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이 말끝마다 다는 ‘법치’가 현실 세계에서 무너지고 있는 까닭은 대통령의 법치에 대한 의식이 왜곡된 탓도 있지만, 우리 사법 시스템에서 법의 지배를 비껴가는 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같은 이는 “현 정부 관료들한테는 법치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노동자, 농민, 반대 세력에만 법치를 적용함으로써 법치의 이중 기준, 즉 형평성 문제를 낳고 법치 독재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법치 독재’의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수사기관이다. 검찰과 경찰은 사소한 혐의로도 시민을 수사하고 기소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법치의 바깥에서 거닐며 법을 조롱한다. 정말 웬만해선 그들을 처벌할 수 없다.
노동자·시민·반대 세력에만 법치 강요
지난 2008년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집회·시위 문화에서 화염병이나 투석전이 등장하지 않은 ‘비폭력 직접행동’의 효시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당시 신고하지 않은 집회를 열었거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는 혐의 등으로 1374명을 입건해 이 가운데 1184명을 기소했다. 반면 평화적으로 열린 당시 집회에서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찰관 가운데 고소·고발을 당하고도 처벌받은 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2009년 말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이 경찰관을 처벌해달라고 고소·고발한 19건 모두 경찰 차원에서 각하되거나 ‘각하 혹은 기소 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을 뿐 실제로 처벌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대표적인 게 촛불의 열기가 초여름 밤을 달구던 2008년 6월1일 새벽 2시께 서울 경복궁 동십자각 근처에서 일어난 이나래씨 사건이다. 이씨는 당시 경찰과 시민의 실랑이가 한창인 가운데 갑자기 김아무개 전경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군홧발에 머리를 짓밟혔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전경버스 아래로 기어들어갔다가 버스가 움직이는 바람에 다시 나온 이씨가 전경에게 거듭 폭행당하는 장면은 인터넷방송에서 동영상으로 중계되면서 전 국민적 분노를 샀다.
이씨는 사건 직후 당시 경찰청장이던 어청수 경찰청장을 비롯해 현장 지휘관 등 7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은 관할 경찰서인 종로경찰서에 사건을 내려보냈다. 하지만 종로경찰서는 고소인인 이씨만 조사했을 뿐, 피고소인인 어 청장을 비롯한 경찰 간부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했다. 그리고 검찰은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않았다. 해당 사건의 소송 대리를 맡은 원민경 변호사는 “고소 뒤 1년6개월이 지나도록 사건이 처리되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검경이 진실 규명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나래씨는 고소를 하면서 53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도 함께 냈지만 이 또한 오랜 시일이 걸리고 있다. 같은 사건에 대해 형사소송이 진행되는 경우 그 결과를 지켜본 뒤 민사소송의 결론을 내리는 게 관행이어서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은 연동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찰은 피고인인 경찰관들의 대한 징계 여부에 대해 재판부에 답변을 하지 않는 등 재판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32단독 이순형 판사는 지난해 12월22일 열린 재판에서 경찰의 비협조를 공개적으로 타박하면서 ‘최후통첩’하기에 이르렀다. 재판부는 “(경찰이) 고의적으로 징계 서류를 공개하지 않는 건 재판 방해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이 법정 출석을 거부하면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했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도 경찰의 폭행에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다. 민변의 이준형 변호사는 2008년 6월25일 촛불집회 때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벌이던 중 전·의경의 방패에 맞아 두개골 골절로 혼절해 그 뒤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들을 고소했으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각하결정을 내렸다. 항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에게 강제로 억류당하거나 체포당한 오윤식·김종웅ㆍ권영국 변호사 등도 해당 경찰을 고소했으나 6개월∼1년6개월이 넘도록 그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다.
검찰 서랍서 잠자는 ‘군홧발 폭행’ 사건형사소송법은 고소·고발 사건의 처리 시한을 못박고 있지 않다. 그러나 대검찰청 예규는 가능한 한 석 달 안에 처리 결과를 당사자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도 그 기한을 넘기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변호사들은 경찰관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고발 사건이 1년 넘도록 처리되지 않는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경찰에 대한 처벌이 이토록 힘든 책임은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는 검찰에 돌려야 한다. 검사 출신의 금태섭 변호사는 “경찰의 과잉 진압 문제가 제기돼도 검찰에서는 공적인 목적의 공권력 집행이라는 이유로 봐주려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며 “외국에서는 뇌물뿐만 아니라 과잉진압이나 시민을 때린 사건 등도 부패 범죄로 다룬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경찰의 행태를 견제하라고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관보다 검사의 경우는 더욱 철저한 ‘법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나마 경찰의 잘못은 검사가 처벌할 수 있지만 경찰은 검사를 처벌할 수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검사가 검사를 처벌하는 일도 드물다. (상자기사 참조)
통계적으로도 직무와 관련해 검사나 경찰관을 포함한 공무원이 처벌받은 일은 드문 것으로 확인된다. 이 대검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직무 관련 공무원 범죄 고소·고발 사건 접수 및 처리 현황’을 보면, 2007년 1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2년10개월 동안 공무원을 상대로 모두 8048건이 고소 또는 고발됐는데 이 중 기소된 경우는 32건에 그쳤다. 이 가운데 재판 없이 벌금형에 처해지는 약식기소를 빼고 실제 법원의 재판을 받은 경우를 따져보면 24건(0.29%)에 불과했다. 이는 일반행정직 공무원들도 포함된 수치라, 검사나 검찰수사관, 경찰관 등이 재판에 회부된 사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검찰청은 통계상 검사나 경찰관 등을 따로 분류한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피의 사실 공표가 공공 이익 위한 것?
형법 등 처벌 법규가 검사를 피해가는 대표적 사례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 사실 공표 혐의로 고소당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과 홍만표 전 수사기획관 등에게 서울중앙지검이 1월6일 무혐의 처분한 건이 꼽힌다. 대검 중수부는 수사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피의 사실을 매일 브리핑하거나 일부 언론에 흘리는 등의 행태로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을 샀다. 동시에 검찰 개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피의 사실 공표의 당사자로 이 전 부장과 홍 전 기획관 등을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이 내놓은 결과는 역시 ‘제 식구 감싸기’였다. 서울중앙지검의 오정돈 형사1부장은 “(피의 사실 공표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들에게 혐의가 없다고 봤다. 민주당은 즉각 “검찰이 법을 작위적으로 해석하면서까지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며 항고하겠다고 밝혔다.
용산 참사 사건의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다가 직무유기, 증거은닉,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등의 혐의로 고소당한 서울중앙지검의 안상돈 부장검사와 조호경 검사 사건도 지난해 10월 각하됐다. 장기석 검사는 해당 사건을 각하하면서 “검사가 법원의 명령을 굳이 이행할 의무가 없으며, 제출하지 않은 수사기록은 나중에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불이익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피소된 검사들이 애초 내세운 주장과 동일한 논리를 폈다.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이 불러온 모순
두 사건 모두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한 검찰 조직에서 선배 검사를 상대로 제기된 고소·고발 사건을 후배 검사가 불기소 처분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검사를 처벌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는 검사밖에 없지만, 그들은 한 식구다. 제도적으로는 검사가 검사를 무혐의 처분하는 경우 상급 검찰청에 항고와 재항고를 할 수 있지만, 그래봐야 대부분 제 식구 감싸기 결론이 반복된다.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현 제도의 예외로, 법원에 공소 제기를 요청하는 재정신청 제도가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권영국 변호사는 “재정신청을 하려면 앞선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됐고 어떤 근거로 불기소 처분했는지 등 수사기록을 자세히 봐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고소·고발한 당사자는 수사기록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재정신청 때 뭘 주장해야 할지를 알 수 없다”며 “따라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검사와 경찰이 처벌의 사각지대에서 비껴나 있는 이 모순의 정점에는 비대한 검찰 권력이 버티고 있다. 한국 검찰은 수사권은 물론 기소권과 공소유지, 형 집행권까지 모두 갖고 있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경찰이 1차적 수사권을 갖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권만 갖거나, 경찰의 수사권과는 별개로 검찰이 보충적 수사권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검찰이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준사법 권력을 독점하다보니, 검찰을 견제할 세력이 마땅찮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검찰 권력 견제의 유력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다. 경찰이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게 되면 검찰과 상호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논리다. 검찰은 용산 참사나 촛불 탄압 때처럼 경찰과 정치적 이해가 일치하는 대목에서는 경찰관 처벌에 인색하고, 반대로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외치거나 검찰 권력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면 비리 경찰관 사건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이뤄지면 두 권력기관이 상시적으로 서로 견제할 공산이 크다. 김희수 변호사는 “권력은 권력으로 상호 견제하는 게 기본적으로 맞다”며 “충분히 시도해볼만 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권의 손발 노릇을 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찰에 수사권을 줄 경우 수사권의 파이만 키워주고 시민에게는 되레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이 권력을 가져가도 될 만큼의 신뢰를 시민에게서 얻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스스로의 권능으로 ‘법의 심판’ 비껴나가이와 함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거나 특검제를 상설화하는 방안도 유력한 견제 방안으로 꼽힌다. 현재 대검찰청과 경찰청이라는 중앙 기구를 중심에 두고 일사불란한 체계를 갖춘 검찰과 경찰 조직을 지역별 조직으로 나누거나, 해당 지역의 수장을 주민 직선으로 뽑는 방안 등도 제시되고 있다.
검찰은 정치적 결정이라는 수많은 비판에도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를 비롯해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삼성 X파일 사건의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을 기어코 사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하지만 법원에 의해 모두 줄줄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경찰도 신고하지 않은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수한 시민을 사법기관 앞으로 보냈으나, 상당수가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면서, 검경 자신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아보라는 바깥의 요구는 모두 스스로의 권능을 이용해 잘라버린다. 오로지 국가의,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법치가, 힘의 균형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의 목을 조르고 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저울은 계속 기울고, 칼은 녹슨 지 오래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경찰은 왜 검사를 수사하지 못할까
<font size="3"><font color="#006699">시도는 있었지만 검찰이 영장 기각해 무산</font></font>
검사가 다른 검사를 제대로 수사해 처벌하지 않는다면, 경찰이 검찰을 수사해서 처벌하면 되지 않을까?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전례도 없고 제도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거나 종결할 때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경찰이 검사의 지휘 없이 수사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종결은 어림없다.
2003년 경찰이 ‘거사’를 도모한 적이 있다. 검사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였다.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는 법조 브로커 박아무개씨 사건을 수사하던 중 박씨가 서울 서부지검 검사 몇 명과 친하게 지냈으며 용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박씨와 일부 검사가 서로 전화 통화한 기록까지 찾아낸 경찰은 박씨와 그의 가족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서부지검에 신청했다. 경찰은 영장신청 이유에서 “박씨 계좌에서 해당 검사들의 계좌로 돈이 흘러들어갔을 정황이 있다”며 영장 발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 경찰이 검사를 타깃으로 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한 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역시나 영장은 법원에 가기도 전에 검찰 선에서 두 차례나 기각됐다. 이후 이 사건이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자 대검 감찰과가 해당 검사들을 징계 처분했다. 그러나 형사처벌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찰이 검사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이다. 한 현직 경찰(총경급)은 그 구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경찰이 검사를 소환하더라도 오지 않을 게 뻔하고, 그럼 체포영장을 신청해야 하는데,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검사의 주거지든 계좌든 압수수색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도 검사가 검찰청으로 송치하라고 하면 경찰은 따라야 한다. 구조상 경찰은 검찰을 처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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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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