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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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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역, 김대중

김대중도서관에서 유품과 전언으로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
민주주의와 남북화해 퇴행에 “마지막까지 할 말을 하겠다”던 노익장
등록 2010-08-13 16:14 수정 2020-05-03 04:26
서거 1주년 추모 기간에 관람객에게 공개될 예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무실.

서거 1주년 추모 기간에 관람객에게 공개될 예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무실.

주인 잃은 시계는 혼자서도 잘 가고 있었다. 병원으로 실려가기 전 걸쳤던 옷가지와 한 몸처럼 의지했던 지팡이 옆에서. 늘 꼼꼼하게 기록했던 수첩, 연설문을 작성하기 전에 핵심을 추려 정리했던 메모들이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연설 요지 노트에는 정부의 반대로 낭독하지 못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조사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8월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품이 전시된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서거 1주기 추모 기간(8월10~18일)에 앞서 그를 만나러 갔다.

<font color="#00847C">민주주의자에게 은퇴는 없다</font>

그가 회의를 하거나 손님을 맞던 집무실 책상 위에는 와 이 놓여 있었다. 읽은 부분을 표시한 책갈피는 마치 어제 끼워놓은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넘었다.

집무실 벽에는 자그마한 세계전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지도를 보면서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버마의 수치 여사를 그리워했다. 자료를 보다가도 위치가 기억나지 않는 나라나 도시가 있으면 지도 앞에 섰다. 세계전도는 침실을 포함해 사저 곳곳에 걸려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인 1999년 청와대 공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인연을 맺어 퇴임 뒤 그의 ‘입’으로 살았던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의 설명이다. 입구 쪽 벽에는 생전에 손님들과 그 앞에서 사진을 즐겨 찍었던 노벨평화상 액자가 걸려 있다.

지난해 국장 당시에 공개됐던 ‘김대중 마지막 일기-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의 마지막 장은 아픈 다리를 치료받았다는 6월2일로 끝을 맺는다.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그리고 병원에서, 그가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공개 연설은 6월11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씀이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그 뒤 이런 일이 있었어요. 6월 말쯤 대통령께서 6·15 9주년 행사위원들이 수고했으니 점심을 같이하자고 했지요. 이해찬 총리를 포함해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밤마다 아내 손을 잡고 나라가 위태로운데 잘되게 해달라, 힘을 보탤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셨어요. 분위기가 숙연해졌지요. 어떤 분이 저희가 열심히 잘 할 테니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라는 취지로 말했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말씀은 하지 않으셨는데, 집에 돌아와 ‘난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죽는 날까지 민주주의와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할 말을 하겠다. 각오가 돼 있다. 필부들도 다 하는데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체면 생각해 아무 말을 않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라고 하셨어요. 언짢으셨던 거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실장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강요된 자살’의 책임을 물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실장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강요된 자살’의 책임을 물었을지도 모른다.

당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황망히 앞세우고 “절반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했던 때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더해가면서 ‘3대 위기’(민주주의, 중소기업·서민 경제, 남북관계)를 언급하고 비판의 강도를 높여가던 때였다. 최 실장은 “연로하신데다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하실 정도로 병이 깊은 상태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거꾸로 가고 남북관계가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하게 분노하셨습니다. 결정적으로 5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겹치면서 몸이 아프신 위에 마음까지 흔들리게 됐던 것 같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최 실장은 마지막 날까지 할 말은 하겠다는 그를 보면서 ‘민주주의자에게 은퇴는 없다’는 말을 떠올렸다. 국무총리와 장관을, 국회의장과 의원을 지낸, ‘내가 뭘 지냈는데’ ‘내 나이가 몇인데 이제 와서 뭘’ 하는 이들에게는 “조로(早老)하지 말고 김대중 대통령의 삶을 보면서 배워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김 전 대통령은 초기에 이명박 대통령을 믿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된 뒤 그를 찾아왔을 때 이 대통령은 “햇볕정책이 옳은 방향”이라고 수차례 언급하면서 같은 상고 출신이라서 그런지 생각이 비슷하다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이 후보와의 만남을 대단히 흡족해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6개월 정도는 “큰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다. 너무 앞선 얘기는 하지 말라”고 보좌진에게 주의를 당부할 정도였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관계에서 역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크게 착각했다. 10년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 여든다섯 노인의 마지막 투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font color="#C21A8D">마지막 유산, 진보개혁 연대</font>
최경환 김대중평화재단 공보실장은 “젊은 김대중을 많이 길러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재단 공보실장은 “젊은 김대중을 많이 길러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실에서 생사를 오가는 중에도 나라와 국민을 걱정했다고 최경환 실장은 전했다. 정치와 관련한 마지막 당부는,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개혁 세력의 단결과 연합이었다.

“민주당을 보면서 많이 아쉬워하셨어요. 인사, 공천 같은 정치 개입으로 비칠 만한 말씀은 전혀 하지 않으셨지만 큰 방향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언급하셨지요. 민주당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를 버리고 크게 연대하라’고 했고, 진보 정당 사람들을 만나면 ‘연합해서 크게 갖고 이익을 나누는 편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으냐’고 설득하셨습니다. 큰 링에서 경쟁해야지 조그만 링을 만들면 국민의 관심이 분산된다는 말씀도 했지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여러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까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와 관련된 마지막 말씀인 것 같습니다.”

특히 민주당에 대해서는 자신이 몸담은 뒤 가닥을 잡아온 일관된 정체성이 있는데도 이를 모호하게 만들거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점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평생을 헌신한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개혁 진영에 대한 안타까움이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못했던 화두라면, 국민에 대한 변치 않는 절대적인 믿음이 그나마 그를 편하게 보내주었던 것 같다.

“나라가 잘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똑똑한 국민과 똑똑한 리더십. ‘국민은 걱정 없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같은 독재정권을 국민 손으로 세 차례나 무너뜨렸다. 촛불시민은 스스로 소통하면서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국민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걱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정책과 신념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할 리더십이, 인물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런 그의 인식은 ‘마지막 일기’에서도 드러난다. 2009년 3월18일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같이 경제 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최 실장은 올 초 그의 유지를 받들어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을 만들었다. 그의 삶과 가치를 널리 전파하고 ‘젊은 김대중’을 많이 배출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로 여기고 있다. 잘된다면 ‘김대중 리더십 센터’로 키워보고 싶어한다.

<font color="#008ABD">‘젊은 김대중’들이 많이 나오길</font>

“20~30대 젊은 친구들에게 대통령님은 김구 선생 같은 역사책 속의 인물이에요. 잘해야 왕할아버지쯤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젊기도 했고 스킨십을 많이 해서 다르게 받아들이지요. 앞으로 이 시대를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DJ의 삶과 가치가 무엇인지 전파하면서 ‘젊은 김대중’을 많이 배출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서거 1주기 추모 기간인 8월10일부터 18일까지 9일 동안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는 분향소가 차려진다. 평소에는 관람이 제한된 5층 집무실과 접견실도 개방된다. 1·2층 전시 공간에서는 육필 수첩과 퇴임 뒤 연설 요지 노트, 그리고 영상 자료가 공개된다. 8월17일 오후 6시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추모문화제가, 다음날 오전 10시에는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추도식이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김대중평화센터 인터넷 홈페이지(www.kdjpeace.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행사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행사

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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