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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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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대학의 등록금 부당거래

대학 자율화 미명 아래 등록금 상한제 반대하는 대학…
6조원 예산으로 반값 등록금 가능한데 학생에게 빚만 지우는 정부
등록 2011-04-06 17:21 수정 2020-05-03 04:26

올해에도 어김없이 등록금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전국 대학에서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그 참여도 뜨겁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대학가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가 대학 등록금이었다. 매해 새 학기가 되면 수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 등록금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목을 조이는 ‘괴물’로 성장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엇이 이 ‘괴물’의 싹을 방치했을까? 여기에는 그간 한국 사회에서 묵인돼온 오래된 오해들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3월2일 서울 동국대에서 동국대 학생과 등록금넷 회원, 민주노동당, 시민단체 회원들이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지난 3월2일 서울 동국대에서 동국대 학생과 등록금넷 회원, 민주노동당, 시민단체 회원들이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대학 자율화는 절대선일까. 가장 오래 묵은 오해 가운데 하나다. 대학 처지에서 볼 때 정부의 대학 자율화 조처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등록금이다. 1989년 등록금 자율화 조처 이후 등록금은 대학이 ‘알아서’ 책정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의 개입 여지는 줄어들었다. 올해 등록금 상한제가 시행되자 대학 총장들이 입을 모아 “등록금 상한제는 대학 자율성을 무시한 위헌적 법률”이라며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자율화’라는 미명 아래 대학에 재정 마련의 책임을 떠넘겼고, 대학은 다시 학생과 학부모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서조차 개인의 책임이 당연시되며, 정부의 조처는 무엇이든 ‘부당한 개입’인 양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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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등 등록금 규제

대학 자율을 보장하면서도 등록금에 일정한 규제를 가하는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회원국에서 일반화된 일이다. 독일은 2005년 등록금 징수제도를 도입했다. 세부 사항은 주법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수업료 책정은 정부 지침이 우선이다. 한국이 모범으로 삼고 있는 미국조차도 상원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과도한 등록금 인상을 규제하는 법안을 연방 하원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OECD 국가들이 등록금 규제를 하는 것은 대학 자율이 한국에서처럼 대학 운영자들만의 ‘자율’을 보장하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학 자율 못지않게 국민 교육권을 보호하고 신장시킬 의무가 있다.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이 곧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한다. 이 논리도 지난 수십 년간 등록금 폭등을 합리화한 ‘신화’ 중 하나다. 대학 재정이 등록금 수입만으로 구성되는 것도 아닌데, 국가와 대학이 책임져야 할 몫까지 교육의 질 향상을 바라는 학생·학부모에게 강요됐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사립대학의 한 해 평균 등록금이 2000년 449만원에서 2010년 754만원으로 305만원(67.9%) 인상되는 동안, 대학 교육여건 평가의 기본 지표가 되는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32.8명에서 30.3명으로 2.5명(7.6%) 줄었을 뿐이다. 더구나 조사 대학의 44%는 10년 전보다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오히려 늘었다.

학자금 대출은 대안이 아니다

반면에 사립대학이 쌓아놓은 적립금 총액은 10조원을 돌파했다. 2001년 4조6천억원에서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적립금을 활용한 주식투자까지 허용돼 대학에 따라 수십억원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대학 당국의 불법·부당 운영으로 인해 교육과학기술부 감사에서 적발된 대학 재정 손실액만도 연평균 500억원에 이른다. 등록금 인상으로 대학은 부자가 됐는지 모르지만, 교육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잘못된 재정 운영으로 등록금은 새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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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등록금의 탈출구가 학자금 지원에 있다는 오해도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을 만든다. 현재 정부는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안으로 학자금 지원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확대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도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무상 장학금을 지원받으려면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대학이 제공하는 장학금도 경제 형편보다는 성적 우수자 중심이다. 여전히 한국 대학의 8할은 등록금 감면액의 30%를 의무적으로 가계곤란 학생에게 지원하도록 한 법 규정조차 준수하지 않고 있다. 경제 형편에 따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현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뿐이다. 하지만 이 제도를 통해 사립대학 4년간의 등록금을 마련한다면 이 학생이 취업 뒤 평생 갚아나가야 할 금액은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마저도 평점 B학점 이상을 받지 못하면 대출 자격이 없다. 고액 등록금에 대한 탈출구라고 보기에는 그 문이 너무 좁을뿐더러 현재의 고통을 미래로 미루는 돌려막기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고(高)등록금 정책을 지속하면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인상이냐, 동결이냐를 넘어 등록금을 낮추는 저(低)등록금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여당도, 야당도, 국민도 등록금에 대한 대안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지만 등록금 부담을 최소한 반으로 낮춰야 한다는 데에는 일정한 합의를 이루고 있다.

반값으로 해도 OECD 고등록금 국가

이명박 정부 공약 사항인 ‘반값 등록금’은, 실현되기만 한다면, 고액 등록금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반값 등록금’(연간 등록금 약 350만원)은 세계 기준으로 보더라도 결코 터무니없는 수치가 아니다.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등록금 부담률은 소득 대비 10분의 1이 안 되는 반면에 한국은 3분의 1을 육박하고 있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춰야 그나마 OECD 평균 수준에 근접하게 된다. 더구나 이 액수는 OECD에서 등록금 고·저 국가를 구분짓는 기준선이 1500달러(약 165만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리한 수준이라 할 수 없다.

예산 확보 측면에서도 그렇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대학생 등록금 총액은 약 14조원이다. 현재 정부와 대학이 지급하고 있는 학자금 지원 예산을 제외하면, 약 6조원 내외의 추가 예산만 있으면 ‘반값 등록금’은 가능하다. 이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낭비성 예산들을 바로잡고,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는 고등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충분히 확보하고도 남을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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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대학생이 너무 많은 한국 현실에서 이런 예산 투자가 ‘사회적 낭비’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장이 사회 진출의 기본 조건이 돼버린 현실에서 개인의 눈높이만 낮추라는 것이 과연 설득력 있겠는가? 더구나 고액의 등록금을 그 진입 장벽으로 세워놓고 말이다. 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는 사회에서 적정한 대학 진학률도 논의될 수 있다.

이수연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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