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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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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잃은 '남부 식민지'

등록 2000-07-19 00:00 수정 2020-05-02 04:21

19세기 통일왕국 건설기부터 갈등 싹터… 유럽연합 탄생으로 남부 필요성 의심

이탈리아 남북부 문제의 기원은 1860년 통일왕국 건설기로 거슬러올라간다. 통일 이전까지 남부는 북부보다 오히려 부유했다고 한다. 농업과 이를 기반으로 한 가공산업 등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통일은 당시 성장하는 세력으로 떠오르던 북부 산업부르주아지의 주도로 이뤄졌다. 통일을 주도한 정치세력도 북부 피에몬테주에 있었다.

통일 이후 이탈리아 중앙정부는 북부 산업부르주아지의 이익 중심으로 국가개발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남부는 북부 산업자본의 소비시장, 저렴한 노동력 공급기지로 전락하면서 낙후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런 측면들 때문에 이탈리아 남부문제를 연구하는 ‘남부론자’들은 종종 “남부의 저발전은 북부에 의한 착취 때문”이라며 “남부는 북부의 내부 식민지였다”고 종종 결론짓는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이후 집권한 구기민당 세력은 남부의 산업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금전을 투하하는 직접 지원 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남부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남부개발기금이라는 기구가 설치돼 가동됐다.

그러나 남부개발기금은 저발전 지역의 개발전략 가운데 최악의 사례로 기록됐다. 남부개발기금을 통해 집행되는 공공사업비의 상당액은 실제 사업보다는 중간 단계, 즉 사업을 따낸 과정에서 로비를 한 정치인과 그 배후의 마피아 수중으로 흘러들어갔다. 도로가 엄연히 있는데도 마피아 사업가의 요구에 따라 길 하나를 옆에 더 닦는다며 사업비를 타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남부 주민들도 이런 관행에 어느 정도 길들어진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남부 주민들은 집권 기민당에 정치적으로 종속돼 분리나 산업개발을 주장하기보다는 기존의 기금 지원제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측면 때문에 구공산당은 남부개발기금식의 남부지원 사업을 “기민당의 돈주머니를 불리는 일”로 규정하고 반대했다. 부패의 전모는 92년 마니풀리테 운동이라고 불린 대대적인 정치권 사정을 통해 드러났다.

90년대 들어 북부에서 분리주의가 대두한 것은 유럽연합의 확대발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북부의 산업부르주아지들은 소비시장으로서의 남부의 존재 필요성을 더이상 느끼지 않게 됐다. 유럽 단일 시장이라는 더 큰 시장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경제발전 정도가 낮은 남부는 오히려 이탈리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데 따른 장애물로 인식했다. 실제로 북부동맹쪽은 유럽 화폐통합 문제 등과 관련해 “자격을 갖춘 지역이 먼저 가입하고 남부는 실력이 되는 대로 나중에 들어오면 될 일인데, 남부 때문에 발목잡힐 이유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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