는 저렴한 상표로 바꿨다. 독일에서 인기가 많은 치보 커피는 500g을 3유로(약 4730원)에 특별할인 판매했지만 이제는 4유로50센트를 줘야 살 수 있다. 티모 아빠는 잼을 좋아해서 직접 만들기도 하고 유기농 가게에서 구입하기도 하는데, 요즘 그가 좋아하는 산딸기잼 가격이 많이 올라서 놀랐다. 주말엔 외식 대신 티모 아빠가 부인과 함께 아시아나 그리스 등의 요리를 한다.
임대료와 전기요금도 같이 올라
티모네 가족은 가까운 거리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서, 휘발유 가격 인상엔 그리 민감하지 않다. 장거리 이동 때에는 자가용보다 철도 이용을 선호하는데 기찻삯 인상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최근 10% 정도 인상된 것 같다. 대중교통 요금도 인상돼, 올 초부터 베를린의 지하철·전철·버스 2시간 이용 티켓이 2유로10센트에서 2유로30센트로 올랐다. 그리고 11년간 동결됐던 임대료가 갑자기 인상됐다. 120㎡에 530유로이던 임대료가 580유로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 때문에 타격이 크다. 전기요금도 계속 인상되고 있는데, 티모 아빠는 독일의 4개 민간 전기공급체가 독점을 하고 요금을 올린다고 생각한다. 원래 티모네 가족은 해마다 여름휴가 때면 티모 아빠가 태어난 그리스로 여행을 갔다. 하지만 올해는 티모의 할머니가 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다. 고물가 시대에 생활비를 줄이려는 작은 방도다. 티모 아빠가 보기에 물가 인상에 대한 독일 정부의 대책은 별로 없다.
베를린(독일)=글·사진 한주연 통신원
<hr>한없는 물가 상승, 끝없는 생활고
에콰도르 중하층 주부 베로니카의 고물가 체감기… 싼 곳 찾아 장 보고 가족 외식과 나들이 꿈도 못 꿔
“어휴, 물가가 계속 오르니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중하층’에 속한다”는 베로니카 살라사르(29)는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 정도다. 하지만 체감 물가는 전년 대비 25% 가까이 올랐다. 그중에서도 ‘기본 장바구니’(물가지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70여 가지 품목을 선정해 각 품목의 실질 가격을 토대로 4인 가족 기준 매월 최소 필요 금액을 산정) 품목에 속하는 설탕·쌀·빵·식용유 등 기본 식료품의 가격이 가장 많이 올라 고물가 시대를 체감하고 있다. 베로니카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에콰도르 사무소에서 행정보조를 하고 있고 남편은 가구회사에서 생산기술자로 일한다. 둘의 급여를 합치면 월소득은 2천달러 정도다. 맞벌이를 하고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7살짜리 딸과 돌이 갓 지난 아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서 교육비가 많이 들어가게 되면 생활이 빠듯해질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물가 상승에 손 놓은 정부
전에는 편리하고 깨끗한 슈퍼마켓이나 대형 할인매장에서 주로 장을 봤지만, 이제는 시장과 슈퍼마켓 중 어느 곳이 더 저렴한지 꼼꼼히 확인하고 물건을 산다. 주말마다 하던 가족 외식도 지금은 그 횟수가 2~3주에 한 번으로 줄었다. 가족 나들이는 꿈도 못 꾼다. 최근 아이가 둘이 되면서 외출하기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나들이가 잦아지면 그만큼 지출이 늘기 때문이다. 맞벌이의 특성상 아이들을 돌봐주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사도우미가 필수적이다. 그동안 베로니카가 출근해 집에 돌아가는 시간까지 도우미를 썼다. “지난해에는 도우미가 매일 하루 종일 일하면 월급으로 300달러를 줬지만 올해에는 500달러를 줘야 해요. 우리 월급으로는 무리예요.” 도우미 급여가 큰 부담이 돼 도우미가 일하는 시간을 반나절로 줄였다. 베로니카는 가끔 지인들을 통해 영어 시험을 대비하는 학생을 소개받아 개인 과외를 하고 있다. 한 달에 50달러 정도의 미미한 추가 수입이지만 조금이라도 가계에 보태기 위해서다.
국민은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에콰도르 정부는 특별한 대책이 없는 듯하다. 물가는 오르지만 임금수준은 제자리다. 실제로 올해 3월에 산정된 기본 장바구니 가격은 551.87달러지만, 같은 기간 4인 기준 가정의 평균수입은 492.8달러로 그 수준에 못 미친다.
“국민의 사정은 나 몰라라 하면서 5월에 있을 헌법 개정 관련 국민투표 때문에 멀쩡한 도로를 파헤치고 다시 아스팔트 포장공사를 하고 있는 건 세금 낭비라고요!”
베로니카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잖아도 살기 힘든데, 최근 정치적 갈등으로 에콰도르 주재 미국대사를 추방한 사건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농산물 수출이 막혀 경제가 더 나빠질까봐 걱정이네요.”
주택 마련 지원 있어 그나마 다행
물가 인상과 관련해 현 정부가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하는 것 중 하나는 서민의 주택 마련을 적극 지원하는 제도다. 에콰도르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하루에 1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라도 사회보장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 매월 일정한 비율의 금액을 납부하도록 해 다양한 혜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사회보장보험에 가입한 노동자는 주택을 구입할 때 시중은행 금리인 11~13%보다 낮은 8~10%에 대출을 할 수 있다. 최대 15년의 기간 내에 상환하면 된다. 이 제도 덕분에 베로니카도 얼마 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매월 대출금을 갚고 있다. “이제 한 달에 몇백달러씩 나가던 월세를 안 내도 되니 정말 좋아요.” 베로니카의 환한 웃음에, 생활고가 잠시 비켜섰다.
키토(에콰도르)=글·사진 왕승희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남미학과 석사과정
<hr>‘일상의 적’이 된 물가 인상
대가족의 며느리 일본 도쿄의 후지와라… 뛰는 식재료에 외식 줄였지만 “치솟는 기름값은 체감 1순위”
도쿄 번화가에서 전철로 70분, 사이타마현 이루마군 오고세마치에 사는 후지와라 도모코(46). 사립고 교사인 남편의 아내, 1남3녀의 어머니, 군인유가족 연금생활자인 시어머니의 며느리, 특수학교 비상근 교사까지 ‘1인 4역’을 소화하는 그에게 물가 인상은 ‘일상의 적’이다.
물가와 자녀 학비 마련 위해 ’알바’
대가족이다 보니, 총지출 1순위는 식재료. 계산대에서 물가 인상폭을 단박에 느낀다.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밀가루 가격이 올라도 매일 사는 게 아니라 민감하지 않았는데, 아이들 눈치는 당해낼 수 없다. “엄마, 이거 개수가 줄었어요!” 빵과 과자는 가격 변동 없이 크기와 양이 줄어버렸다. 결국 하나 더 사야 한다. 도모코에게 물가 인상 체감 1순위는 자동차 기름값. 첫 출산 뒤 전업주부와 알바주부를 교대로 능숙하게 소화해온 그가 장을 보러 가거나 늦은 시간 아이들을 역에서 집까지 태워올 때, 직장을 오갈 때 이동수단은 모두 자동차. 지난해까지 보통 4천엔(약 5만2300원)으로 한가득 채우던 게 비싸져, 주유소에 갈 때마다 지갑 속 현금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도모코 집안의 식재료비는 연금을 받는 시어머니가 보태줘 큰 문제가 없지만 외식은 다르다. 특별한 회식이 없는 저녁 무렵,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남편에게 외식은 한편의 유혹. 그러나 외식 때 드는 생맥주 한 잔 비용이 점심 한 끼와 맞먹고, 과일 몇 조각이면 해결될 후식비가 음식점에선 만만치 않은 디저트 비용으로 추가되니 살 떨린다. 어차피 연비 절약 차원에서 차도 5인승으로 바꾼 터라, 차 한 대로 온 가족 외출과 외식이 불가능해진 것을 이용해 물가 인상 제1의 희생양은 자연스레 외식. 대신 초밥을 시켜먹는 정도로 때운다. 그러면 맥주와 디저트 값이 ‘굳어서’ 아꼈다는 느낌이 쏠쏠하다. 평소 장을 볼 때는 슈퍼마켓 ‘포인트 3배의 날’. 채소나 냉동식품 반값 행사를 이용해 알뜰 장보기도 한다. 신문과 함께 배달되는 할인 전단지를 유심히 챙겨보는 이유다.
매년 봄이나 여름방학에 맞춰 가족여행을 해왔다. 남편이 학교 수학여행의 답사전담반이라 그때를 이용해 장거리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한 사람분의 여행 경비가 빠지므로 최대의 기회다. 올해는 태평양전쟁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로 역사기행을 떠날 예정이다.
물가 인상 대책 겸 목돈이 드는 학비 보충을 위해 도모코는 ‘알바’를 뛴다. 장녀는 공립대 학생이라 연 50만엔, 사립대에 다니는 장남은 연 99만엔, 나머지 중고생 둘을 합쳐 연 60만엔이 든다. 아이들이 어릴 때 들어놓은 학비보험만으로는 감당 불능이다. 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와 교재 비용도 만만찮다. 그래서 도모코는 ‘방과 후 학교’ 파트타이머로 주 2회(시급 900엔) 일한다. 올해는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초등학교에서 비상근 교사(시급 2700엔) 일도 시작했다. 한시적 채용이라 매년 가능하리란 보장은 없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정부 물가대책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데,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뾰족한 물가 대책 없이 외려 소비세 5% 인상안을 내놓고 국민 눈치를 보고 있다. 민주당 선거공약인 어린이 수당으로 중학생 막내딸 몫 월 1만3천엔을 받았는데, 예산 부족으로 언제 끊길지 모른다. 어린이 수당으로 학원비를 충당해온 부모들에게는 큰 타격이다. 그나마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전기나 가스 절약을 생활화한 결과로 이달 광열비가 줄었다. 예산 부족 운운하며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에 한마디 하고 싶다.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고 방사능 걱정 없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뿐 아니라 물가 대책 방안까지, 제발이지 함께 신경 써달라!”
도쿄(일본)=황자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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