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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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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민심을 무서워하지 말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년,

41차례의 구술 바탕으로 남북관계 비사·MB 정부 평가·개인사 담은 <김대중 자서전> 출간
등록 2010-08-06 14:55 수정 2020-05-03 04:26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왼쪽)와 박지원 민주당 의원(왼쪽 두 번째) 등이 7월29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 자서전〉 출간 언론 설명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왼쪽)와 박지원 민주당 의원(왼쪽 두 번째) 등이 7월29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 자서전〉 출간 언론 설명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생전에도 일본 〈NHK〉 취재반이 쓴 이 있었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회고한 같은 책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의 기록은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을 진실하게 기록하여 역사와 후손에게 바치”고 싶었던 마음대로 서거 1주년을 맞아 두 권짜리 (도서출판 삼인)으로 돌아왔다. 대통령직 퇴임 뒤인 2004년부터 자서전을 구상했고 2006년 7월부터 모두 41차례에 걸쳐 구술한 것을 모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관계와 민주주의 후퇴를 염려하던 그는 자서전에서도 이 분야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특히 역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대통령답게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남북관계 후퇴에 ‘통탄’

“적어도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남과 북이 다시 가난해지지 말아야 한다. 통일은 나중에 하더라도 끊어진 허리를 이어 한반도에 피가 돌게 해야 한다.”

아직도 ‘퍼주기’ 논란이 지속되는 대북 지원 문제에 대해선 “남쪽이 잘살면 도와줘야 한다. 동생네가 끼니를 잇지 못하면 형이 쌀을 퍼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썼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 구상을 “냉전적 사고방식이며 동족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 건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읽힌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공동선언문을 작성하기 직전의 상황도 생생하게 회고했다. 김 위원장은 선언문 서명자를 “김대중 대통령을 대표해서 임동원, 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표해서 김용순, 이렇게 합시다”라고 요구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일 처리를 좀 시원하게 해주십시오”라며 김대중·김정일 두 사람의 이름으로 내자고 설득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이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라며 농담을 던졌고, 김 전 대통령도 “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씨 아니오. 그렇게 합의합시다”라고 맞받았다. 다시 김 위원장이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라며 김 전 대통령을 떠봤다. 김 전 대통령이 “개선장군 좀 시켜주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라고 다시 농담을 하자 그제야 김 위원장은 웃으며 김 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편 2002년 4월 김 위원장이 임동원 특사에게 러시아에서 2차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답방’ 약속을 지키라며 거절한 사실도 자서전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렇게 발전시킨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후퇴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매우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이 대통령은 남북 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다”거나 “대통령 후보로 나를 찾아왔을 때는 햇볕정책에 공감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았다. 그는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것 같았다”는 대목에선 이 대통령에 대한 ‘분노’도 느껴진다.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살아낸 정치가이자 사상가답게, 민주주의의 후퇴를 지켜보는 심정도 남달랐다. 국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했을 땐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민심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선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을 극단으로 몰고 간 검찰 수사에 대해선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다. 너무도 보복적이고 정치적이며,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민주주의가 반석에 선 것처럼 보였고, 국민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라가 걱정이다. 우익을 가장한 독재세력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는 대목에선 온갖 탄압을 이겨내고 세운 민주정부 10년의 성과가 와르르 무너지는 데 대한 통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면 죽어서도 어찌 편히 눈을 감을 것인가. 눈물을 닦고 다시 호통을 칠 것이다”라고 ‘행동하는 양심’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촛불집회와 관련한 글도 눈에 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는 아테네 광장에서 있었던 직접민주주의 이래 인류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우리 국민의 지혜와 힘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 이후 시민들의 (서울광장) 접근을 봉쇄했다. 왜 광장의 민심을 무서워하는가. 광장이 살아 있어야, 그 속의 시민들의 말이 건강해야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다.” 용산 참사와 관련해선 “국민을 적으로 아는 정권, 권세만 있고 부자만 위하는 정권, 권력의 만능 의식이 통탄스럽다”고 썼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칭하며, 납치 시도 등 그가 행한 물리적·정치적 탄압에 분노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04년 8월 자신을 찾아왔을 땐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박 대표의 손을 잡았다”고 했다. 또한 박 전 대표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 드립니다”라고 말했을 땐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고 감동스러워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의 엄청난 피해자였지만 “나는 내가 호남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 번도 고향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다”고 썼다. 오히려 “차별받는 호남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못해 늘 가슴이 아팠다. 그럼에도 때로는 지역감정을 선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가고 싶었지만, 진정 만나고 싶었지만 고향 땅을 일부러 밟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인 이희호씨를 향한 김 전 대통령의 애정과 ‘정치적 동지’로서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유명하다. 그래도 그의 절절한 사랑과 신뢰가 뚝뚝 묻어나는 문장은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도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았다. 아내 없는 삶이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어머니 장수금씨가 ‘작은댁’이라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평생 작은댁으로 사신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드리고 싶”어 그동안 “많은 공격과 시달림을 받았지만 ‘침묵’했다”고 썼다. 는 7월30일치에서 자서전의 다른 내용은 쏙 뺀 채 이 부분만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것일까?

 

박근혜와의 화해, 박정희와의 화해로 이어져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은 8월18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다. 8월 10~18일 추모 기간에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 분향소가 설치된다. 이 기간에 김대중도서관을 관람하는 이는 그의 마지막 집무실을 둘러볼 수 있다. 출판기념회는 추모 기간 첫날인 8월10일 열린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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