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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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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선고 5달, 바뀐 건 아무것도 없네

[특집] 노동 부문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도 2년 근무 뒤 직접고용 간주” 대법원 판결…

후속조처 않는 회사, 점거농성으로 맞서는 노동자
등록 2010-12-09 14:36 수정 2020-05-03 04:26

변호사의 전화를 받은 건 대법원 선고공판 전날 밤이었다. “마지막이니까 그래도 다녀와야지 않겠어요?”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 고등법원… 내리 패했다. 그래도 고등법원까지는 설마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는 게 습관이 됐다. 대법원 선고공판에는 변호사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큰 기대는 하지 말자”고 했다. 지는 것 말고 다른 결론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지난 7월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까지 혼자 가야 하는 길은 멀었다. 최병승(36)씨가 부당해고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을 시작한 게 2005년이니, 대법원 판결까지 5년이 걸렸다.

파견과 도급, 그 공허한 논란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공장을 점거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1월23일 밤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울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공장을 점거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1월23일 밤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울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2년 스물여덟의 나이로 현대자동차 공장 정문에 들어섰을 때를 최씨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는 ‘현대자동차’라는 이름의 점퍼를 입지 못했다. 울산에서 ‘현대’라는 이름은 부와 지위를 상징했다. 그는 현대차 사내하청 예성기업의 시급 2510원짜리 비정규직으로 출근했다. 무료 정보지를 펼쳐 선택한 곳이었다. 그때 알았다. 어느 기업에 가든 시급과 노동시간은 동일했다. 몇 년 전 정규직원들이 쫓겨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라는 건 울산에서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 현대차 안의 사내하청 직원 모집공고가 대여섯 개 정보지마다 대여섯 면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이름이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했다. 전화를 건 당일 업체에서는 “야근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내일 봅시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질문은 성실성을 테스트하는 면접 질문이었다. 4명이 함께 출근했고, 정규직과 함께 자동차 키박스를 조립했다. 주·야간 10시간, 주말 특근 14시간을 견뎌야 했다. 첫날 2명이 그만뒀다.

2년은 묵묵히 일했다. 정규직과 함께 자동차 키박스를 달았다.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입고 있는 점퍼와 월급봉투 정도였다. 이상했다. 그래도 억울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노동부에서 ‘현대자동차 1만여 명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2004년의 일이었다. 노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게 그때다. 정규직원이 된다는 것, 같은 일을 하니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당연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하지만 정규직원 자리는 쉽지 않았다. 회사 쪽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공장을 점거했다. 결과는 해고였다. 그리고 점거를 이유로 1년여의 수배 끝에 구속됐다. 이후 5년 동안 해고자로 살았다.

이번 소송에서 피고는 최씨의 구제 신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은 중앙노동위원회였다. 하지만 사실상 상대는 ‘피고 보조참가인’인 현대자동차였다. 최씨는 “사내하청 업체 소속이지만 현대차의 지시·감독을 받아왔고 따라서 현대차가 고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현대차가 해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령 현대차가 실질적인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노동부의 판정대로 ‘파견’ 근로자인 만큼 파견근로자보호법 규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뒤에는 현대차에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이에 현대차 쪽은 “사내하청은 파견이 아닌 도급”이라는 논리로 맞섰다. 파견과 도급은 작업 지시권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업 지시권을 하청업체가 행사하면 도급이고, 원청인 현대차가 행사하면 하청업체 소속의 근로자를 파견받아서 사용하는 것이니 파견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전자의 경우 파견근로자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1·2심 재판부는 한결같이 최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현대차의 사내하청 업체가 최씨의 실질적인 사용자”라고 판시했다. 파견 근로자 신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1·2심 재판부는 한단계 더 나아가 “최씨와 현대차, 하청업체와의 관계가 파견이라는 최씨의 주장이 맞더라도, 파견근로자보호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파견은 적법한 파견을 말하고 최씨의 경우에는 불법파견이므로 최씨에 대해서는 파견으로 2년을 근무한 경우에는 원청업체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내하청 관련 판결의 종합판”

그러다가 상황이 조금 변했다. 2008년 “불법파견도 2년 이상 근무했다면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08년 선정 최고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사내하청 업체의 업무가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라는 점만 인정받으면, 그것이 합법 파견이든 불법 파견이든 원청업체에 고용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지난 7월22일, 최씨는 대법원 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의 판결을 기다리며 대법원 법정에 섰다. 판결을 듣는 동안 중간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와 말미에 “파기 환송한다”는 말이 들렸지만 고등법원의 판결과 어떻게 다른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현대차 본사 법률팀 직원들이 술렁이자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악수를 건네왔다.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판결문 사본을 찾아오라”며 환호했다. 정작 최씨 본인은 판결문에서 “(파견 기간이) 2년을 초과한 날부터 현대차가 최씨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목을 읽고 나서야 실감했다. 하루 종일 참았던 담배를 물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는 파견법이 적용되지 않는 도급’이라는 현대차의 주장에 대해 “하청업체가 반장·팀장을 따로 두고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더라도 본사가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거나 (하청업체 근로자가) 도급인(회사)에 의해 통제됐다면 파견”이라고 판시했다. 고용의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한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 좌우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란히 배치된 상태에서 업무 시작과 종료 시점, 작업의 양과 순서, 속도, 휴게시간, 야근 등을 모두 현대차가 결정한 점을 근거로 이를 하청(도급)이 아닌 명백한 파견으로 판단했다. 자동차 업계는 이 판결로 발칵 뒤집혔다.

정인섭 심사위원(숭실대 교수·법학)은 “자동차 업체의 사내하청을 도급이 아닌 파견이라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파견의 범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불법파견에도 파견법이 적용된다는 이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수용했으며, 원청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사내하청과 관련된 판결의 종합판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파견기간이 2년이 안 된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외면한 셈이어서 아쉬운 점은 있다”며 “이 판결이 대기업 사내하청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막무가내 버티기 나선 자동차 업계

이번 판결로 현대차에만 7천 명에 이르는 최씨와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길이 열렸다. 하지만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파기환송심의 결과를 봐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파기환송심은 통상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그대로 수용하는 만큼 재판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현대차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최씨가 근무했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940명이 지난 11월4일 서울중앙지법에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집단소송을 냈다. 이뿐만 아니다. 기아차, GM대우 등 각 자동차 업체별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특별교섭과 임금 차이 보전을 위한 줄소송이 예고돼 있다.

“법은 누구 편인가요?”

최씨는 묻는다. 회사 쪽에서는 여전히 파기환송심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며 아직 재판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2년 넘게 일해온 사내하청 업체 직원들을 정리해고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1월13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라인을 점거했다. 하청업체 폐업 등으로 문제가 된 시트1부 직원들을 중심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울산공장 지회 500여 명이 1공장 3층 ‘도어탈착 라인’ 점거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판결을 그대로 따르자면 이미 정규직원이 됐어야 할 최씨의 동료들이다. 5년 만에 자신이 일하던 공장의 라인이 다시 멈춘 날, 최씨는 울산으로 내려갔다.

최씨는 컨테이너로 막힌 정문을 넘어 농성장으로 들어갔다. 점거 사흘째인 지난 11월15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출입이 자유로운 정규직 조합원을 따라 몰래 들어간 점거 농성장은 자신이 일하던 곳이었다. 최씨는 어렵사리 찾아간 자리에서 동료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동료들은 그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또 붙잡혀가려고 환장했냐” “돌아오기도 전에 또 해고될 생각이냐”는 동료들의 성화에 쫓기듯 발걸음을 돌렸다. 2005년 불법점거를 이유로 수배 중일 때 월급을 떼서 생활비를 마련해준 동료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걱정해주는 동료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말도 자신이 보낸 5년을 생각하면 자신이 없었다. 대법원 판결로 뭔가 변할 줄 알았는데 자신이 일하던 일터마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2005년 점거 때에도 외부의 공조를 차단한다며 현대차는 컨테이너로 성을 쌓아 정문을 막았다. 당시에도 회사 용역들이 점거 현장에서 대치했다. 그리고 또 보름이 흘렀다. 여전히 한기가 뻗치는 공장 라인에서 동료 500여 명은 밤을 지새운다. 전기가 끊겼다 이어지고, 음식도 하루 걸러 한 번씩만 반입이 허용된다. 팀장·반장 등 관리직들이 각 가정을 찾아가 손해배상 소송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회사는 벌써 이상수 지회장 등 노조 관계자에게 6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농성장의 희망으로 남아있는 판결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2002년 함께 입사한 동료는 전화를 걸어와 “그래도 네가 있으니 점거를 하는 우리도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가 받아낸 판결이 그들에게는 희망이 됐다. 정말 희망이 있는 것인지 속으로 되묻는다. 500명의 동료들이 자신처럼 5년의 소송을 겪지나 않을지, 혹시 해고로 거리에 나앉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동료들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안부를 전하지만 긴 말을 할 수가 없다. 줄담배를 피할 수 없다.

심사위원 20자평

정연순 사용주를 사용주라 부르지 못하고…에 일침을

김태규 불법파견의 책임을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최은순 직접고용 회피 위한 불법파견 차단의지

하어영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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