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새 해는 용산 4구역에도 떴다. 여섯이 불에 타 사라진 죽음의 구역. 볕은 떠난 자리, 좇겨난 자리, 파인 자리 구석구석 비집고 들어왔다. 경찰이 있던 자리, 용역의 사무실이 들어선 건물도 가리지 않았다.
비명조차 화염에 타버린 그 자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0년 정월 초하루 아침, 남일당 건물을 둘러보러 온 유가족 전재숙씨와 김영덕씨의 얼굴에도 볕은 내려앉았다. 3층 치과가 있던 곳에 널부러진 잇몸 사진 판넬에도 볕은 닿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카롭고 검게 으깨진 유리조각들만 볕 대신 밟힌다. 째쨍째쟁 소리가 난다.
‘극적타결’이라고 언론이 호들갑을 부린 날부터 기온은 무장 떨어만졌다. 그래서일까. 1년전 기억이 선명하다. 두 여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먼저 남일당 참사 현장을 둘러보던 문규현 신부를 우연히 만나고서다. 김영덕씨가 먼저 와락 안긴다. 그 틈으로도 볕은 끼어들고자 했다.
그렇다, 용산참사가 마침내 ‘타결’되었다. 두 여인은 알고 있다. 이제 정말로 잊혀지는 일만 남았다. 이곳엔 4구역을 내려다보는 길 건너 ‘스타시티’처럼 호화로운 건물이 높게 들어설 것이다. 그 외벽에도 볕은 무심히 내리쬘 것이다.
남일당 깨진 창문 통해 쏟아지던 햇볕‘타결’ 소식이 전해진 이틀 전, 서울 용산 남일당의 저녁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분향소 옆 숙소에 네 개의 상이 펼쳐졌다. 하나둘 상에 다가앉으며 그릇이 올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공기와 구운 김, 무말랭이, 김치, 젓갈이 담긴 접시 그리고 오징어뭇국을 담은 대접까지 옹기종기 모였다. 유가족도 신부님도 활동가들도 상을 포위하고 수저를 번갈아 들었다. 이날 눈물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점심 식사 때는 힘없이 들리던 전재숙씨의 숟가락이 이번엔 바쁘다. 눈물이 잠깐 말랐기 때문일까. 그의 남편 이상림씨는 345일 전 이 건물 옥상 4층 망루에서 불에 타 숨졌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져간 그 지붕을 이고서라도 산 자들은 계속 살아야 하기에 밥알을 씹는다.
이들은 이제 조만간 이곳을 떠나야 한다. 1월25일 전까지 건물을 비워주기로 재개발조합, 서울시와 약속했다. 1평당 감정평가액이 1억2천만원이나 나가는 남일당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추위가 엄습한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온도에 온 세상이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다. 찬바람에 찢어질 듯 귀가 아프다. 아니다. 귀가 아픈 건 말들의 절규 때문인지도 모른다. 건물 벽은 물론 공사용 가림막, 펼침막, 여기저기 붙은 벽보, 심지어 거리 배전함에까지 온통 글들이 쓰여 있다. 해결하고 규명하고 사죄하고 반성하라는 내용이다. 이른바 ‘타결’이 됐으므로 절규의 글들은 이제 지워질 것이다. 건물은 무너지고 벽보는 떼어내지고 펼침막은 철거될 것이다.
해를 어둠 속에 가장 오랫동안 가둬놓던 동지가 지났다. 밤보다 낮이 길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어둠의 시간이 더 길다. 오후 6시인데 해는 벌써 떨어졌다. 남일당 뒷건물 레아호프 쪽으로 택배 차가 달려온다. 레아호프는 용산 참사에 공감하는 작가와 미디어 활동가 등의 근거지였다.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눈길에 미끄러진다. 이곳 지리에 밝은 이들에게 이 길은 지름길이다. 이렇게 죽은 자들의 고향은 산 자들의 지름길이 됐다.
잠시 뒤 남일당 옆에서 미사가 열렸다. 신부들 앞에 다섯 영정이 놓였고 그 옆에는 아기 예수 모형이 놓였다. 홑옷만 걸친 채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가 추워 보인다. 뉴스가 전해진 탓인지 평소보다 많은 3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2009년 12월30일 용산철거민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용산범대위)와 서울시, 용산 4구역 재개발조합은 합의안을 내놨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용산 참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유감의 뜻을 표명하기로 하는 한편, 유가족과 용산 4구역 철거민에게 주는 위로금과 피해보상금, 장례비용 등을 조합이 부담키로 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어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며 다시 한번 유족 여러분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용산 참사가 우리 시대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불행한 일이라면서도 “(참사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유족들은 용산 참사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이날 전해진 소식도 ‘타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사 말미 마이크를 잡은 전재숙씨는 “이 나라에 물을 게 너무나 많다”며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도 “남편들은 이제 편안한 곳으로 가지만, 아직 명예회복도 못 시켰다”며 흐느꼈다. 그 흐느낌 사이로 “저희는 끝까지 투쟁할 테니 응원해주십시오”라는 결의의 언어도 새어나왔다. 강론을 맡은 천주교 인천교구의 장동훈 신부는 “용산의 싸움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용산의 문제를 고민해온 이들에게 ‘타결’은 무슨 의미일까?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이날 낮 12시 남일당 옆에서 열린 기자회견 때 인사말에서 말한 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일 뿐이다. 오는 1월9일 경기 마석의 모란공원 묘역에 5명의 철거민이 묻힌 뒤에도 유족과 시민사회의 진실 찾기는 계속될 것이다. 2009년 1월20일 남일당 망루에 불을 낸 게 누구인지, 철거민 5명은 어떻게 숨진 것인지, 유증기가 가득한 망루를 강제 진압한 경찰특공대의 진압 과정은 무리한 게 아니었는지, 검찰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수사 기록 3천 쪽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등 유족들은 아직 알고 싶은 게 많다.
그 탓일까. 이날 밤도 전재숙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09년 12월31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눈을 감았다가 다시 깨어나 휴대전화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다시 눈을 감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일어난 게 아침 6시30분이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빈집을 살림집 삼아온 그는 오전 10시가 지나서야 남일당 숙소에 나타났다.
전씨는 이번 합의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전날 정 총리의 성명 내용을 전해듣는 순간에는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참사가 일어난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도 벗어야죠”라고 말했다. 그의 아들 이충연씨는 참사가 일어나던 때 아버지 이상림씨와 함께 망루를 지켰다. 불타오르는 망루 4층에서 떨어진 덕에 그는 무릎이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었지만 목숨은 건졌다. 검찰은 이충연씨가 국가의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경찰관과 자신의 아버지 등을 숨지게 한 혐의가 있다고 기소했고, 1심 법원은 그의 유죄를 인정하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사고 당시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린 그는 졸지에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의 굴레까지 쓰게 된 셈이다.
“사과 문안 논의 중 타결 소식… 정부가 뒤통수”이번 합의 덕에 이충연씨와 함께 기소된 8명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항소심에서 감형의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하지만 합의가 유죄 선고를 무죄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전씨도 잘 알고 있다.
밥 먹을 시간은 째깍째깍 돌아왔다. 이날 점심 메뉴는 감자가 들어간 수제비였다. 전씨는 다시 씩씩하게 숟가락질을 했다. 참사로 남편 양회성씨를 잃은 김영덕씨는 밥을 달라고 했다.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들어오더니 조용히 앉아 함께 상을 마주했다.
식사를 마친 김씨는 “신부님들이 갈 데가 없어서 천막에서 고생하신 게 아니지 않느냐”며 “그분들 보내드리려고 (합의)한 거죠”라고 말했다. 유족들이 그토록 만족스럽지 못한 합의를 받아들인 까닭이다. 참사가 일어나고 11개월 넘게 지나는 동안 농성하고 거리 투쟁을 하느라고 자신들도 지칠 대로 지쳤지만, 끊임없이 함께해준 천주교 신부들과 활동가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정부가 유족들의 뒤통수를 쳤다는 의견도 있다. 2009년 12월29일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유족들은 저녁 9시께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 의장과 박래군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등이 경찰을 피해 머물고 있는 명동성당으로 갔다. 정부 쪽에서 제안한 총리의 사과 문구와 관련해 참사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쪽으로 수정안을 만들어 제시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을 듣기도 전에 ‘협상 타결’ 소식이 알려지고 정 총리는 애초 정부 쪽 안 그대로 발표를 했다. 한 유족은 “이쪽이 (정부에) 좀 당했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제 헤어져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그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유족들은 입을 모아 “그동안 용산을 지켜준 이들과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당장 돌아갈 집도 없다. 레아호프 3층이 집이었던 전재숙씨는 “갈 집이 없는 게 걱정이 아니라 사제단 신부님들과 어떻게 등 돌리고 갈까가 걱정”이다. 서울 순화동 철거민 투쟁을 벌이던 유영숙씨는 그 동네 빈집에 들어가 살 작정이라고 했다. 그의 집은 헐린 지 오래다. 그의 남편 윤씨는 순화동에서 철거에 맞서 투쟁하다 전철련과 인연을 맺고 연대 투쟁의 일환으로 남일당 망루에 올랐다 변을 당했다. 비슷한 상황의 고 한대성씨 부인 신숙자씨도 고2 아들 혼자 지내고 있는 경기 수원의 2천만원짜리 전셋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여기도 재개발이 결정돼 내년에 비워줘야 한다. 신씨는 “없는 사람은 이리 가도 걸리고 저리 가도 걸린다”고 말했다.
보상 제외된 20여 명 세입자 ‘또 다른 ‘불씨’용산 참사 해결을 위해 열 달 동안 남일당에서 함께 숙식한 문정현 신부는 “초긴장 상태로 1년여 지내다 이제 삶터로 돌아가야 하는데 정신적 공황이 없을 수 있겠느냐”며 “다들 어떻게 살아나갈지 상상이 안간다. 정신 치료라도 집단적으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산범대위 사람들도 작가들도 미디어활동가들도 용산을 떠나야 한다. 그들에게는 그동안 철거민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따끈한 연대의 추억과 함께 고립돼가고 있다는 괴로움의 기억이 공존한다. 미디어활동가 허경씨는 “정부 쪽에서 반응이 없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도록 용역이나 경찰과 마찰을 계속 빚는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가 미약하구나’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철거민·세입자분들과 이런저런 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게 참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지난 1년이 좋았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그동안 카메라에 담은 용산에서의 투쟁과 유족의 모습들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계획도 잡아놓았다.
타결 아닌 타결 이후 지난해 1월20일과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까? 불행의 씨앗은 용산 4구역 안에서도 여전히 발견된다. 이번 합의는 세입자 가운데 전철련 소속 23명에게만 적용된다. 26명가량으로 파악되는 예전 민주노동당 세입자분회 소속 세입자들은 피해보상금이나 상가 분양권, 공사장 함바집 운영권 등과 무관하다. 2009년 12월31일 낮에 만난 한 세입자는 “전철련 쪽 문제가 해결됐으니까, 우린 이제 조합 쪽과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그는 민주노동당 세입자분회가 조합 쪽에 임시 상가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조합이 콧방귀도 안 뀐다”고 했다.
애초 영업손실금이 2천만원도 안 나왔다는 그는 그 돈 갖고 어디 가서 무슨 장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도 망루 쌓고 올라가야지”라고 말했다.
‘타결’ 소식은 엉뚱하게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 이슈를 덮었다. 그리고 ‘타결’ 소식과 함께 용산 참사도 다른 소식에 점차 묻혀갈 것이다. 조만간 굴착기가 다시 4구역에서 굉음을 내면서 남일당도 레아호프도 그 형체가 사라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죽은 자의 고향은 그렇게 해서 가진 자들의 낙원으로 바뀌어갈 테다.
재현 막으려면 책임 있는 일상이 필수2009년 12월30일 미사에서 장동훈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매 맞고 업신여김 당하고 협박에 내몰리고 망루에서 타죽은 우리 예수를 우리는 오늘 다시 내 품에 안아 올립니다. 아직은 아기, 아직은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완전한 무방비의 연약한 예수. 이 예수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 있는 일상이고 끊임없이 용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입니다.” 용산을 기억하지 않고 ‘책임 있는 일상’을 살지 않는다면, 참사는 언제든 재현될 게 틀림없다. 재개발의 광풍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2009년 마지막날 밤 9시30분부터 12시까지 레아호프 앞에선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행사 제목은 ‘용산! 2009년 12월32일’이었다. 아직 이들에게 새해는 멀다. 물론 볕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한밤, 기온은 2009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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