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은 7월5일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미 명확하게 규명되고 후속 조처까지 마무리된 상황”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회의석 분포상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2010년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질서는 천안함 침몰 사고를 기점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비포 천안함’과 ‘애프터 천안함’이 명확하게 갈렸다.
2010년 3월26일 한국의 1200t급 초계함이 침몰했다. 한국의 중소도시 천안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 배에 탄 장병 46명이 숨졌다. 한국은 침몰 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을 구성해 조사작업을 벌인 끝에 사고 발생 두 달여 만에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지었다. 서해상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진행되는 가운데 북한의 연어급 잠수함이 공해상으로 우회 침투해 폭발 장약 250kg의 중어뢰 한 발을 쏘았고, 그 폭발로 인한 버블제트 현상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것이 합조단의 결론이었다. 합조단은 그해 5월20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로 침몰 사고 부근에서 건져올린 어뢰추진체를 공개했다. 당시까지 버블제트 어뢰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을 포함해 손꼽을 정도였으며, 실전에서 움직이는 배를 버블제트 어뢰로 침몰시킨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
조사결과 발표 이후 한반도의 긴장은 최고조로 높아졌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합조단의 결론에 근거해 응징과 보복을 언급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냉랭해진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보수를 표방하는 극우 세력과 언론은 전쟁불사론을 부추겼다.
한국의 결론을 지지하는 미국과 일본, 지지하지 않는 중국과 러시아로 편이 갈렸다. 이는 그로부터 수십 년 전 형성된 냉전시대 구도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자체 조사단을 파견한 러시아는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조사보고서를 냈다. 중국은 남·북·중·미가 참여하는 공동조사를 촉구하면서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규탄 결의안 채택을 반대했다.
천안함 이후, 미국과 한국이 서해상에서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려 하자 중국은 한국의 서해와 맞닿아 있는 동중국해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외교 분야에서 신중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중국의 관영 언론에는 한-미 합동 훈련은 중국 군사훈련의 좋은 표적이 될 것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등장했다.
천안함에 대해 동일한 결론을 내렸던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2012년으로 예정된 미국의 전시작전권 이양(당시 한국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작전권을 다른 나라에 넘기는 유일한 국가였다) 시기가 연기됐다.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에서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미국 쪽의 요구로, 양국 의회 비준 단계에 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이전이 확정된 일본의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런 움직임은 천안함 사태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얻은 게 많아 보였지만 승자는 중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른바 ‘G2’로 미국과 더불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던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영향력과 발언권이 더욱 커졌다.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강한 열망에 힘입어 당선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세계 평화에 기여하라는 의미로 노벨평화상을 ‘미리’ 받았지만 화약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는 이전의 부시 정부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래 역사에 현재는 이렇게 기록될지도 모른다. 천안함이 단지 천안함만은 아닌 이유다. 천안함 문제는 단순히 전함 한 척과 장병 46명이 희생된 사건이 아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질서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다. 그래서 천안함이 어떻게 침몰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작업이 중요하다. 적당히 묻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천안함의 진실을 좇아 탐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소속 국회의원 93명은 7월5일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한나라당은 7월28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겨냥한 정치 공세라고 일축했다.
“민주당의 뜬금없는 국정조사 요구는 국익보다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다. 일부 극단적인 세력이 왜곡된 정보를 전파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건전한 국민은 북한의 공격이라고 보고 있다. 민주당의 모습에 국민은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천안함 사태를 논의하고 있는데 본인들이 그토록 듣기 싫어하는 친북 정당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으면 당내 선거, 재·보궐 선거를 벗어나 국익과 안보를 위해 협조하라.”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의 말이다.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도 “천안함의 침몰 원인과 대처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점에 대해선 국제적인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명확하게 규명되고 후속 조처까지 마무리된 상황”이라며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는 사실상의 정치 공세”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이 서명한 국정조사 요구서에는 그동안 이 지속적으로 보도해온 내용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들은 합조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발생 시간,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의 존재 여부, 물기둥 관련 증언 등이 수차례 번복됐으며,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수거물과 폭발 잔해 등에 대한 의혹도 계속 제기되고 있어 조사의 객관성과 과학성에 문제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국정조사를 통해 △침몰의 직접 원인 △침몰 전후 군사대비 태세 △초기 상황 보고와 전파 체계 △구조작업 진행 과정 △합조단 조사결과 및 감사원 감사결과 △청와대·외교통상부·통일부·정보기관의 대응 실태 등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든 아니면 중국 정부가 제안한 국제 합동조사단이든, 사실상 군이 중심이 된 합조단과는 다른 방식의 재조사가 필요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한국 정부가 내심 국제사회에서 ‘판정관’ 역할을 해주기 기대한 러시아 정부는 최근 합조단의 조사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조사보고서를 내놓았다. 합조단이 결정적 증거라고 제시한 ‘1번 어뢰’를 천안함 침몰의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러시아 조사단은 ‘1번 어뢰’의 페인트와 부식 정도, 어뢰추진체가 물속에 잠겨 있던 기간을 비롯해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는 합조단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에 의해서도 제기됐다. 선박 전문가로 합조단에 참여한 노인식 충남대 교수(조선해양공학과)는 7월6일 과의 인터뷰에서 “프로펠러(스크루)의 휨 상태에 대해서는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며 “근거 없는 추측들을 쏟아내 값비싼 불신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는 각 분야의 ‘대표선수’(전문가를 뜻함)들이 모여 충분한 지원 속에서 다시 한번 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사실 5월20일 합조단 발표는 시간에 쫓겨 서두른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실물 크기의 어뢰 설계도는 크기가 비슷한 다른 어뢰의 설계도였다. 어뢰추진체를 건진 지 닷새 만이었다. 합조단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들은 발표 당일 어뢰추진체를 처음 봤다. 중간 발표에 임박해 인양에 성공한 가스터빈실 부분은 아예 분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스터빈실은 지난 6월29일 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전국언론노조로 구성된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를 대상으로 연 설명회 자리에서 처음 언론에 공개됐다. 합조단의 발표대로라면 가스터빈실의 왼쪽 아래 3m에서 어뢰가 폭발해 충격이 가장 큰 곳이었을 텐데도 서류뭉치와 컵 등이 온전한 상태였다.
외교부는 천안함 외교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며 자평하고 있지만, 이중적 해석이 가능한 의장성명을 보면 유엔 안보리를 통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대응을 도출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 AP
이런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7월9일(현지시각)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의장성명을 채택·발표했다. 천안함 침몰은 ‘공격’(attack)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면서도 ‘공격의 주체’는 명시하지 않았다.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이라는 한국·미국·일본 쪽과, 그런 규정을 거부하는 북한·중국·러시아 쪽의 입장을 외교적으로 절충한 어정쩡한 내용이었다. 각자 유리한 대로 ‘이중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안보리 의장성명은 다분히 국제정치적 해법이라는 측면이 있다. 국제사회의 정치적 논의는 일단락될지언정,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밝혀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북한학)는 “이번 안보리 의장성명은 천안함 문제의 진실과는 무관한 외교적 실패일 뿐”이라며 “남과 북의 입장을 병기하고, 공격과 비난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제재 수준을 합의하지 못한 채 긴장 완화와 자제심을 이야기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북한의 행위로 보기에 부족하다는 중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냥 묻고 가는 게 좋은가. 완전하지 않은, 빈틈이 많은 결론일지라도 합조단의 발표대로 모두 믿고 따라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 우리만 그렇게 믿으면 국제사회도 모두 믿고 따라오는가. 남북과 동북아에 평화 공존의 기운이 높아지는가. 답이 명확해 보이는데 상황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만 애써 눈감는 것 같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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