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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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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익보다 국민 건강 먼저!

[특집] 생활 속의 권리 부문 발암우려물질 생수 적발하고도 업체명 공개 않는

행정당국에 일침 놓은 서울고법 판결
등록 2010-12-09 14:21 수정 2020-05-03 04:26

어느 날인가, TV를 보며 밥을 먹다 토할 뻔한 적이 있다. 환경부에서 ‘발암우려물질’인 ‘브롬산염’을 국제기준보다 과다 함유한 생수 업체를 단속했다는 내용이 TV를 통해 보도되고 있었다. 집에는 마트에서 산 생수가 3통이나 남아 있었다. 집에 있는 생수가 문제 있는 제품에 포함됐으면 당연히 교환을 하든지, 좀더 민주주의적 시민으로 거듭나려면 손해배상까지 요구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던 환경부는 ‘이미 문제가 되는 제품은 다 회수했고, 기업에 손해를 줄 수 있다’는 엽기적인 이유를 들어 제품명을 비공개하겠다고 했다.

기업 손해 우려해 비공개한다는 발상

서울 시내 한 생수 하역장에서 직원들이 생수를 나르고 있다.한겨레 자료

서울 시내 한 생수 하역장에서 직원들이 생수를 나르고 있다.한겨레 자료

타던 차가 결함이 생겨도 리콜을 해주고, 입던 옷에 흠결이 있어도 새것으로 교환해주는 것은 상식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에서 발암우려물질이 나왔는데 해당 기업명을 밝히지 않겠다니 환경부의 기업 편향적 발상에 많은 시민이 분노했다.

참여연대는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이 소송은 참여연대의 승소가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9조 1항 7호에 보면 ‘사업활동에 의하여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공개하도록 법으로 명시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난 10월14일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곽종훈, 배석판사 이재석·이완희)는 “국제기준을 초과한 브롬산염이 포함된 샘물회사 명단은 업체의 명성이나 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업 비밀이긴 하지만 사업으로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과 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시해 회사 명단이 정보공개 대상임을 명확히 했다.

이 상식적인 판결은 앞으로 많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이같은 정보공개 청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최근 몇 년간 이와 비슷한 정보공개 청구를 수차례 했다. 일례로 각 구청을 상대로 ‘어린이집 지도감독 결과’를 정보공개 청구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경기 지역 전체를 상대로 했는데 결과가 재미있었다. 유통기한을 넘긴 음식을 보관하다 적발된 어린이집, 화재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어린이집 등 다양한 내용의 감사 결과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 한 가지가 공개되지 않았다. 바로 어린이집 ‘이름’이다. 어느 어린이집의 감사 결과인지 이름을 쏙 빼놓은 채 단속 내용만 공개한 것이다. 이유로는 하나같이 “법인·단체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는 것이다.

지금도 유사 사건에서 태도 엇갈리는 정부

지금도 쇠고기 및 채소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업소명, 과다한 수수료를 받아 단속된 부동산 업체명, 집단 식중독을 일으킨 업체명 등에 대해 유사한 정보공개 청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청구에 대해 공공기관들의 대처도 우왕좌왕이다. 공개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환경부처럼 비공개하기도 한다. 재밌는 사실은 해당 분야 이외의 공무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대부분 공개해야 한다고 힘을 주며 대답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이번 소송은 앞으로 이런 혼란에서 많은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기업의 명예나 이익보다는 국민의 생명·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임을 명확히 짚어준 판결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정보를 국가가 나서서 미리 공개하는 ‘거번먼트 2.0’ 운동이 한창이다. 우리와 대비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판결로 우리 사회에서 ‘국민의 알 권리’가 더욱 확대되었으면 한다.

심사위원 20자평

안진걸-국민 건강보다 기업 보호만 신경쓰는 정부에 경종을 울리다

김태규-감출수록 매를 벌지

정은순- 생명, 건강과 관련된 정보는 샘물처럼 투명하게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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