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세를 전망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시장은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을뿐더러, 정부 정책의 입김도 세게 부는 곳이다. 일반인들의 심리적 변수도 크게 작용한다. 믿을 만한 전문가도 많지 않다. 전문가 가운데 상당수는 소비자의 편이라기보다 건설업체에 가깝다. 많은 언론 혹은 부동산 정보업체도 광고 때문에 건설업체의 눈치를 본다.
지난 1월에 나온 한국은행의 2009년 국내총생산 자료를 보면, 건설업 규모는 62조원 수준이다. 여기에 부동산업 및 임대업까지 합하면 부동산 관련 산업 규모는 128조원으로 불어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의 13.5%를 차지하는 규모다. 파이가 크면 이해관계도 크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는 건 그 파이가 줄어듦을 뜻한다. 업계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내년 가면 반짝” “바닥 쳤다” 등 긍정적 전망이 나오면 한 번 더 전후 본말을 따져봐야 한다. 간혹 엄밀한 전망이 아니라, 건설업체의 ‘희망사항’이 여과 없이 드러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계속되는 부동산 경기 침체를 두고 말이 많다. 세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지금의 상황을 짚어봤다.
1. 부동산 시장 거품 있다, 없다?
부동산 가격의 거품 가능성에 대해 물으면 전문가들은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알 수 없다”는 것이 흔한 답이다. “측정할 수 없다”(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버블 자체가 모호한 개념”(최규종 대한상공회의소 지역경제팀장) 등의 답이 돌아온다.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높다는 점은 대부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거품이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서 금융 부실로 이어지는 등 타격을 주면, 나중에 그것을 거품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높은 주택 가격을 두고 거품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나라 주택 가격은 적정한 수준일까? 지난 3월 산은경제연구소에서 낸 ‘국내 주택 가격 적정성 분석’ 보고서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보고서는 가계소득, 지가지수, 주택가격지수 등을 활용해 아파트 가격의 장기 추세 가격을 뽑았다. 우리나라 경제 현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적정한 아파트 가격 수준을 뽑았다는 뜻이다. 연구결과를 보면, 전국 아파트의 실제 가격은 적정 수준보다 11.7% 높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29.5%가 높았다. 강남 3구를 포함한 한강 이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31.2%가 높게 나타났다. 거품이 끼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주택 가격은 추정한 적정 가격대비 높은 수준이어서 조정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국내 주택시장 버블 가능성과 정책과제 연구’도 비슷한 작업을 했다. 경제성장률과 물가, 금리 등을 고려한 추정 주택가격지수를 뽑았다. 그런데 전국의 실제 주택가격지수(101.5)는 추정 주택가격지수(103.6)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이 높지 않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버블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 지역으로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울 지역의 가격지수는 지난해 4분기 102.7로 추정 가격지수 94.6보다 8.6%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현재 일부 지역에서 버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장기 불황을 낳은 1980년대 일본만큼 거품이 많지는 않다는 단서를 달았다.
주택 가격에 거품이 얼마나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소득과 견준 주택 가격을 산출하는 방법도 있다. 한 가구가 연봉을 몇 년 동안 고스란히 모아야 주택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식이다. 이 개념을 PIR(Price to Income Ratio)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6.26년으로 미국(3.55년)이나 일본(3.72년)보다 높게 나타났다. 특히 서울 아파트의 PIR는 12.64년으로, 뉴욕(7.22년)이나 샌프란시스코(9.09년)보다도 높았다. 지금까지 통계들을 종합하면, 우리나라 주택시장에 거품이 있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거품 조짐’으로 해석될 현상들은 눈에 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에서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의 규모가 이미 심각하다는 경고도 있다. 민간 연구기관인 김광수경제연구소가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구소가 내세우는 몇 가지 근거 중 하나를 살펴보면, 집값이 물가상승률에 견줘 턱없이 올랐다는 것이다. 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1998년 11월 물가 및 서울 아파트 가격 수준을 100으로 놓았을 때, 2008년 6월의 물가지수는 136.1이고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294.6으로 올랐다. 물가는 찔끔 올랐는데 아파트 가격은 3배 가까이 뛰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2000년대 이후 주택보급률이 10%포인트 이상 증가하는 동안 주택소유율은 2%포인트밖에 늘지 않았다”며 “공급된 주택이 대부분 돈 많은 사람들의 주택 투기용으로 몰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2. 급격한 거품 붕괴인가, 완만한 하락인가?일본의 노무라증권은 지난 4월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한국-1980년대 후반 일본의 연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노무라증권은 “한국은 1980년대 후반 버블 형성기의 일본과 놀라운 정도로 유사한 경제·정책 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두 나라의 공통점으로는 외부 충격을 거친 뒤 빠른 경제회복기를 거친 점, 물가가 안정된 점, 저금리 기조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다는 점이 꼽혔다. 이 보고서는 시장에서 화제를 낳았다. 언뜻 1990년 일본이 겪었던 버블 붕괴의 문턱에 한국이 서 있다는 말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일본 버블기와 판박이’ 등의 제목으로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까지 나서서 “일본식 부동산 급락 상황은 없다”고 맞받아쳤다.
그렇지만 보고서의 결론은 ‘한국은 일본식 버블 붕괴를 피할 수 있다’였다. 그 근거는 세 가지였다. 조금 길지만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는 한국의 정책당국자들이 1980년 후반 일본 거품,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미국 주택 거품에서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금리 인상을 언제까지나 미루지 말라는 충고도 보고서는 곁들였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7월 들어 기습적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정부도 거품 형성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둘째, 20여 년 전 일본은 주식시장에도 거품이 가득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징후가 읽히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일본 정부가 주가 하락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속에 주식시장으로 투기적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1989년에는 일본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국내총생산의 150%까지 팽창했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국내총생산 대비 90%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셋째, 일본 은행들은 1980년대 주택 가격의 100%까지 대출을 했지만, 우리나라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50% 수준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이란 은행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할 때 적용하는 대출 가능 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대출 비율이 50%라면 1억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할 수 있는 한도는 5천만원이 된다. 시세차액을 노리고 빚으로 집장사를 할 수 있는 여지는 우리나라에서 훨씬 적다.
노무라증권의 보고서는 다른 전망에 견주면 차라리 ‘장밋빛’에 가깝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이미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연구소가 실거래가 기준으로 아파트 가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07년 초의 정점에 견줘 서울 강남 3구에서는 이미 11.6%, 수도권 도시에서는 25~30%가량 떨어진 상태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2006년 이후 국내 누적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아파트 실질 가격으로는 강남 3구가 26.6%, 수도권 도시들이 40~45%가량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지주 산하의 FSB연구소는 올해부터 2012년까지 조정기를 거친 뒤 2013년께부터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구소는 지난 4월에 낸 ‘국내 주택시장 중장기 전망 및 향후 주요 이슈’ 보고서에서 “2012년까지 수도권 집값은 오르는 반면, 지방은 떨어지는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3~2017년에는 연평균 주택 가격이 2%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2018년 이후에는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모든 평형의 아파트값이 해마다 4~5%씩 내린다고 내다봤다. 연구소는 30~50대 주택 주수요층이 줄고,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인구 구조의 변동을 집값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했다.
주택 가격 하락 시점을 5년 뒤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민간연구소인 건설산업전략연구소는 본격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의 시기를 2015년께로 잡고 있다. 김선덕 소장은 “서울 지역에서 뉴타운이나 재건축·재개발이 마무리되면서 대규모로 주택 공급이 이뤄지고 인구 감소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2015년 이후에는 부동산 가격이 크게 내리고 조금씩 오르기를 반복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미 아파트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는 시각과 가격 하락이 일정한 조정기를 거친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그렇지만 아파트 가격이 대세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모아진다.
종말론 같은 거품 붕괴의 시나리오도 언뜻언뜻 보인다. 우선 주택시장 부채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있다. 부채 디플레이션이란 빚이 있는 상황에서 물가(집값)가 떨어져 실질 채무 부담이 늘어나면, 결국 빚을 갚기 위해 담보로 맡긴 자산(주택)을 팔아 다시 물가(집값)가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 ‘주택 가격 하락 → 채무 부담 증가 → 주택 처분→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일컫는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건설경기 침체, 가계 부채 증가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가 경제에 충격을 주게 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주택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며 “고령자와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생계형 소유자에 대한 세제 지원을 통해 중소형 주택의 공급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기감을 느낀 건설업계에서는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권홍사 대한건설협회 회장은 7월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리 인상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요건을 현재보다 10~20%포인트 완화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DTI는 대출자의 소득에 견준 대출 상환부담액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상환비율이 50%이고 대출자의 연봉이 2천만원이라면, 한 해 원리금과 이자 상환액이 1천만원인 한도 안에서만 대출을 할 수 있다. 건설업계의 요구는 대출 조건을 완화해 시중에 돈을 푸는 방식으로 주택 수요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건설업계의 장단에 맞춰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7월16일 건설업계의 요구에 대해 “여러 제도적인 것을 과감하게 완화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거품이 붕괴한 일본이나 미국의 사례를 봐온 정부가 DTI 대출 규제를 완화할 정도로 간이 부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작 ‘간이 부은’ 목소리가 정부에서도 나온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7월1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LTV·DTI는 부동산 경기가 과열됐을 때 도입됐기 때문에 경기가 얼어붙을 때는 신축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한 방법론을 두고 정부 안에서도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김수현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부실한 건설업체들은 과감하게 정리하되, 부동산 가격 하락이 가계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부동산 가격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며 “일본식 장기 침체의 길로 가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앞으로 10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관마다 다른 가격지수
부동산 시장은 겨울, 지표는 봄날?
‘부동산 시장에는 찬 바람, 부동산 가격 지표에는 봄볕?’
부동산 가격 정보를 집계하는 국민은행이나 ‘부동산114’ 등 부동산 정보회사들이 내놓은 부동산 가격 정보를 보면, 실제로 체감되는 부동산 경기와는 차이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얘기를 들어보면, 조사기관이 다르면 통계도 다르게 나타나는 점을 알 수 있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가 내놓은 서울 강남 3구 아파트 가격 동향과 김광수경제연구소가 국토해양부의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내놓은 통계를 비교해봤다. 2006년 1월을 100으로 한 강남 3구 아파트 가격은 지난 4월 120.0(김광수경제연구소)과 128.4(부동산 정보업체)로 각각 나타났다. 부동산 정보 업체가 낸 가격이 연구소보다 대체로 높았다. 특히 가격 하락세가 도드라진 2008년 11월에는 각각 106.6과 118.1로 차이가 10.7%나 났다.
김광수경제연구소와 국민은행의 가격지수도 비교해보았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아파트 가격을 표본으로 삼았다. 역시 2006년 1월을 동일한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후 국민은행의 지수는 매우 높게 나타난 반면, 연구소의 지수는 낮은 수준을 맴돌았다. 특히 지난 4월 가격 지표는 큰 차이를 나타냈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잡은 지수는 89.0까지 떨어졌지만, 국민은행 지수는 134.7까지 올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선 국민은행이나 부동산 정보업체가 통계를 내는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 기관마다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전국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보고를 받거나 현장 조사를 벌여 통계를 작성한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부동산 거래가 있을 때는 실거래가를, 거래가 없을 때는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거래가 가능한 액수’를 보고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처럼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을 때 ‘정상적으로 거래가 가능한 액수’의 기준이 애매할 수 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부동산 정보업체의 통계는 시장의 실거래 가격이 아니라,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호가’를 중심으로 잡히기 때문에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광수경제연구소가 근거로 잡은 국토해양부의 실거래가 자료는 어떻게 측정된 것일까? 국토해양부는 관청에 신고되는 부동산 매매 가격을 기준으로 자료를 작성한다. 희망 가격인 ‘호가’보다는 더 신뢰성이 높을 수 있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지는 않다. 국민은행 시장연구부 관계자는 “요즘과 같은 침체기에는 급매물만 거래가 되는데, 이 가격을 시장가격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결국 두 가지 지표를 모두 참고해야 시장 상황이 더 종합적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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