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동강면 곡천리가 고향인 최병권씨.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 살인 그가 어릴 적만 해도 영산강은 놀이터인 동시에 가족의 생계가 달린 삶터였다. 대나무로 발을 엮어 물 위에 펼친 뒤 옆 수면을 몽둥이로 때리는 순간, 놀라 튀어오른 새끼 숭어들이 발에서 퍼덕거릴 정도로 강에는 고기가 득실댔다. 해 지는 강변 갯벌에는 재첩이 바글댔다. 잡아다 국 끓여먹거나 장에서 보리랑 바꿔먹기도 했다.
풍요로웠던 ‘물길 닿는 곡창’의 기억
나주는 풍요로운 곳이었다. 일찍부터 바다와 강을 드나드는 배들로 인해 교역이 활발했다. 전라도라는 이름도 큰 도시인 전주와 나주를 합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호남평야에서 기른 기름진 쌀과 곡식이 이곳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보내진, 수탈의 현장이기도 했다.
최씨는 그곳에서 열여섯 살 무렵부터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배를 탔다. 동력선이라 부르던 통통배가 나오기도 전이다. 노를 저어야 움직였다. 강에 띄운 배는 한 번 나가면 서너 달은 계속 물고기를 잡았다. 더 작은 배가 포구와 배를 오가며 물고기를 날랐다. 목이 마르면 강물을 그냥 떠먹었고, 그 물로 배 위에서 석유난로에 밥을 해먹었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장어와 ‘히라시’라 부르던 새끼 장어를 잡고 늦봄에는 웅어, 여름에는 또 장어와 메기, 가물치 등을 잡았다.
1970년대 새끼 장어는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보물 덩어리였다. 삼양라면 한 개에 25원이었는데, 어부들이 잡은 새끼 장어 한 마리도 라면 한 개 값을 받고 팔았다. 그런 새끼 장어를 하루에 1천∼1500마리씩 잡았다. 모두 일본으로 수출됐다. 수출을 담당하던 한국양만협회 등이 “우리한테만 히라시를 팔라”며 최씨에게 닷 돈짜리 금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풍요로움의 밑천이던 영산강이 죽음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계기는 1979년 강 하구를 둑으로 매립한 사건이다. 간척사업 덕분에 농지는 늘고 그 뒤 대불공단 등도 들어섰다. 하지만 호수가 된 강은 제일 먼저 썩어 들어가는 하구 갯벌을 통해 죽음을 알렸다. 하루에 두 번씩 영산강 중·상류까지 들이닥치던 바닷물의 유입이 끊긴 탓이다. 밀물 때면 몇m씩 높아지던 수위도 밤이나 낮이나 똑같은 수위를 유지하게 됐다. 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토사는 물론 광주 등에서 떠내려온 쓰레기 등이 강바닥에 쌓여갔다. 한때 150t짜리 배도 드나들던 영산강에 이제는 20t짜리 배도 드나들기 어렵다. 썩은 갯벌은 악취를 풍겼다. 모기와 하루살이가 급증했다. “하도 냄새가 심해 강변을 걷지도 못할 정도였당께.” 2월23일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구진포 쪽에서 만난 최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강과 바다의 길이 막힌 뒤 바다를 오가던 어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장어는 물론이고 황복, 숭어, 재첩 등 바닷물을 필요로 하는 생물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대신 담수어종인 붕어, 잉어만 꾸준히 잡혔다. 고유 어종이 사라진 빈자리는 큰입배스와 블루길 같은 외래 어종이 잠식해나갔다.
이에 따라 조업 횟수도 한 달에 예닐곱 번 정도로 꾸준히 줄었다. 어부들은 하나둘 부업을 시작했다. 나주시 어민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씨는 4년 전 횟집을 냈고, 그의 조카인 김재석(47)씨는 훨씬 전부터 장어구잇집을 운영하고 있다. 옛날부터 영산강에서 나는 장어들은 구진포에 모여 거래됐기 때문에, 지금도 근방에는 장어구잇집들이 즐비하다. 물론 다른 지역이 대개 그렇듯, 모두 양식장에서 자란 장어들을 들여와 판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악재가 덮쳤다. 정부가 영산강을 ‘4대강 사업’ 대상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대형 보 2개를 건설하는 동시에 3천만㎥ 가량의 모래를 준설하겠다는 것이다. 대형 보 2개는 구진포보다 16km가량 위쪽에 만들어지는 승촌보와 구진포 하류 3km 정도의 죽산보다.
지난해 11월22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영산강 살리기 사업’ 기공식이 열렸다. 박준영 전남지사와 박광태 광주시장 등이 참석해 이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내는 동안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건너편에서 “삶터를 빼앗고 홍수해를 키우고 생태계를 해치는 등 사업의 부작용에 대해 대통령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관리는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이 다녀간 뒤 2개의 보 물막이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월23일 오후 ‘부르릉’ 소리와 함께 조카 김재석씨가 구진포 앞 강에 할 일 없이 떠 있던 자신의 배에 시동을 걸었다. 물막이 공사와 함께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배는 오랜만의 외출이 반가운 듯 죽산보를 향해 신나게 달렸다. 구진포 쪽 어민들은 원래 물막이 공사가 진행 중인 죽산보 아래 나주시 동강면 몽탄대교 쪽 하류까지 내려가 조업을 해왔으나, 물이 막히면서 더는 배가 드나들지 못하게 됐다. 조업 정지에 따른 피해 보상 문제에 대해 나주시청에서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한다.
10여 분을 달린 배가 한 굽이를 돌아서는 순간 ‘장관’이 펼쳐졌다. 100여m 폭의 강이 수백 개의 철제 빔과 흙주머니로 완벽히 막혀 있었다. 아, 어디서 본 듯한 스펙터클인데…. 그렇다. 2년여 전 서울 광화문대로를 물샐틈없이 틀어막은 ‘명박산성’ 바로 그것이었다. 위압적인 모습으로 사람, 차, 바람 한 줄기조차도 가로막았던 불소통의 장벽. 지난해 5월 서울광장을 포위한 경찰버스 차벽도 그랬다. 이명박 정부는 도로에서나 강에서나 일관성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대신 스스로 그러한 모습으로 수십만 년을 흘러왔을 영산강은 물막이 보 오른쪽에 굴착기가 뚫어놓은 폭 10여m의 샛수로로 100여m 돌아 흐른 뒤 다시 제 몸과 만났다. 주변에는 부지런히 강변을 파내거나 다지는 굴착기들이 불소통의 공간에 역동적 이미지를 더하고 있었다.
보 쌓아 수위 높아지면 홍수 피해 어떻게 하나?“잠깐.” 배가 샛수로 가운데 쪽으로 접어들던 즈음 물질 경력 44년차의 삼촌 최씨가 외쳤다. 샛수로 수심이 너무 얕아 배가 바닥에 걸릴 뻔했다. 최씨가 배에 실린 대나무 작대기를 꺼내 물에 잠갔다. 수심이 1m 안팎에 불과했다. 배는 아주 느리게 옆쪽으로 돌아 샛수로 끝까지 갔다. 부표에 막힌 배는 아래로 가지 못하고 방향을 틀어 다시 구진포를 향했다.
강 가운데에는 큼지막한 모래섬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상류에서 내려와 쌓인 퇴적토다. “한 7년 전쯤엔가 한 번 싹 긁어냈는디 도로 저래.” 최씨가 말했다. “근디, 보를 쌓으면 물 흐름이 더 느려질 틴디, 그땐 (섬들이) 더 생긴다고 봐야제.” 최씨의 상식적인 추론이다. 물론 계속 파내면 된다. 모래와 자갈, 수초 등 물고기들이 산란하고 새끼들이 자라는 장소가 어떻게 되건 말건….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잘 알듯, 말 못하는 물고기 마음은 어부가 잘 안다. 보를 만들고 나면 영산강은 배스와 블루길, 눈치 등의 천국이 될 거라고 최씨는 생각한다.
어민들에 대한 피해 보상 문제나 수중 생태계 교란 말고도 주민들의 걱정거리는 또 있다. 바로 침수 피해다. 보를 쌓아 강을 가로막으면 수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이고, 해당 수위보다 낮은 곳에 있는 농경지는 침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관리 수위를 낮추면 별 피해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금까지 자세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구진포 도로변에 집이 있는 김씨도 걱정이 많다. 큰 홍수가 날 때면 집 지붕까지 물이 차올랐는데, 그렇잖아도 보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 상황에서 폭우가 내리면 큰 사고가 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월12일 많지도 않은 30mm가량의 비가 내린 날 죽산보 공사 현장 주변으로 강물이 넘쳐 인근 지역의 논 15.7ha가 잠기고 31개 농가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영산강 지키기 광주전남시민행동’의 최지현 국장 등 지역 환경단체들이 “장마 같은 우기에 문제가 더 심각함을 고려하면 보 건설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도 같다.
삼촌 최씨는 정부가 이 지역의 홍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업을 밀어붙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기는 장마가 나면 물이 서서 내려온다”고 했다. 그만큼 기세가 무섭다는 얘기다. 그런 실정을 아는지 물어보려고 지난 1월 공사 현장 사무실을 찾아가 따졌더니 “토목 박사들이 설계해놓은 거라 염려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3천억 예산 공사를 내년까지 ‘후다닥’이런 문제에 대해 정부가 공청회라도 열어서 사정을 정확히 설명하고 주민 의견을 모으고 하면 불안함이 덜하련만, 정부는 강물을 막고 땅 파는 데만 관심이 많다. 최씨는 정부가 당장 보 쌓기를 멈추고 강바닥에 쌓인 퇴적토와 쓰레기 등을 우선 치우는 게 홍수 가능성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조카 김씨 집 옆에는 지난해 장마 때 차오른 물에 도로 위까지 올라온 고깃배가 덩그러니 그대로 놓여 있다.
2월24일 승촌보 물막이 공사가 한창인 나주시 노안면 학산2리에서 만난 주민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40가구 정도가 사는 이 마을도 보가 생기면 수면과 지표면의 높이가 거의 비슷해져 침수 피해가 예상되는 곳이다. 진종길(72)씨는 “비가 한 200mm 확 와불면 좋겄어”라고 말했다. 보가 완성되기 전에 마을 침수 피해에 대해 확실하게 시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보고 물속에서 살라고 하니, 뒤져불라고 하는 건가. 우리는 애가 터져불제. 모가지를 이명박한테 걸어불랑게. 긍께, 서울 가믄 매스컴마다 주민 전체가 못 살겠다고 그런다고 기사 꼭 써, 잉?”
진씨는 물막이 공사는 봄비 맞은 죽순처럼 하루 자고 나면 쑥쑥 진행하면서, 마을 문제와 관련해서는 나주시청과 시의원 등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사실”이라는 대답만 들었다며 답답해했다. 영산강 전체 8개 공구 가운데 6공구에 해당하는 이 지역에만 3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내년 말이면 공사가 끝난다. 5년여 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공사처럼 속전속결이다. 한강물을 끌어올려 지천인 청계천에 거꾸로 흘려보내는 ‘근본 없는 정치’는 이곳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전국 미나리 생산량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그야말로 자연습지인 영산강 유역의 미나리꽝들은 조만간 그 위에 흙이 덮힌 채 생태공원으로 재생되고 그 옆에는 잘 닦인 ‘MB표’ 자전거도로가 들어서게 된다.
영산강 하구를 막기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장관을 이뤘다는 철새 몇 마리만이 ‘꺼이, 꺼이’ 보 물막이 공사장 위를 날아다녔다.
나주=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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