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됐으나 지방자치법에 묶여 7월1일 취임과 동시에 업무가 정지됐던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두 달여 만인 9월3일 공식 집무를 시작했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부단체장이 그 권한을 대행하도록 한 지방자치법 111조 1항 3호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전날 해당 조항이 “헌법이 정한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공직의 윤리성·신뢰성에서 동일한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은 형 확정 전 직무정지 제도가 없는데 자치단체장에게만 이런 제재를 가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 지사를 묶었던 족쇄 하나가 풀린 순간이었다.
시기와 돈 전달 방식만 다른데…이 지사는 9월3일 오전 직원 조회를 통해 “인사는 보수적으로, 일은 혁신적으로 추진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히면서 △인사평가시스템 개선 △정책용역 지양 △정책제안 채택시 인센티브 제공 △학습동아리 지원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지사에게는 아직 더 큰 족쇄가 남아 있다. 헌법불일치 결정이 나온 지방자치법 조항은 직무를 정지시킨 정도였지만, 올해 말 혹은 내년 초로 예상되는 대법원 판결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확정될 경우 지사직을 아예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박연차(65·보석 중) 전 태광실업 회장 등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판결(2심)을 받은 바 있다. 최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데 일조한 그 ‘박연차’다. 박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의혹이 있는 김 후보자가 박 전 회장을 알고 지낸 시점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꿔 거짓말 논란이 불거졌고 이는 결정적 낙마 요인이 됐다.
박연차 전 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의혹의 얼개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나 1·2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유죄 판결을 받은 이광재 지사나 비슷하다. 이 지사는 2004년 5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다가 박 전 회장과 친한 뉴욕의 강서회관 곽아무개 사장한테 돈을 받았다는 혐의고, 김 전 지사는 2007년 4월 뉴욕 같은 식당에서 곽 사장의 지시를 받은 여종업원을 통해 돈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시기와 돈 전달 방식 정도인데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여서 검찰이 여야의 유력 정치인에 대해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이광재 지사 쪽에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경우 증거나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돈을 건넸다는 쪽 증언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박 전 회장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정·관계 인사는 모두 10여 명에 달하는데, 최근 판결에서 나타난 흐름을 보면 법원이 박 전 회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기 시작한 듯하다.
지난 8월12일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2심 재판부터였다. 재판부는 “2만달러를 주기 전까지의 상황, 2만달러를 줬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경위 등에서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바뀌고 있다”며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8월27일 이상철 전 서울부시장에 대해서도 서울고법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이 크게 번복되었고 실제 박 전 회장도 기억나는 대로 진술하지 않은 것을 자인한 경우도 있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박 회장 관련 사건에서 정치인 무죄 잇따라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법원이 여야 정치인에게 서로 다른 잣대를 대지는 않을 것이다. 박진 의원과 이상철 전 부시장에 대한 판결은 서울고법에서 나왔고 이 지사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결국 대법원이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지 여부에 이 지사의 정치적 미래가 달려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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