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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발암물질 사용 ‘근거 없이’ 부인



2008년 디메틸아세트아미드 노동부에 신고하고도 “사용 안 해” 해명… ‘환경수첩’ 목록 논란 증폭
등록 2010-05-28 14:54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811호 기사, 삼성반도체 ‘발암성 물질’ 6종 사용 확인.

〈한겨레21〉811호 기사, 삼성반도체 ‘발암성 물질’ 6종 사용 확인.

삼성전자가 제작한 ‘환경수첩’을 통해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는 발암물질 6종이 확인됐다는 의 보도(811호 이슈추적 ‘삼성반도체 발암성 물질 6종 사용 확인’ 참조)에 대해 삼성이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그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일방적 주장에 그쳐 의혹을 잠재우기는커녕 논란만 증폭시키고 있다.

시너 구성물질 이름도 없이 함유비율만 밝혀

보도가 나간 직후, 삼성전자 홍보팀 김준식 전무는 “(보도에 나온) ‘디메틸아세트아미드’는 (공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 아니며 ‘트리클로로에틸렌’은 1995년 이후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 아니다”라고 알려왔다.

하지만 디메틸아세트아미드는 이미 지난 2008년 삼성이 노동부에 ‘사용 중인 화학물질’로 신고한 것이다. 당시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삼성이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기록해 노동자들에게 공개해야 함에도 ‘영업비밀’이라며 물질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자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이에 삼성전자는 한 가지 물질만을 밝혔는데 그것이 디메틸아세트아미드다. 이같은 증거를 제시하자 삼성 쪽은 “다시 확인해보니 노동부에 신고한 직후인 2008년 7월께부터 디메틸아세트아미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다른 해명을 했다. 만약 이 해명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삼성에서 일하다 암이나 희귀질환에 걸린 노동자의 상당수가 2008년 이전부터 공장에서 일한 점을 감안하면 삼성 쪽의 면책 근거는 될 수 없는 셈이다.

또 트리클로로에틸렌을 1995년부터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환경수첩’을 지급한 시기와 배치된다. 이번에 입수한 ‘환경수첩’은 1995년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엔지니어들에게 지급됐고, 그 안에 트리클로로에틸렌이 명기돼 있다. 만일 삼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삼성은 공정별로 화학물질·가스를 관리해야 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잘못된 사용물질 목록을 알려온 셈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홍보실 김충곤 과장은 “‘환경수첩’을 만든 사람이 (회사에) 없어서 왜 오류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디메틸아세트아미드와 트리클로로에틸렌을 특정 시점부터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사이 공정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입증자료를 달라는 요청에는 삼성 쪽에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공장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이라며 엔지니어들에게 교육하고 노동부에 신고까지 한 물질에 대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일방적 주장만 내놓고 있는 셈이다.

삼성 쪽은 ‘환경수첩’에 나오는 발암물질인 시너, 감광액 등에 대해서도 유해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시너’에는 건강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삼성의 해명 역시 뒷받침하는 자료가 없다. 2008년 노동부가 시너의 구성물질별 함유량을 밝히라고 하자 삼성전자는 ‘70~80%, 15~25%, 1~10%’라는 수치만 제시했다. 각각의 비율에 해당하는 구성물질 이름은 ‘기밀’이라며 기재하지 않았다.

감광액(PR)에 발암물질인 ‘벤젠’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삼성의 주장도 지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역학조사 결과와 어긋난다. 당시 삼성반도체, 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환경 유해 요인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의 감광제 6건 모두에서 0.08~8.91ppm에 이르는 벤젠이 검출됐다.

“이미 밝혀진 사실까지도 거짓 해명”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발암물질 및 자극성 물질이 노동자들에게 노출됐을 가능성을 삼성 쪽이 전면 부인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과 온양공장의 여러 엔지니어들이 “누출 사고가 잦았다”고 증언하고, 일반 노동자들도 구토·생리불순·불임·피부질환 등의 증상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상황이다. 박영만 산업전문의는 “근로자들이 수시로 자극 증상을 느꼈다는 것은 작업장에서 유해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이 이미 밝혀진 사실까지도 쉬쉬하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산재 투쟁 3년 만에 공장 내 발암물질 사용을 밝혀냈고 국제사회도 진실 규명을 위해 연대하고 있으니 이제라도 삼성은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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