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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색깔의 타이

문답으로 풀어보는 타이 사태… 레드와 옐로 사이에는 타이의 과거·현재·미래가 있다
등록 2010-05-27 15:57 수정 2020-05-03 04:26
탁신 전 총리의 사진을 든 레드 셔츠(왼쪽), 푸미폰 국왕의 사진을 들고 거리로 나선 옐로 셔츠는 타이의 대립을 상징한다. REUTERS/ DAMIR SAGOLJ·JERRY LAMPEN

탁신 전 총리의 사진을 든 레드 셔츠(왼쪽), 푸미폰 국왕의 사진을 들고 거리로 나선 옐로 셔츠는 타이의 대립을 상징한다. REUTERS/ DAMIR SAGOLJ·JERRY LAMPEN

지금 두 가지 색깔의 타이가 있다. 흔히 ‘레드 셔츠’로 부르는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UDD), ‘옐로 셔츠’인 민주주의민중연대(PAD). 멀리서 보면, 2008년 방콕 공항을 마비시킨 노란 셔츠나 2010년 도심을 장악한 빨간 셔츠나 ‘셈셈’처럼 보인다. 이렇게 시위는 이어지고 내용은 복잡하니 양비론이 유혹한다. 2006년 쿠데타 이후에 둘로 선명히 갈라진 색깔엔 타이의 과거·현재·미래가 있다. 몇 개의 문답을 통해서 현 사태를 풀어보았다.

1. 레드는 ‘친탁신’인가?

레드 셔츠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에서 출발했다. 2006년 쿠데타로 탁신이 외국으로 쫓겨나자 탁신의 지지자들은 레드 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4년이 지나며 레드는 진화했다. 탁신에 ‘매수된’ 이들로 묘사되는 레드는 스스로 재정을 마련하고, 기득권을 대변하는 주류 언론에 대항해 자신들의 매체를 만들며 공동체 운동을 벌였다. 무엇보다 반정부 투쟁을 거치며 평생 정치가 무엇인지, 선거의 위력이 어떤지 몰랐던 시골의 농민이 단련됐다. 여기에 쿠데타에 반대하는 운동세력, 무력 진압에 반대하는 이들까지 더해지며 레드는 스스로를 확장했다.

2. 탁신은 두 얼굴?

타이 사태를 ‘전근대 vs 근대’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타이의 기득권 체제는 이동통신 신흥재벌 탁신의 등장과 함께 변화에 직면했다. 탁신은 행정기관에 기업 논리를 도입하는 등 신자유주의 개혁을 실시했다. 여기에 집권 기간에 수조원 재산을 늘인 부패 의혹도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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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탁신은 빈민을 위한 정책도 벌였다. 탁신의 ‘30밧 의료정책’은 국민의 의료기관 접근율을 70%에서 90%로 올렸다. 마을마다 농업보조금을 지원하고, 학자금 융자제도를 도입해 가난한 학생에게 진학 기회를 주었다. 두 얼굴의 탁신 정책은 ‘사회적 신자유주의’로 불린다. 왕의 시혜적인 농업 지원 외에는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던 가난한 이들에게 탁신의 정책은 호응을 얻었다. 탁신은 민중에게 밥을 주었다고 기억되는 ‘박정희’이자, 남부의 무슬림 80여 명을 한 번에 학살한 ‘전두환’이자, 좌파 신자유주의란 말을 남긴 ‘노무현’처럼 보인다. 이렇게 전근대적 방식으로 기득권이 유지되는 제3세계에서 신자유주의는 때로 개혁이 된다. 전통적 기득권층은 탁신의 이러한 정책을 국가 재정 파탄 등을 이유로 비판했다.

‘왕이여 영원하소서’(Long Live The King), 방콕 공항에 내리면 먼저 보이는 문구 중 하나였다. 1946년 즉위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민생을 돌보며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왕실모독법’이 있을 만큼 타이 왕실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타이 기득권의 중심에 입헌군주제하에서도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실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예컨대 군장성을 임명할 때 정부는 왕실과 협의하는 전통이 있었다.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 관리들은 왕의 권위에 기대 정통성을 얻었다.

3. 레드는 반왕정인가?

‘탁신 대통령’(President Thaksin), 레드와 옐로 시위대가 충돌했던 방콕 실롬 거리에 붙은 전단지 문구다. 짧은 문구는 레드 라인을 넘었다. ‘공화국의 대통령’은 뒤집으면 왕실의 부정을 뜻한다. 아피싯 웨차치와 정부는 왕실전복죄를 들고나와 엄포를 놓았고, 레드 지도부는 절대 UDD가 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세력에 용공 혐의를 씌우기 위해 일부 권력기관이 북한 찬양 유인물을 조작했던 것처럼, 이것도 음모란 주장이다. 실제 UDD의 원칙 가운데 첫째는 입헌군주제 지지다. 옐로 셔츠의 주된 구호는 “우리는 왕을 사랑한다”, 이들은 존왕주의자로 불린다. 옐로 시위대는 레드 셔츠를 ‘못 배운 자들’이라고 폄하한다. 심지어 PAD 지도부는 방콕의 교육받은 시민에겐 한 표를 주고, 동북부의 가난한 농민에겐 4분의 1표씩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가난한 자들의 각성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엘리티즘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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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타이는 하나가 아니다?

타이엔 방콕과 방콕 이외의 지역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타이 통계청 발표에 바탕하면, 가구별 연간 수입은 △방콕과 수도권 3현(논타부리 등)의 수입 3만7732밧 △수도권 이외의 중부 2만952밧 △남부 2만2962밧 △북부 1만5727밧 △동북부 1만5358밧이다. 흔히 ‘이산’이라 불리는 동북부는 중부와 격차만 2배, 방콕과 견주면 3배를 넘는다. 상대적 빈곤지역 동북부와 북부는 레드의 지지 기반이다. 이런 농촌 지역에 타이인 3분의 1 이상이 산다. 다시 여기에 방콕 등지의 빈민이 지지층에 더해진다.

탁신이 쿠데타로 축출된 다음 치러진 2007년 선거에서 확인됐듯, 탁신파는 언제 총선을 치러도 과반은 못 돼도 과반에 가까운 제1당이 된다. 이렇게 ‘구조화된’ 지역·계급 구도에서 타이의 전통적 기득권층은 정치적으로 각성된 농민에게 포위당했다. 레드 셔츠가 쿠데타 군부에서 정권을 이양받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아피싯 웨차치와 민주당 정부에 ‘선거’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처럼 명확하다. 전통적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민주당이 군부의 미온적 태도와 반대 여론에도 무력 진압을 강행한 이유로 “아피싯 정부가 마지막 저지선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5. ‘수박병사’는 누구인가?

타이군 수는 한국군보다 적지만, 타이군 장성 수는 미국 다음으로 많다고 알려졌다. 19번의 쿠데타로 얼룩진 타이 현대사에서 군대의 ‘별자리’는 이권을 나눠주는 통로였다. ‘감히’ 전통적 총리의 영역을 넘었던 탁신은 군장성이 임명될 때 왕실과 협의하는 전통을 깼다. 이것은 왕실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인물도 요직에 임명됐단 뜻이다. 레드 셔츠 가운데 있다가 저격당한 카티얏 소장도 그런 경우다.

여기에 징집제의 허점도 더해진다. 타이에선 제비뽑기로 징집 여부를 결정한다. 행정구역 단위로 징집 인원이 정해지는데, 징집 인원이 적은 동네로 주소를 옮기거나 제비뽑기 결과를 바꾸어 군대를 피하는 상류층이 많다고 알려졌다. 징집병에게 주는 적은 월급도 가난한 농촌 출신에겐 생계 수단이 된다. 그래서 타이군 사병과 하급간부 중에 동북부 출신이 많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진압에 동원된 군인 가운데 겉은 푸르지만 속은 붉은 이들을 ‘수박병사’로 부른다. 실제 시위 진압 과정에서 자기 편을 향해 최루탄을 쏘고, 무기를 놓고 달아나는 군인들이 목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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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진압의 ‘디데이’는 예상보다 늦어졌다. 실질적 군 지휘권을 가진 아누퐁 파오친다 육군참모총장은 진압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오는 9월로 임기가 끝나는 그로선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시위에 검은 복면을 쓰고 나타나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인 ‘검은 복면’의 존재도 군부의 균열을 드러낸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렇게 군부도 완벽한 하나가 아니다.

6. 위기는 끝나지 않았나?

1927년생인 푸미폰 국왕은 고열 등으로 입원해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왔다. 레드 셔츠는 왕에 대한 존경을 표해왔지만, 왕실 자문기구인 추밀원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이들은 왕의 측근인 프렘 틴술라논다 추밀원 원장을 2006년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했다. 그래서 현재의 갈등을 ‘왕의 가신 vs 평민 세력’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더구나 왕실의 누구도 현재의 왕만큼 국민의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도움말 주신 분: 김홍구 부산외국어대 교수(태국어),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아시아NGO정보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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