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이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밤이었다. 소녀들이 촛불을 켰다. 까만 밤을 노랗게 만들었다. 2008년 5월 봄이었다. 하지만 촛불은 곧 꺼졌다. 바람에 휘날려 꺼진 게 아니었다. 누구는 워커 발에 꺼졌다고 했고, 누구는 물대포 때문에 꺼졌다고 했다.
국무총리실이 어둠 속에서 하나의 ‘실’을 만들었다. 촛불시위가 발생하고 공직자들도 시위에 나간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실’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좌파 정부의 기존 인력을 쓸 수는 없어 새로 17개 기관에서 지원받은 연합군이 포진했다. 총리실의 그 ‘실’의 눈빛은 촛불의 배후 세력을 찾느라 어둠 속에서도 마냥 반짝반짝 빛났다.
촛불의 배후를 캐는 어둠의 ‘실’들
총리실과 비선으로 연결된 청와대의 또 다른 ‘실’의 비서관의 눈빛도 어둠 속에서 더욱 반짝거렸다. 그가 앉은 뒷자리 벽에는 ‘무쟁의 ○○○일’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VIP’의 뜻을 헤아려 파업 없는 나라로 만들려는 그의 의지가 돋보였다.
청와대의 ‘실’은 유력 정치인과 인기 방송 앵커의 친구라는 이유로 한 장관급 공직자를 물러나게 했다. ‘실’의 책임자는 집권여당 원내대표한테도 찾아갔다.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하도 황당해서 당·정·청 회의에서 그를 자르라고 했지만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파워보다 더한 세력이 그의 뒤에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정부 위원회에 파견 나간 한 공무원이 같은 위원회의 한 위원과 말다툼을 벌였다. 위원회 성격과 별 관련이 없는 로비법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정권 실세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공무원은 목소리가 컸다. 진짜 목소리도 컸지만, 바른말을 잘하는 공무원이었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정치적으로 현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공무원이 어떻게 정부에 비판적일 수 있겠는가.
말다툼의 발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었다. 여직원 인사를 했는데, 그 위원이 ‘왜 인사를 마음대로 했느냐’고 따져물으면서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며칠 뒤, 청와대 ‘실’에서 그 공무원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 같은 ‘쫄따구’ 공무원에게 청와대에서 들어오라고 하니 당황했다. 업무연락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면회실에서 비표를 받은 뒤 ‘실’에서 나온 직원을 따라갔다. ‘실’의 방을 지나쳤다. 다른 방에 들어갔다. 작은 ‘먹방’이었다. 그리고 ‘실’에서 나온 한 사람이 그에게 소명을 요구했다. “왜 싸웠냐? 정부에 대한 입장이 뭐냐?” 소명을 요구했지만 가혹행위는 없었다.
‘실’에는 보통 4~5명이 근무하는데, 대부분 노동부에서 파견 나와 있지만 경찰청과 한국노총에서 파견 나온 직원도 각각 1명씩 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수사권이 없는데도 공무원을 불러 조사한 것은 월권을 넘어 명백한 불법”이라고 말한다. 그 방의 어둠 색깔보다도 더 짙은 어둠이 그에게 밀려왔을 것이다.
그때 그 공무원, 다시 피해를 입을까
까만 밤, 꿈인지 모를 까만 밤이었다.
까만 어둠을 깨고 새벽이 왔다. 그리고 전화가 울렸다. 그 공무원의 전화였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기자의 기사( 7월27일치 1면 참조)가 아침에 라디오 에서 소개돼서 알았다고 했다. 현직 공무원인데 기사가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기자에게 따졌다. 마치 자기가 제보를 해 일러바친 것같이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또 따졌다. 사실 그 공무원은 사실관계만 확인해줬다. 다른 쪽에서 듣고 마지막으로 그 공무원에게 사실 확인만 한 것이다. 당신은 피해자라며 괜찮다고 했지만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 현실에 씁쓸했다. 그 공무원에게 2년 전에 권력이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전히 까만 밤이다.
정혁준 기자 한겨레 경제부문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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