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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시커먼 미궁

밝힐 수 있는데도, 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데도, 누군가에 의해 닫힌 진실의 문
등록 2010-04-09 16:18 수정 2020-05-03 04:26

천안함의 진실은 무엇인가?
지난 3월26일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한 이후 일주일이 넘었다.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이 농구공 크기만 한 물체까지 식별할 정도고 공상과학 소설의 영역이던 수중도시 건설 계획이 실제로 나올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했다지만, 천안함의 사고 원인과 경위는 일주일이 넘도록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주요 정보들이 누군가에 의해 차단됐기 때문이다.

3월29일 오후 경기 평택 제2함대 사령부가 미리 준비해놓은 합동 분향소를 보고 실종자 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3월29일 오후 경기 평택 제2함대 사령부가 미리 준비해놓은 합동 분향소를 보고 실종자 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상황일지·교신기록 모두 비공개

은 사건 직후부터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사실들을 모으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우선 기록에 주목했다. 기록은 조작하지 않는 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천안함을 인양하기 전이라도 △천안함이 백령도 주변에서 어떤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밝혀줄 작전일지와 항해기록 △사고 당일 제2함대사령부와 해군작전사령부의 상황일지 △사고 이전부터 이후까지 천안함이 제2함대 사령부와 속초함 등 사고 현장 주변에 있던 함정들과 교신한 기록 등을 통해 진실을 밝혀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국방부는 국방장관을 지낸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도 서면으로 “비밀 사항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국방부가 내세운 군사기밀이라는 논리는 근거가 있을까? 꼭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99년과 2002년 이른바 ‘연평해전’ 때 일이다. 당시 정부는 레이더와 전방의 항공기 등이 모은 정보가 취합돼 모든 배와 항공기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KNTDS(Korean Naval Tactical Data System) 화면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통째로 공개할 경우 민감한 부분이 포함돼 있어 안보상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공개 범위를 좁히거나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가리는 방법도 있을 텐데, 국방 예산을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에게조차 군사기밀을 이유로 아무런 기록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김 의원은 “국방장관 출신으로서 되도록이면 군을 이해하려는 입장”이라고 전제한 뒤 “어차피 진실은 밝혀질 텐데, 군은 비밀을 유지해 얻을 수 있는 가치와 공개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도 3월31일 “천안함 침몰 원인이 규명되기는커녕 의혹과 불신이 확산되는 데는 기초적 사실관계 정보조차 병사 가족들과 시민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통제 일변도로 대응해온 군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며 교신 내역과 항해일지 등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는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군은 사고 직후 최원일 함장 등 사고 현장 수색작업을 지원하는 6명을 제외한 생존자 52명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 입원시켰다. 가족들을 통한 간접적 전언만 흘러나왔다. 연평해전 당시 중상을 입고 입원해 있는 병사 인터뷰까지 가능했던 상황과는 천양지차다. “절대적 안정이 필요해 진료와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국방부가 발표한 천안함 침몰 사건개요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방부가 발표한 천안함 침몰 사건개요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생존 장병들

은 입원 치료 중인 부사관·사병 취재를 수차례 시도한 끝에 어렵게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4월1일이었다.

치료 중인 부사관과 사병들은 701병동에 모여 있었다. 평소에는 VIP들이 이용하는 꼭대기층 구석진 곳이다. 5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하려고 한 것인지 응접실 집기들이 있던 자리에도 병상이 깔려 있었다.

가족 면회를 하는 곳에서 만난 한 부사관은 사고 당시 정황을 묻는 질문에 “정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쪽(2함대 사령부 동료)과 통화를 해보지만 저쪽에서도…”라며 말을 아꼈다. 실종자 구조 소식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고 했다. 병원 안에 있는 그들도 바깥의 국민과 마찬가지로 정보가 차단돼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거나 휠체어를 탄 부상병도 있었지만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휴게시설인 병동 도서실에서 피아노를 치던 사병 둘을 만났다. 이들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아는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낯선 면회객인 기자에게는 그럴 수 있다. 몇몇의 이야기가 자로 잰 듯 같아서 모종의 지시를 받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군은 생생한 사고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서 사고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증언을 들었을까?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자료는 없는 상태다.

민주당 천안함 침몰 진상규명특별위원회(위원장 문회상)는 국방부를 상대로 63건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는 천안함 함장인 최원일 중령을 비롯해 위관급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의 진술서도 포함돼 있었다. 군은 이들에게서 받은 진술서가 한 장도 없다고 했다. 국방부는 63건 중 천안함 공식 제원, 백령도 내 고속정·공기부양정 운용 현황 등 진상 규명과는 거리가 먼 14건만 제출했다. 생존자 진술서가 없는 이유에 대해 국방부는 “생존자들의 심리적 안정 및 병원 치료 관계로 현재까지 진술서는 작성하지 않았으며 추후 합동조사단에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해군의 도를 넘은 정보 통제는 진실 규명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3월29일 합참 정보작전처장 이기식 준장이 국방부 브리핑에서 천안함의 동강 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 백승렬 기자

해군의 도를 넘은 정보 통제는 진실 규명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3월29일 합참 정보작전처장 이기식 준장이 국방부 브리핑에서 천안함의 동강 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 백승렬 기자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 왜곡 위험은 더 커

그런데 이상하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4월2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현안질문에서 “어뢰 가능성”을 제기한 뒤, 군 관계자는 “침몰한 천안함 생존자 중 음향탐지기를 다룬 장병이나 근처에 있던 속초함 근무자 가운데 사고 당시 어뢰음을 들었다는 증언은 없었다”고 말했다. ‘증언’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군이 군 통수권자이자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청와대에는 정확한 정보 보고를 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4월2일 김태영 국방장관이 어뢰 공격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 청와대는 김 장관 발언의 파장을 줄이기에 급급했다. “(기뢰와 어뢰 중) 어느 쪽 가능성이 높으냐고 말해서 그렇게 답했을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충격 부위가 어찌 돼 있는지, 거기서 나오는 화학물질이 뭔지 모르므로 원인에 대해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본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1일 조선·동아·중앙 등 보수언론이 앞다퉈 보도하는 북한 개입설에 대해 “북한이 개입됐다고 볼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며 “섣불리 예단하지 말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했다. 원론적으로는 맞다. 대통령은, 청와대는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취재진은 두 가지 의문에 봉착했다. 우선 천안함의 선체를 인양하기 전에 침몰 사고의 원인과 경위 등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정보는 없는가? 국방·외교 전문가들은 대부분 “선체를 인양해야 정확한 원인 파악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대한민국의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사람들 얘기”라고 말한다. 민주당 진상규명특위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방부에 요구한 자료, 참여연대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자료, 그리고 생존자들의 증언만 취합해도 얼개 파악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최소한 지금처럼 몇 가지 드러난 사실을 자신들이 세운 가설에 끼워맞추는 식의 혼선은 피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의문은, 선체를 인양한 뒤에는 모든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고 진실이 온전하게 드러날 수 있는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국방·외교·남북관계 전문가와 선박 전문가들은 “인양에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인양 뒤에도 침몰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관 합동조사단이 정밀한 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한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거는 흐려지게 마련이다. 현재의 정부 기조가 변하지 않는 한, 여전히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거나 미세한 전문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정보 왜곡의 유혹이 커질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이 대통령은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선체 인양과 정밀 검사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으로 남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참사 밑바닥에는 MB 정부 강경 대북정책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내 안보 문제에 밝은 박선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천안함이 왜 평소에 가지 않던 그곳에 있었는지가 밝혀지면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의 분석을 더 들어봤다. “북한 개입설은 근거도, 증거도 없다. 체제 경쟁에서 게임은 이미 끝났고, 국제정세와 남북관계를 고려해봐도 전면전 위험을 무릅쓰고 도발을 감행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천안함이 북한의 해안포 공격에 대비해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것 같다. 수심 40m 지역에서 25m 지역으로 급하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국방부가 4월1일 ‘천안함이 백령도 연안에 근접한 이유’에 대해 “북한의 새로운 공격 형태에 대응하여 경비작전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답한 대목을 보면 박 연구원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부분의 사실에 근거한 분석이다.

박 연구원의 문제제기는 더 근본적이다. 폭발에 의한 침몰이건, 암초에 의한 침몰이건 이런 참사가 터진 밑바탕에는 이명박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그리고 올 1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향한 북한의 해안포 사격과 이번 참사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천안함의 진실은 언젠가는 있는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사고의 구체적 원인을 밝히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우리는 평화를 향해 갈 것인지 아니면 전쟁불사론이 판치는 불안한 시대로 돌아갈지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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