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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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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을 향한 한-미의 ‘불굴의 의지’

천안함 출구 전략 대신 연합훈련·금융제재 선택한 한-미 동맹…
북한 핵무장, 동북아판 미사일 위기 등 자해적 결과로 이어질 우려
등록 2010-08-06 17:14 수정 2020-05-03 04:26
동해에서 열린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미국 잠수함 ‘투산’을 선두로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비롯한 두 나라 함정들이 편대 운항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동해에서 열린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미국 잠수함 ‘투산’을 선두로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비롯한 두 나라 함정들이 편대 운항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한-미 동맹의 초강경 대북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7월25~28일 동해에서 강행된 한-미 연합훈련 ‘불굴의 의지’에는 조지워싱턴호와 F-22 전투기, 독도함과 F-15K 전투기 등 양국의 최정예 군사력뿐만 아니라, 일본 해상자위대 장교들까지 동원됐다. 한-미-일 3국이 천안함 사태를 구실로 3각 동맹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대북 무력시위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한다. 9월에 서해상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것을 비롯해, “올 연말까지 매달 한 차례씩 실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북한 핵무장 부추기는 한-미 동맹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대북 무력시위와 더불어, 미국은 금융제재 카드도 꺼내들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적극적인 요청이기도 하다. 지난 7월21일 한-미 양국의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새로운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며 “무기 거래 등 북한의 불법 활동 주체를 파악하고 거래 압력을 가하겠다”고 말한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재무부와 국무부를 중심으로 대북 금융제재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대체적인 내용은 ‘북한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계좌 파악과 금융제재 대상 선정→제재 대상과 거래 중인 제3국 금융기관에 거래 중단 권고→제3국 금융기관이 제재에 협조하지 않을 때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 중단 압박’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제재 대상을 무기뿐만 아니라 사치품 수입, 마약과 가짜 담배, 위조지폐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8월 첫쨋주 대북 제재 조정관이자 비확산 및 군축 담당 특별보좌관인 로버트 아인혼과 금융제재 실무를 맡고 있는 재무부의 테러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인 대니얼 글레이서가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및 일본과의 협의를 거쳐 8월 중순께 대북 금융제재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미 양국이 대북 무력시위와 금융제재라는 두 가지 추가적인 강경책으로 달성하려는 목표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자기모순적이며, 자해적 성격을 가졌다는 점이다.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결론지은 두 나라는 북한에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거지만, 북한이 이를 극구 부인하는 상태에서 이런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민·군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결정적 증거가 하나둘 뒤집히거나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고, 이명박 정부의 요청으로 전문가 7명을 파견해 자체 조사를 벌인 러시아는 북한 어뢰 공격설을 반박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재조사 요구도 커지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조사 끝’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북 제재와 압박에 몰두하고 있다.

한-미 양국의 태도가 ‘자기모순적인’ 까닭도 분명하다. 두 나라는 천안함 사태 이전까지 6자회담을 재개하려면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평화협정 논의를 개시해야 한다는 북한의 요구에 대해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입장이 뒤바뀌고 말았다. 북한 외무성은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하루 뒤인 7월10일,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북한 관리들도 6자회담 재개 희망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그런데 한-미 양국은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태도와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걸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설득하고 검증해야 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 본말이 전도된 태도로 후퇴하고 만 것이다.

이렇듯 한-미 양국이 출구를 닫아걸고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구사함에 따라 ‘자해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 우려된다. 여기서 자해적인 결과란 한-미 양국이 공식적인 대북정책 목표로 내세워온 한반도 비핵화가 물 건너가고 북한의 핵무장과 핵능력 강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핵 억제력 강화’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핵무기의 현대화’를 언급하고 있다. 맥락상으로 볼 때, 핵무기의 현대화는 핵탄두를 소형화해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양국의 강경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위를 유도해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 강화의 구실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일 3국의 MD 구축은 미국 군산복합체에는 ‘축복’이 되겠지만, 북-중-러 3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 ‘동북아판 미사일 위기’를 야기할 것이라는 점에서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7월22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 공식 만찬에서 박의춘 북한 외무상(오른쪽)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천안함 사고와 한-미 연합훈련 이후 중국과 북한은 이 사안에 대해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다. 연합

7월22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 공식 만찬에서 박의춘 북한 외무상(오른쪽)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천안함 사고와 한-미 연합훈련 이후 중국과 북한은 이 사안에 대해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다. 연합

 

신냉전의 주체로 떠오른 한국

천안함 사태와 이를 둘러싼 행위자의 선택이 야기한 대표적인 ‘나비효과’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 격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G2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경쟁보다는 협력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기대를 모은 양국 관계가 오늘날에는 ‘신냉전’이 회자될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올해 초부터 심상치 않던 미-중 관계가 최근 들어 미국이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함께 대규모 군사훈련을 강행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개입할 뜻을 내비치면서, 정면 충돌 조짐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 관계 악화에 불안을 느낀 미국은 최근 군사 교류 재개를 제안했지만, 중국 쪽은 자국의 핵심적 이익이 침해받았다며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미-중 관계가 경쟁과 협력을 반복해왔지만, 오늘날의 양상은 두 가지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하나는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도쿄에서 중국에 대한 봉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뒤, 오히려 중국 내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포위 및 봉쇄 정책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천안함 사태를 자신에 대한 군사적 봉쇄 강화의 구실로 삼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가졌다. 또 하나는 ‘군사안보 갈등은 줄어들고 무역과 환율 등 경제적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과 위안화 저평가 등 경제적 갈등이 잠복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 들어 군사안보 문제가 오히려 양국 관계 악화의 핵심적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관영 가 “미국은 군사력을 더욱 강화해 중국을 봉쇄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나, 중국 사회과학원의 아시아 전문가인 쉬리핑이 “미국은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정치군사 카드를 이용하려 한다”고 주장한 것은 오늘날 미-중 관계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주목할 점은 냉전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오늘날의 신냉전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주민의 삶을 구조적으로 억눌렀던 과거의 냉전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강대국이 강요한 측면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날 회자되는 동북아의 신냉전 조짐은 남북한의 갈등과 대결이 미-중 관계를 포함한 지역 전체로 확대·전이되는 성격이 강하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탈냉전을 향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폄하·부정하고 남북관계를 냉전시대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MB가 생각만 바꾸면 평화의 주도자로

미국과 한-미 전략동맹을 추진하면서 중국으로부터 “동맹은 낡은 시대의 유물”이라는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더구나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합조단의 조사결과를 중국에 강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한-미 연합훈련을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이용하면서 중국의 불신과 불만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내에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단물을 빨아먹고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봉쇄 정책에 편승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는 것이다.

최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정세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남북 대결의 격화와 한-미 동맹 대 북-중 동맹의 대결 부활, 그리고 6자회담을 둘러싼 남방 3개국의 강경론과 북방 3개국의 온건론의 충돌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에 금융제재를 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자, 북한과 중국이 7월29일 상호경제기술협정에 서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미 양국은 연일 중국에 대북 제재 동참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한-미 동맹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면서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의 대북·대중 강경책이 ‘우리 관계는 순망치한’이라는 북-중 양국의 인식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생각을 달리한다면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주도하고 동북아의 신냉전 우려를 기우로 만들 수 있음에도 이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한-미 양국에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대화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불굴의 의지’와 금융제재 부과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면서도 미사일 시험 발사와 같은 군사적 대응을 자제한 것은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6자회담을 빨리 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6자회담의 조건 없는 재개에 동의한다면, 미국과 일본도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특히 최근 미-중 관계 악화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진전은 두 나라 사이의 갈등 치유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한반도 비핵화를 핵심적인 국익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6자회담 재개는 벌어지는 두 나라의 대북정책 목표를 다시 수렴하게 할 수 있다. 길도 있고 힘도 있으면서, 그 길을 거부하고 자해적 방식으로 힘을 구사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한탄스러운 까닭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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