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이명박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이었던 김중수와 최중경이 돌아왔다. 지난 2008년 6월 촛불집회의 유탄을 맞고 청와대 경제수석과 기획재정부 차관 자리에서 물러났던 두 사람은 최근 청와대의 부름을 받고 관가로 복귀했다. 두 사람의 새 명함에는 한국은행 총재와 대통령실 경제수석이라는 타이틀이 새겨졌다. 이들의 귀환은 이명박 정권 초기 실세들의 복귀 ‘2탄’으로 풀이된다. 1탄은 정권 초기 관직을 잠시 떠났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지난해 1월 줄줄이 관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초기 이명박 정부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던 이들이 대부분 직함만 달리한 채 헤쳐 모인 셈이다.
최중경 전 기획재정부 차관의 복귀에 맨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외환시장이었다. 최 전 차관의 경제수석 내정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지난 3월31일 원-달러 환율은 나흘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날 환율은 1.2원 오른 1131.3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최중경 효과’라고 불렀다. 시장은 지난 2008년 7월을 정확히 기억했다. 당시 최중경 차관은 이명박 정부 초기 경제팀의 성장률 7%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시장에서는 저돌적인 그를 두고 ‘최틀러’라 불렀다. 원화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수출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려 수출량을 늘리자는 취지였다. 그렇지만 부작용이 더 컸다. 물가가 5.5%나 치솟았다. 수출 가격이 낮아지는 대신,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물품의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강만수 장관을 대신해 관직에서 물러나 ‘대리경질’이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강만수 대통령실 정책실장 길닦기?그런 그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을 두고 ‘강만수의 승리’로 해석하는 의견이 많다. 최 전 차관과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다. 강 위원장은 2008년 초 세계은행 상임이사로 일하던 최 전 차관을 불러들여 차관으로 기용했다. 당시 강한 개성을 가진 두 사람의 조합은 ‘최-강(최중경-강만수) 라인’으로 불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강 위원장이 짜증을 자주 내는 편인데, 최 전 차관이 이를 잘 받아줘서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이 쓴 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강 위원장은 1997년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런던 유럽부흥개발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얘기를 풀면서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하이드파크 옆 힐튼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녹초가 됐다”라고 기록한 뒤 “최중경 금융협력과장이 동행하여 모든 일정을 잡았다”라고 굳이 사족을 달았다. 최 전 차관의 복귀를 두고 강 위원장이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설도 관가에서 돌고 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두 사람을 실과 바늘처럼 엮어서 본다는 뜻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복귀를 두고는 ‘모피아의 승리’라는 풀이가 나온다. 모피아란 옛 재무부·재경부 출신 인사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은 총재 물망에 올랐던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나 강만수 위원장 등에 견줘 김 총재가 정부에게는 가장 ‘대하기 쉬운’ 상대로 꼽혔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주요 보직을 거쳤지만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가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일하던 2008년 상반기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등으로 현안이 많았지만, 그의 역할은 도드라지지 않았다. 당시 “경제수석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지적이 종종 나왔다. 그는 한은 총재로 내정된 뒤 지난 3월16일 연 기자회견에서도 “한은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는 표현은 맞지만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은행을 중앙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킬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다. 가 지난 3월 경제 정책 전문가 4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경제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20점 만점에서 14.2점), ‘통화신용 정책에서의 독립성’에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6.4점을 받았다.
그는 일벌레로도 유명하다. 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있을 때 직원들에게 종종 “내가 라면 끓여줄 테니 일 좀 더 하다가 퇴근해라. 벌써 퇴근하면 어떡하느냐”라고 했다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2월 ‘국정운용 워크숍’에서 “강만수씨가 나를 잘 아는 것 같아도 잘 모른다. 오히려 김중수 경제수석 내정자가 더 정확히 알지도 모른다”며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그를 두고 ‘무조건 손들기’라는 다소 냉소적인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자리만 나면 맡았기 때문에 붙은 말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올해와 내년 경제 여건을 보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는데, 김중수 신임 총재는 정부 방침에 따라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은행이 기획재정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전락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중경 전 차관과 김중수 총재가 돌아오면서 이명박 정부 초기에 옷을 벗었던 정권 실세들의 ‘원대 복귀’는 일단락됐다.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은 “같은 인물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라며 “정책 실패 혹은 도덕적인 흠결로 물러났던 인사들이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도 않은 채 돌아오는 것이라 더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고환율 중심의 정책 실패로 퇴장했던 강만수 위원장이나 최중경 전 차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했다가 돌아온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도 이에 해당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대통령이 인물을 검증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검증 방식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쓸 사람이 없나청와대에서 쓸 수 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다. 김형준 교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과거 군사정권 때는 인재를 골라 마음대로 쓸 수 있었고,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야당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충분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서 “참여정부 이후 대통령의 권력이 줄어들면서 청와대가 활용할 수 있는 인력 자원도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후보군 중) 그래도 나은 인사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이른바 ‘회전문 인사’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는 말로 들린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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