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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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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을 속박한다

지난 10년을 대표하는 사물, 인터넷과 휴대전화
물리적 거리의 개념을 바꾸고 세상의 경계를 지우다
등록 2010-12-29 17:58 수정 2020-05-03 04:26

얼마 전 중국 베이징 단체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와 등의 만화로 유명한 인기 만화가 조경규씨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었다. 가족과 함께 베이징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조씨는 모두 6명의 직장인으로 구성된 ‘조경규 팬클럽’의 중국 방문을 흔쾌히 허락했다.

Discarded mobile phones

Discarded mobile phones

뉴미디어는 ‘믿는 구석’이 될 수 있는가

주지육림의 나날이었다. 조경규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을 통해 중화요리의 변화무쌍한 세계를 국내에 소개해온 맛의 전도사로서, 취재를 위해 날마다 한 끼 이상은 낯선 중화요리를 묵묵히 먹어온 진정한 맛의 탐험가라 할 수 있겠다. ‘새끼돼지 통구이를 곁들인 대륙의 만찬’ 등 그가 추천한 메뉴는 환상적이었다. 중화요리의 화려한 맛과 색에 취해 여섯 개의 혀는 여행 기간 내내 혼수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조경규 팬클럽이 매번 하나의 깃발을 따라다닌 것은 아니었다. 취향이 제각각인데다 마치 6마리의 판다처럼 게으르기까지 했던 팬클럽은 조경규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면 뿔뿔이 흩어졌다. 이를테면 베이징을 처음 방문한 몇몇은 자금성은 가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다른 이들은 호텔에서 ‘대륙의 시체놀이’를 체험하겠다고 버텼다.

각자 고집을 꺾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휴대전화 덕분이었다. 젊은 층 상당수가 이용하는 무선인터넷 기반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카카오톡’도 믿는 구석이었다. 각자 어디에 있든 휴대전화와 카카오톡만 있으면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으니,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6마리의 게으른 판다는 따로 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최첨단 뉴미디어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뉴미디어의 신세기와 다름없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는 각각 이 선정한 ‘21세기 첫 10년을 대표하는 사물’ 1위(47명)와 2위(33명)에 올랐다. 전체 100명의 전문가 가운데 80%가 21세기 첫 10년의 상징으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꼽았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인터넷과 진화형 휴대전화인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트위터(8명)를 비롯해 구글(7명), 네이버(2명) 역시 나란히 3~5위를 차지했다. 이쯤되면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없는 21세기란 상상 불가다.

실제로 지난 2000년 이후 한국인의 삶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차지하는 공간을 빼놓기란 어렵다. 언론사 기자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는 직군에 속한다. 기자는 인터넷 전자우편을 통해 기사의 재료라 할 수 있는 1차 정보 및 자료를 주고받는다. 취재 현장이 어디든 휴대전화만 있으면 사무실에 있는 데스크와 소통할 수 있다. 기사나 사진은 현장에서 무선인터넷을 활용해 곧바로 보내고 있다.

» 21세기 첫 10년의 중요한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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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전자통신 기술상의 변화를 강조하는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최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통신기술 혁명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통신기술 혁명은 물리적 ‘거리의 파괴’로 이어졌고, 그에 따라 ‘국경 없는 세계’가 출현하면서 국가의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57쪽,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자, 그렇다면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세례를 듬뿍 받고 있는 당신과 나의 21세기 첫 10년은 충분히 행복했을까. 다시 최근 중국 베이징을 찾은 6마리의 판다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베이징 여행이 마냥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역시 인터넷과 휴대전화 탓이었다. 각자 놀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6마리의 판다는 귀국일까지 ‘오후 4시에 베이징 공항에서 만나자’는 두루뭉술한 약속만을 나눈 채 다시 개별 일정을 진행했다. 각자 어디에 있든 휴대전화와 카카오톡이 서로를 만나게 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우선 최후까지 따로 행동하던 늙은 남자 판다는 베이징 국제공항 제3터미널 스타벅스에서 느긋하게 일행을 기다렸다. 4시가 되기 직전 그의 카카오톡에는 ‘4시까지 스타벅스로 오세요’라는 일행의 메시지가 떴던 것이다.

일행은 4시 이후에도 오지 않았다. 초조해졌다. 일행을 만나지 못하면 귀찮은 일이 연속으로 발생할 수 있다. 우선 일행이 지니고 있는 단체비자와 항공권을 포기해야 한다. 항공권이야 큰 문제가 아니라 해도 비자가 없다면 곤란하다. 불안감이 엄습하자 그때까지 들리지 않던 중국어 특유의 성조가 귓바퀴를 맹렬히 갉아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의 배터리는 고작 6%가 남은 상황. ‘아, 태양열로 충전할 수 있는 아이폰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벨과학상급 공상이 머릿속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4시30분이 됐다. 그제야 늙은 판다는 서울행 비행기가 베이징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뜬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제2터미널로 이동하는 10분이 열흘처럼 느껴졌다. 도착하자마자 카카오톡 메시지를 떠올리며 스타벅스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늙은 판다는 그제야 배터리 6%가 남은 휴대전화를 쓰기로 결심했다. 최후의 필살기에 남은 공력을 모두 쏟아붓듯 최선을 다해 일행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부숴버리고 싶은 사물 1위, 휴대전화

중국의 이동통신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불통이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결국 조경규 팬클럽이 다시 만난 것은 비행기 이륙 직전이었다. 공항 직원에게 손짓 발짓을 다 해가며 물어본 끝에 일행이 아직 발권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길목에서 무작정 기다린 작전이 통했다. 문제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사실은 3일 전 보내진 메시지였다는 사실, 그리고 해외 로밍 휴대전화의 수신율이 좋지 않아 다들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도 일행을 만난 뒤 확인했다.

휴대전화는 이 선정한 21세기 첫 10년의 ‘부숴버리고 싶었던 사물’ 1위(24명)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형마트(9명)와 명품(8명), 커피전문점(5명)이 그 뒤를 이었다. 21세기 첫 10년의 ‘중요한 사물’ 1위에 선정된 인터넷은 ‘부숴버리고 싶었던 사물’ 부문에서도 5위(4명)에 올랐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니네는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
<font size="3"><font color="#006699">4대강 보 쌓는 포클레인은 사라지길</font></font>


이 선정한 ‘21세기 첫 10년의 부숴버리고 싶었던 사물’ 1위는 사실 ‘기타’ 답변이다. 부숴버리고 싶었던 사물에 관한 질문에 모두 38명의 응답자가 제각기 다른 기억을 호출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 등 4명이 ‘4대강 보’나 ‘4대강 관련 설비’를 꼽았다. 이와 별개로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불도저’를, 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와 김헌태 민주주의의친구들 대표는 ‘포클레인’을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 부숴버리고 싶었던 ‘사물’을 묻는데도 굳이 유정물로 답변한 사람도 있었다. 만화가 윤태호씨와 고원 서울산업대 교수,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등은 ‘이명박과 한나라당’ 혹은 ‘이명박 정권’을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교양학과)는 ‘한국 재벌’을, 미술평론가 임근준씨는 ‘엉터리 지식인 혹은 그들의 책’을 꼽았다.

21세기 첫 10년의 부숴버리고 싶었던 사물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장 창의적 답변이 많이 나온 문항이기도 했는데, 연일 격무에 시달리는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형광등과 전구’라는 답변과 함께 “밤늦도록 일하게 만드니까”라고 설명을 달았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목사)은 ‘교회’를 꼽아 눈길을 끌었다. 김 실장은 “해방 이후 이념이나 인종, 성별에 따른 갈등이 ‘분노의 정치’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한국의 주류 교회가 많은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술평론가 반이정씨는 ‘기타’를 선택한 이유로 “미워도 사람이 밉지, 사물이 미울 일은 없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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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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