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제재 동참이 낳을 경제적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이란 멜라트은행에 대한 징계 조처를 발표한 9월8일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멜라트은행 모습.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줄타기, 두 마리 토끼 잡기.’
한국 정부가 9월8일 발표한 포괄적 이란 제재를 놓고 나오는 평가다. 정부는 이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이란 제재 결의 1929호에 따라 이란 혁명수비대, 이란 국영해운회사, 멜라트은행 등 이란의 단체·기관 102곳과 개인 24명을 금융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는 등 금융·무역·운송·에너지 분야에서 포괄적 이란 제재 조처를 발표했다.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해 미국이 요구하는 지점 폐쇄나 자산 동결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개월 영업정지를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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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한-미 동맹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이란과의 경제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나온 선택이다.
줄타기는 아슬아슬하다. ‘어름사니’ 정도는 돼야 바닥에 꼬꾸라지지 않을 텐데, 지금 한국 외교는 그 경지에서 한참 멀어 보인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지 않았나? 지금의 상황은 이렇게 뻔한 말을 하게 만든다. 한국 외교를 책임지는 외교통상부는 부처의 수장인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문제로 발칵 뒤집혀, 집안 문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외교는 어쩌다 아찔한 줄타기에 내몰리게 됐을까? 고장난 음반처럼 다시 대미외교 편중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미 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미국 일변도의 쏠린 외교를 해오다 보니, 국제무대에서 한국은 전략동맹 관계인 미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도 파병해야 되고 이란 제재에도 동참하게 됐다. 한-미 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불필요한 사안에 서서히 연루되고 있다.” 이 소장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본다. 우리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지렛대인 남북관계를 현 정부가 방치함으로써 한국 외교의 입지를 약화시켰다는 설명이다.
박건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도 현 외교 난맥의 원인을 대미외교 편중에서 찾는다. “‘미국에 잘못 보이면 안 된다. 항상 동행해야 한다’는 타성이나 전통적 사고방식에 젖어 한국 외교가 미국 중심으로 계속 제약을 받고 있다. 한 해 교역 규모가 100억달러에 이르는 이란과의 경제적 이익을 위험에 빠뜨릴 만큼 전통적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관적 한국 외교의 선례를 남긴 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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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란 제재 동참은 밀린 빚을 갚는 꼴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 동참 요구가 ‘청구서’로 불리는 까닭이다.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연기, 천안함 사건규탄 적극 협조 등 미국의 외교적 지원을 받아왔다. 천안함 침몰사건 뒤 7월 말 실시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미국은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최신예 F22 전투기까지 파견하는 ‘성의’를 보였고, ‘자, 이제 당신 차례요’ 하고 청구서를 내민 셈이다. 외교는 주고받는 것이지, 공짜가 없다. 지금 한국이 원하지 않는 이란 제재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자승자박’인 셈이다.
자승자박의 궁지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크다. 한-미 동맹에만 매달리는 사이 남북, 한-중, 한-러 관계는 크게 악화됐다. 이런 현실은 천안함 국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은 중국이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낼 만큼 중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이란·아프간 등 중동 문제와 동북아의 안정 등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결국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줄서기는 길을 잃은 꼴이다. 당장 한국 전체 원유 소비량의 10%인 약 60억달러어치에 이르는 이란 원유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수출입이 전면 중단되면 경제적 피해가 한 해 1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우려된다.
‘비정상적’ 한미동맹이 부른 화근이란 제재와 관련해 ‘한-미 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을 저질러, 불필요한 경제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분석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평화는 한-미 동맹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 한-미 동맹 지상주의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냉철하게 우리 안보 현실을 고려할 때 한-미 동맹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라는 위협의 실체가 여전하고 도발의 징후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기댈 곳은 미국밖에 없다는 논리다.
국제사회는 국익이 최우선인 게 냉철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한-미 동맹에 치중하는 데 따른 손익계산의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당장 이란 제재에 동참해서 얻는 국익이 더 크냐, 미국이 요구하는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아 치르는 비용이 크냐의 저울질이다. 박건영 교수는 “한국의 외교안보에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때문에 정부도 고민을 했겠지만, 한국의 중대 이익이 걸린 문제에 대해 미국이 믿는 국제규범이 존재하더라도 (이를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국가 이익에 대한 장·단기적 균형을 따지는 게 필요하다. 분별력과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고 지적했다. 반면 문순보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이란 제재의 경제적 악영향은 단기적이고 지엽적이다. 반면 한-미 동맹의 괴리로 북핵 문제 등에서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안보 문제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이다. 근시안적으로 경제적 피해를 고려하면, 이란 제재에 참여해 국가안보에서 얻는 좀더 큰 국익을 놓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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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 탄생한 한-미 동맹은 미국이 맺은 대표적 냉전동맹으로, 탈냉전 시기에 접어들며 표류를 시작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긴장 완화가 적극 추진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동맹의 존재 이유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과 주한미군의 필요를 강조하는 냉전적 보수 담론이 지배하면서, 한-미 동맹은 해체되는 ‘정상적’ 수순을 밟지 않고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영구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18일 ‘한-미 동맹, 성공하고 있는가’라는 글에서 “동맹의 본래 목표보다는 양국 정권의 단기적 필요에 과도하게 치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손익 계산의 결과가 곧 나온다한국의 이란 제재 결정에 대해 미국 정부는 “환영한다” “감사한다”고 9월8일 밝혔다. 미국 은 10일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란 정부는 10일 현재까지 대응 조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제재 동참에 따른 보복 조처를 수차례 경고해왔다. 우리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지켜온 한-미 동맹의 가치와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한국 정부는 플러스·마이너스가 정확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줄타기에 나선 것일까? 그 계산이 맞는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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