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으로 한반도 정세가 출렁거리고 있다. 국내 정치만을 생각하는 한국 외교는 좌초의 길에 들어섰다. 한-중 갈등의 파고가 높다. 미국은 우물쭈물하고 있다. 미국은 미-중-북 삼각대화를 통한 6자회담 재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천암함 사태에 대한 한-미 공조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강화된 북-중 협력의 구도가 가져올 변화는 만만치 않다. 한반도 정세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font color="#00847C">북의 6자회담 복귀 선언이 어려웠던 이유</font>김정일의 방중으로 6자회담 재개의 계기가 마련될 것인가? 불투명하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9·19 공동성명의 의미를 강조한 것은 의미가 있다. 조건이 갖춰지면 핵 폐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6자회담에 나설 의지를 밝힌 것이다. 북한의 통상적인 군축회담 주장과 다르다. 그것이 하나 마나 한 원칙이라도 지금 시점에서 핵 폐기 의사를 재확인한 것은 중요하다.
그러면 일부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이번에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고 선언하면 안 되는가? 그것은 어렵다. 6자회담은 단순히 회담을 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쟁점 현안에 대해 입장을 좁혀서 성과 있는 회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미국의 태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6자회담 복귀 선언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문제는 미국이다. 안타까운 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북-미 양자 접촉에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마치 대화하는 것 자체를 인센티브로 생각하던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을 연상시킨다. 부시 행정부보다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왜 그럴까? 한국의 달라진 역할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북-미 양자 대화에 부정적 태도를 취해왔다. 최근 상황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중재 노력으로 미국은 6자 예비회담을 거쳐 본회담으로 이어지는 회담 형식에 합의했다. 그동안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비자 발급에 소극적이던 미국의 태도 변화도 보였다. 그러나 이 미묘한 변화는 천안함 사태가 터지면서 중단됐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애매하다. 미국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강조하는 한국을 고려해야 하고, 6자회담 재개도 무시할 수 없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워싱턴에서 흘러나오는 말도 오락가락한다. 미국이 왜 저럴까? 삐걱거리는 미-일 관계의 영향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미-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가치가 높아졌다. 아프간 파병, 핵 비확산체제 강화 등 미국의 글로벌 외교 현안에서 한국의 협조가 중요해졌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왜 그것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는가이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한-미 동맹을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6자회담 재개와 천안함 외교가 부딪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천안함 사건의 북한 연계성을 밝힐 만한 강력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느냐이다. 심증은 가나 확증이 없는 상황은 국내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겠지만, 외교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우선적으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최대 조처는 유엔 안보리 회부다. 국내적인 조처는 한계가 있다. 남북관계가 이미 끊어질 만큼 끊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은 수단이라고는 개성공단이나 위탁가공, 즉 북한보다 우리 중소기업에 더 큰 고통을 주는 분야뿐이다. 전쟁을 제외한다면, 대북정책에서 쓸 수 있는 협상 수단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안보리로 가면, 결국 핵심은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회의적이다.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국제사회의 논란은 커지고 시간만 허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font color="#C21A8D">5월24일 미-중 전략 경제대화 전까지는</font>미국도 마찬가지다. ‘천안함 먼저’라는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 또한 무한정은 아니다. 일정하게 논란의 시기가 지나면 미국 또한 6자회담 재개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이다. 당장 5월24일부터 베이징에서 미-중 전략 경제대화가 예정돼 있다. 그 전에 한국이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한반도 정세는 6자회담 정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한국이 국내적으로 ‘천안함의 늪’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6자회담은 굴러갈 수 있다는 뜻이다.
북-중 경제협력의 활성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북-중 양국의 경제협력으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의미를 상실했다. 대외무역과 투자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 때문에,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제재란 말뿐이지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 천안함에 대한 제재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미 천안함과 6자회담 재개를 분리해 대응하고 있으며, 한국의 접근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안보리로 가도 중국이 동참하지 않은 제재는 북한에 고통을 줄 수 없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둘째, 북-중 경제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미 중국산 소비재와 생산재의 가격 경쟁력 때문에, 북-중 양국의 민간 차원 무역은 활성화돼 있다. 이제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나서고 있다. 중국의 동북3성 입장에서 나진항을 비롯한 동해로의 출구 확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미 동북지역 철도망과 도로망을 구축한 중국이 해운물류망을 갖출 경우, 연해지역이나 중국 남부지역과의 경제적 연계성이 확대될 수 있다. 동북3성의 경제발전에서 북한의 지경학적 위치가 대단히 중요해지고 있다. 그것이 과거 북-중 경제협력과의 차이다.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동선에서 드러났지만, 북한 역시 물류 문제에 관심이 많다. 다롄이나 톈진은 항만물류의 중심지고,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외자 유치에 성공한 지역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우호 상징으로 거론된 신압록강 대교 역시 양국의 경제협력을 한 단계 발전시킬 것이다. 단순한 다리가 아니다. 동북3성과 북한의 경제협력을 이어주는 다리다. 이미 중국의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임금이 높아진 상태에서 북한의 낮은 임금은 매력적이다. 남쪽으로의 문이 닫힌 상태에서 신의주를 비롯한 북서쪽 지역은 북한의 새로운 외자 유치 지역이 될 것이다.
<font color="#008ABD">과거 방중은 북 개혁·개방으로 이어져</font>
셋째, 북한의 경제 개혁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다. 화폐 개혁 이후 북한의 경제정책은 기로에 서 있다. 계획 강화와 시장통제 정책은 실패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은 북한 내부적으로 개혁·개방 조처로 이어지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번 중국 방문단에 대풍투자그룹 이사장인 김양건 통일전선 부장이 포함된 것이나,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의 당 책임비서가 따라간 것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중국에 한정된 것이지만, 진전된 외자 유치 환경 조성이 뒤따를 것이다. 중국 역시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중 관계가 동북아 질서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이 북핵 문제를 푸는 중국식 해법이다. 경제협력을 통해 중국의 영향권 안에 두는 것이 북한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제재보다는 경제협력 활성화가 북한의 비핵화 환경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세계 정세에서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남북관계는 암울하다. 당국 간 대화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됐고,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고, 개성공단의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천안함 사태로 군사적 보복의 목소리도 높다. 우려할 만한 것은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적 개념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에서도 안보는 없고 정치만 있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처음으로 들어간 이 개념은 대단히 정치적인 개념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주적 개념을 삭제해서 안보의식이 해이해졌다고 주장하나, 그러면 1994년 이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군사정권의 안보의식이, 냉전 시절의 안보의식이 해이했다는 말인가. 세계적으로 를 발간하는 어떤 나라도 주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논란이 바로 남북관계의 현주소다. 중요한 것은 천안함 사태에 대해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공개해야 할 정보가 있으면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결론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비핵·개방·3000’(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국민소득 3천달러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 정책은 어디로 갔는가? 이명박 정부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주변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말하는데,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불안과 대립을 주장하는 것이 한반도의 우울한 풍경이다.
<font color="#A341B1">외교안보 문제의 국내 정치화는 위험하다 </font>마지막으로 ‘북한을 잃어버린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경제권에 편입되는 사태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질서 변화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사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안보 문제의 국내 정치화는 위험하다. 상황이 변해서 대화를 해야 할 국면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길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상태로 임기가 끝나면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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