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중항쟁이 발발한 지 한 세대가 흘렀다. 1980년 5월21일 사망자와 부상자로 가득한 기독교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돌아오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박금희의 친구들은 47살이 됐다. 그녀의 삶과 죽음을 소재로 이라는 연극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박효선은 1998년 병으로 이승과 이별을 고했다. 5·18 당시 시민학생투쟁위원회 홍보부장이던 그는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이루어진 5월27일 새벽 2시께 전남도청을 탈출한 것을 평생 부끄럽게 생각하고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한 세대를 넘은 5·18은 다양한 기억 공간을 남겼고, 당시를 회상하고 계승하기 위해 건립된 장소와 시설들이 원초적 현장성을 대체해가는 추세다. 기억 공간에는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과 직후에 형성된 전남도청, 상무대 영창 그리고 망월묘지, 추모 및 기념 등을 목적으로 조성된 5·18묘지와 공원 및 표지석 등이 있다. 5·18의 기억 공간들은 매해 5월 행사에서 그 가치를 발현해왔다. 특히 10년을 주기로 한 대규모 5월 행사에는 망월묘지가 중심에 있었다. 광주와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들은 1천여 평에 불과한 망월동 묘지에서의 추모제와 기념식에 참여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항쟁 담론을 공유했다. 1990년 5월 행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7년 출범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는 5·18의 제도적 청산이 임박한 10주년에 광주로 집결해 당시 쟁점이던 ‘민자당 해체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5월 행사의 의미와 현재적 과제를 결합했다.
하지만 1997년 5월 5·18 묘지가 조성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묘지’라고도 명명되는 5·18묘지는 시민의 접근성과 공동체성보다는 국가 차원의 행사를 염두에 둔 구조로 건축됐고, 희생과 추모의 담론이 가득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공간 조성의 결정권이 주류 또는 지배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일임되면서 기념사업 과정에 편입돼야 할 항쟁 담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이다. 조성 과정에서 5·18 관련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소통과 토론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됐으며, 국가와 시민사회의 반목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논란은 묘지 조성에 이어 다른 기억 공간을 조성하는 과정에서도 유사하게 재연됐다. 망월묘지와 함께 5·18의 원초적 항쟁 공간이던 금남로와 충장로를 포함한 전남도청 일대의 기념사업도 마찬가지다. 항쟁과 계승의 의미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함에도, 추모와 제도화의 편의성을 앞세운 탈정치화된 형태로 재조성되는 상황이다.
시민의 자발성에 토대를 둬야
5·18 기념사업이 대규모 공원과 시설 조성에 집중되는 과정에서 역사성·사회성의 탈피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5·18의 원초적 공간이 해체되고 당시의 현장성을 잃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흐름도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5월의 반복적인 재연과 회고는 시민의 무관심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광주에 인접한 지역들에서 5·18을 기념하는 작업도 다르지 않다. 전남 화순군의 5·18 기념시설은 5·18의 기억 공간이 처한 현주소를 보여준다. 기념물의 재질을 교체하고 접근을 제한하는 시설을 추가로 설치했지만 친근성, 미적 감각, 장소 접근성 등 사회·문화적 고려가 부족했다. 쓰레기와 각종 기물에 둘러싸인 경찰서 사거리 표지석이나 구석에 숨겨져 찾기 힘든 화순경찰서 표지석, 시민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역청공장 표지석 등 기본적인 기능조차 잃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상처를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예산을 들여 여러 공간과 시설을 건립했지만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의문이 든다. 동원과 보여주기가 아니라, 시민의 자발성에 토대하고 지지를 받아 5·18의 기억 공간들이 영구화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5·18을 기념하는 문제에서 법과 제도, 관행이라는 잣대는 그다음이다. 국립5·18민주묘지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집단으로 줄지어 참배하고 되돌아나오며 그들끼리 하던 “입장료 안 내는 곳만 데리고 다녀”라는 얘기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이들의 방문을 통계로 정리하고 발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호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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