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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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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어뢰’ 민간 조사위원들에겐 감춰



군의 비밀주의에 불만 털어놓은 천안함 합조단 민간 위원들
“어뢰 조사하려면 10일 이상 더 걸려 발표 시한 못 맞췄을 것”
등록 2010-06-11 22:18 수정 2020-05-03 04:26
군의 비밀주의 때문에 천안함 합동조사단 민간 위원들은 중요한 증거물에 접근하지 못했다. 군이 공개한 북한 어뢰(왼쪽·한겨레 신소영 기자)와 천안함 가스터빈. (오른쪽·국방부 제공)

군의 비밀주의 때문에 천안함 합동조사단 민간 위원들은 중요한 증거물에 접근하지 못했다. 군이 공개한 북한 어뢰(왼쪽·한겨레 신소영 기자)와 천안함 가스터빈. (오른쪽·국방부 제공)

“돌아온 것은 불신입니다.”

허탈함을 감추지 않았다.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에 이름을 올린 민간 위원들은 우리나라의 조선공학을 대표하는 학자다. 은 이들을 접촉하고 인터뷰했다. 발표된 결과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는 군의 경직된 모습과 대비됐다. 자신들의 조사 노력에 부응하지 못한 군의 불투명한 태도,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 밝힐 수 있는 진실의 한계, 조사결과를 조롱하는 누리꾼 등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5월20일 합조단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조사단 위원의 신분으로 시뮬레이션을 완성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가급적 실명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요구는 그래서였다. 합조단의 요청으로 인터뷰가 무산될 뻔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50일,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자회견장에서 실물 처음 봤다”

“군사기밀이라는 1번 어뢰, 우리도 발표 기자회견장에서 처음 봤습니다.”

‘민간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합조단의 인원은 7명(정부출연기관 등 제외)이다. 해외조사팀을 포함한 전체 인원이 74명이니 10명 가운데 1명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인양된 천안함의 변형 상태와 지진파, 생존 승조원의 진술 등을 종합해 선체 파손의 원인과 결과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민간 위원들의 연구결과는 지난 5월20일 비접촉 수중 폭발의 영향으로 천안함이 파단되는 과정을 담은 시뮬레이션으로 공개됐다. 위원들은 이 밖에도 좌초설·충돌설 등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나 물기둥 등 부족한 정황 근거에 대한 과학적 답변도 함께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 부품의 조사에서 민간 위원들이 완전히 배제됐다는 사실이다. 합조단의 민간 위원들은 어뢰 부품이 5월15일 인양된 뒤 사흘 동안 인양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조사단에 참여한 한 위원은 “어뢰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5월18일에 처음 들었다”며 “(발표 당시) 공개된 슬라이드를 통해 사진으로 봤다”고 말했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임에도 군은 사진을 제외한 더 이상의 자료를 이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비밀 유지를 당부했다. 그날(5월18일)은 한 보수 언론이 군에서 어뢰 파편을 찾았다는 사실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기사화한 날이다. 다음날인 5월19일에는 그 어뢰 파편에 ‘일련번호’와 ‘북한 글자체’가 있다는 사실까지 보도됐다. 언론에는 알려놓고, 합조단 소속인 민간 위원들에게는 비밀을 약속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 민간 위원은 “자료 제공도 없이 슬라이드만으로 기밀이라고 하더니만 일부 언론에는 다 공개하는 것을 보고 좀 허탈했다”고 말했다. 결국 민간 위원들이 어뢰 부품의 실물을 본 것은 조사결과 발표 현장에서였다.

가스터빈실도 민간 위원 조사 안 거쳐

수중 폭발과 선체의 관계를 규명하는 민간 위원들의 역할을 감안하면 어뢰는 조사에 포함돼야 할 필수 증거물이었다. 이를 두고 한 위원은 “워낙 보안이 중요한 곳이니까…”라며 말을 아꼈다. 결국 어뢰 부품과 그와 관련된 정보는 민간 위원들의 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한 민간 위원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반영했어야 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시간상 가능하지 않았다”며 “여러 가지 가설 중에 과학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경우를 택해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었다. (어뢰 부품은 조사 과정에)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더 정밀한 결과 도출을 위해서는 당연히 포함돼야 하지 않느냐”고 되묻자 그는 “그렇게 되면 10일 이상이 더 걸릴 것이고 20일 조사결과 발표를 맞추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조사 기간 연장에 대해서는 “어뢰에 대한 정보가 예측 범위 내에 있어 결론을 변경할 만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6월1일 현재까지도 민간 위원들은 어뢰에 대한 조사는 진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어뢰만이 아니다. 어뢰 폭발에 충격을 받아 떨어져나간 부분이라고 지목된 천안함의 가스터빈실 또한 민간 위원들의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인양이 늦었다(5월19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조사에서 제외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터뷰에 응한 한 민간 위원의 경우 가스터빈실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양 시점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스터빈실까지 조사하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걸리는데다, 조사결과를 바꿀 만한 단서라고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어뢰 부품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와 동일하다. 다른 위원도 “붕괴 구조의 단면을 검토한 뒤 미리 예상한 붕괴 모드에 계산식을 대입했다”며 “시뮬레이션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어뢰 부품과 마찬가지로 가스터빈 또한 민간 위원들의 검토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함정 보안에 신경을 너무 써서 (감추는 게 아닌지) 오해할 정도였어요.”

민간 위원들은 합조단이 군 주도로 진행됐던 것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위원들은 “지나친 비밀주의와 소통 능력·노력 부재 등이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군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 사실에 대한 해명은 하지 않고, ‘믿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민간 위원들이 수행한 조사마저 싸잡아 조롱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자료 접근 자체가 불충분”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가 지나치게 안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위원은 “군 쪽에서는 어뢰가 나오자 어떻든 간에 (국민들이) 다 납득할 것이라며 쉽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며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의혹들을 차분히 짚을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사 진행 과정에서 민간 위원들이 느낀 가장 큰 불만은 지금까지 자주 지목돼왔던 군의 비밀주의다. 대외적 불투명성의 문제가 합조단의 조사 과정에서도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한 위원은 “인양 뒤 함정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조사가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데, 관련 자료 제공이 원활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며 “군의 경직성이 학자 입장에서는 난감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간 위원들이 요구하는 자료가 지체됐을 뿐만 아니라 증거물 접근이 차단되기도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 특위에서 활동하는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지난 6월3일 “민간 위원들은 조사 과정에서 본인이 맡은 분야만 보고 판단할 뿐 전체가 어떻게 엮이는지 개입하지 못했고, 자료 접근 자체가 불충분했다”며 “조사위원 일부가 절단면 사진을 찍으려 해도 못 찍게 했다고도 한다”고 밝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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