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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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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손녀 돕는 일자리가 생겼어요



기초단체 최초 교육발전기금 조성, 지역 노인을 배식 보조원으로
등록 2010-04-30 14:49 수정 2020-05-03 04:26
경기 과천시 별양로 관문초등학교 교실에서 점심시간 급식으로 어린이들이 호박죽과 갈치무조림, 부추무침 등 반찬을 식판에 받고 있다.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경기 과천시 별양로 관문초등학교 교실에서 점심시간 급식으로 어린이들이 호박죽과 갈치무조림, 부추무침 등 반찬을 식판에 받고 있다.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지난 4월20일 아침 8시 경기 과천시 별양로 관문초등학교. 식당조리실 앞으로 냉장차가 도착했다. ㅇ업체가 이날 호박죽 재료로 쓸 찹쌀 새알심을 배달했다. 이 학교의 양재란 영양교사는 지정섭 조리사와 함께 재빨리 재료를 점검하고 학교 냉장실로 옮겼다. 20분 뒤에는 ㅅ업체의 냉장차가 멈춰섰다. 이번에는 고추와 마늘, 무, 보리 등 24가지 식재료였다. 무가 든 상자를 열어봤다. 안에는 ‘친환경농산물인증서’가 있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김아무개(46)씨가 생산한 유기농산물이라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보증한 서류다. 부추처럼 삶지 않는 재료는 ‘락스’를 100ppm 정도로 섞은 물에 5분가량 담갔다가 수돗물에 3번 헹군다. ㅇ영농조합법인에서 가져온 국산 1등급 닭고기는 바로 삶았다. 모든 재료의 원산지와 포장 상태, 식품 온도, 유통제조일 등이 꼼꼼하게 정리돼 ‘식재료 검수서’에 기록됐다. 재료의 질이 항상 좋으리란 법은 없다. 지난 3월5일에는 한 업체가 들여온 연근이 질이 떨어져서 반품됐다. 식재료가 3번 이상 반품되면 해당 업체는 다음 분기 공급업체 선정 심사에 참여할 수 없다. 옐로카드 3번이면 ‘퇴장’이란 뜻이다. 양재란 교사는 “업체가 식재료의 품질과 신선도, 수량, 원산지를 점검하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천 관문초등학교 식재료 검수서(4월20일치)

과천 관문초등학교 식재료 검수서(4월20일치)

73.7% 친환경 인증 제품

이날 점심 메뉴는 잡곡밥, 닭곰탕, 갈치무조림, 호박죽, 부추무침, 깍두기 등이었다. 식재료 검수서를 보니, 이날 사용된 30개 재료 가운데 12개 품목이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설탕, 마늘, 무, 보리, 부추 등이었다. 농산물 가운데 고추·생강·호박은 친환경 농산물은 아니었지만, 국내산 상급 제품을 썼다. 나머지는 우유와 참기름, 다시마, 갈치 등 공산품이거나 수산물이었다. 이 학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농산물 재료 구입 비용 8183만원 가운데 73.7%인 5992만원이 친환경 인증 제품을 사는 데 쓰였다.

이 학교에는 식당이 따로 없다. 조리실에서 만들어진 요리는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따라 각 교실로 옮겨진다. 점심시간에 1학년 2반 교실을 찾았다. ‘실버 급식지도원’인 변정순(64)씨와 김영자(70)씨가 나란히 교실 앞에서 배식을 했다. 김씨가 호박죽·깍두기·부추·갈치조림을 배식하고, 변씨가 국과 밥을 덜어줬다. 이 학급 담임인 양성자 교사 뒤로 어린이 31명이 올망졸망 줄을 섰다. 선생님 바로 뒤에 서서 가장 먼저 배식을 받은 소연이는 숟가락을 입에 물고 “김치가 맛있다”고 말했다. 키가 큰 소연이는 어느새 식판을 거의 다 비우고 배식대로 다가갔다. 깍두기를 더 달라는 얘기다. 김씨가 깍두기를 주는 동안, 변씨는 소연이의 식판에 슬쩍 밥을 더 얹었다. 김씨는 “손자가 이 학교에서 2학년까지 다니다가 3년 전 캐나다로 갔다”며 “아이들이 모두 손자·손녀 같다”고 말했다. 변씨와 김씨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학교에 나와 배식을 돕고 과천시 노인복지관으로부터 한 달에 16만~18만원씩 수당을 받는다. 양성자 교사는 “무상급식을 하니 학교에서 빈곤 아동을 대상으로 급식비를 채근하는 일이 없어져서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이 먹은 점심 한 끼의 비용은 1인당 2050원이다. 재료비 1600원, 인건비 272원, 운영비 128원이 들었다. 연료비도 50원이 쓰였다. 이 가운데 2천원은 과천시가 지원하고, 교육청이 연료비 50원을 지원한다. 과천시는 시내 4개 초등학교 5133명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18억470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올해 예산 2225억6700만원의 0.83%에 해당하는 액수다.

무상급식을 어떻게 생각하나?

무상급식을 어떻게 생각하나?

“중학생 무상급식도 고려”

과천시는 우리나라 무상급식의 모범생이다. 시는 지난 2000년 과천시 교육발전기금운영·관리조례를 제정했다. 교육발전기금 250억원을 조성해 이자를 무상급식 재원으로 쓰겠다는 취지였다. 같은 해 9월부터 초등학교 3~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초였다. 2007년에는 무상급식 대상을 초등학교 1~2학년까지 넓혔다. 2008~2009년 2년 동안 학교 급식 시설을 개선하는 데 22억3400만원의 예산을 추가로 지원했다. 1인당 지원액도 꾸준히 늘었다. 지난 2005년 1600원이던 끼니당 지원액은 지난해 1880원으로, 올해에는 2천원으로 올랐다. 최근 금리가 떨어지면서 교육발전기금 이자수익이 크게 줄었지만, 대신 일반회계예산에서 무상급식 관련 지출을 늘렸다. 과천시의 무상급식 관련 일반회계예산 지출액은 2008년 2억1200만원에서 올해 10억원까지 늘었다. 여인국 과천시장은 “재정 부담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과천을 상징하는 사업이라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며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중학생 무상급식을 시작할지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과천시의 무상급식은 일자리를 소박하게 창출하는 효과도 낳았다. 1학년 2반에서 배식을 하던 변정순씨가 그 예다. 이 지역 노인 98명이 시내 4개 초등학교에서 점심 배식 보조원으로 일한다. 홍옥민 과천 노인복지관 실버인력뱅크팀장은 “급식 지도는 원래 학부모가 자원봉사를 하던 일인데, 지역 노인들이 대신 맡고 있다”며 “1년에 1억원 정도 예산이 들지만, 학부모·노인·학교 모두 만족하는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무상급식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관문초등학교가 지난해 10월 학생·교사·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살펴봤다. 학교 급식에 ‘매우 만족’하거나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학부모(86.6%), 교사(75.0%), 학생(68.4%) 순으로 나타났다. 학교 급식의 좋은 점을 묻는 질문에는 학생 가운데 35.7%가 ‘균형된 영양식을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고 답했고, 30.1%는 ‘도시락을 지참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가정에서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18.1%)와 ‘동일한 음식을 친구들과 함께 먹을 수 있어서 좋다’(16.1%)라는 답도 뒤를 이었다. 양재란 교사는 “사춘기에 접어드는 고학년 학생들이 일부러 부정적인 답을 주는 경향이 있어서 학생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며 “어린이의 반응도 함께 고려해서 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예산 부족해 친환경 쌀은 아직…

학교급식의 좋은 점은?

학교급식의 좋은 점은?

관문초등학교도 고민은 있다. 김재섭 교무주임은 “학교에 식당이 없어서 따뜻한 음식을 교실로 옮기다 보면 안전이나 위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급식센터를 겸한 학교건강 증진센터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친환경 쌀을 쓰지 못하는 것도 두통거리다. 학교에서는 예산이 부족해 아직 ‘수확한 지 1년이 안 된 정부미’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급식법 시행규칙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학교의 욕심에는 못 미친다. 학교는 올해 들어 끼니마다 120원씩 늘어난 시의 지원비를 어디에 쓸지 고심하다가, 아이들에게 과일을 더 먹이기로 결정했다. 한 주에 서너 차례 과일이나 요구르트를 더 먹이는 것이 친환경 쌀을 먹이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재란 영양교사는 “아이들의 식사량을 살펴보고 요리량을 줄이는 식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지만 아직은 예산이 부족하다”며 “내년에라도 예산이 추가로 생기면 무엇보다 친환경 쌀을 꼭 먹이고 싶다”고 말했다. 서형원 과천시의회 의원(무소속)은 “초등학교의 급식 질도 높이고 무상급식을 중학교까지 확대하려면 과천시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예산 지원액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과천=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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