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ㆍ10 항쟁 22주년 범국민대회 현장에서 경찰이 참가자 채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런 식으로 정보를 모으면서도 막상 당사자가 자신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공개 청구를 하면 잘 공개하지 않는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인 강아무개(34)씨는 지난 8월 경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경찰이 운영하는 수사자료표와 범죄정보관리시스템(심스·CIMS) 등에 들어 있는 자신과 관련한 정보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수사자료표는 경찰이 피의자에게서 채취한 지문을 비롯해 인적사항과 죄명, 처분 결과 등을 기록한 서식이고, 심스는 이 수사자료표를 비롯해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만드는 모든 종류의 서식을 담아놓은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경찰청은 이 두 가지에 대해 강씨의 요구대로 정보를 공개했다.
강씨는 이어 최근 3년 동안 자신의 수사자료표에 누가 접속해 정보를 들여다봤는지 추가로 정보공개하라고 청구했으나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 “진행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처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을 근거로 댔다.
하지만 강씨는 공공기관이 가진 개인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언제 그 정보를 들여다봤는지를 공개하는 게 어떻게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강씨는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관련한 시위 때 일반교통을 방해한 혐의와 이랜드 사태 때 회사 쪽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 두 건으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일반교통 방해죄는 강씨의 신청으로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상태다. 강씨는 경찰이 해당 조항을 자의적으로 들이대 정당한 정보 접근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기관은 국민에 대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갖고 있지만 그 행정기관이 가진 개인정보에 누가 어떤 식으로 접근해 들여다봤는지를 당사자가 알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공개하지 않기 일쑤다. 국민이 정보 주체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2009년 12월22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개인정보 수집·유통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와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인권위의 용역 의뢰를 받아 이뤄졌다. 보고서는 “수사자료표에 대한 조회 오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와 불법성이 인정돼온 만큼 관련 법령 및 규칙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자료표의 현 상태뿐 아니라 수사자료표의 조회 및 타기관 제공 현황에 대해서도 함께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들이 그 정보를 제3자에게 과다하게 건네주는 관행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박은수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단은 2008년부터 2009년 8월까지 20개월 동안 733회에 걸쳐 1억2013만여 건에 이르는 개인정보를 다른 기관에 제공했다. 이를 제공받은 기관만도 209개에 달했는데 경찰서·검찰청·법원·국가정보원·지방자치단체 등 국가기관은 물론 상호저축은행·성형외과의원·대학교 등도 포함됐다. 대부분 수사 혹은 재판이나 과태료 체납자 관리 등 해당 기관의 업무를 목적으로 정보 제공을 요청한 경우였고, 학술 및 의료 연구 등의 이유로 관련 정보를 받아간 경우도 있었다.
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 가입자 자격 심사를 위해 공단이 국민의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 보험료 납부사항, 재산, 자동차 소유 여부 등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보니 수사기관 등이 공단을 손쉽게 이용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경기 파주시가 체납자 재산 압류를 위해 해당자의 개인정보 제공을 요청했다가 공단 쪽이 거부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행정기관들은 개인정보를 다른 기관에 넘긴 사실을 본인에게 통보해주지 않는다. 법적으로 근거가 있는 행정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이 자신의 정보가 수시로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 건네지는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점은 문제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보고서는 “개인정보 요청이 공익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애초 수집 목적 이외에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제공된다면, ‘수집 목적 내 이용’이라는 개인정보 보호 원칙은 거의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또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으며, 불가피하게 개인정보가 제공될 경우에도 당사자의 동의를 받거나 혹은 통지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방대한 개인정보를 가진 각종 통신 사업자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상반기에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업체들은 국정원과 각종 수사기관에 통신감청(799건), 인터넷 로그기록 등 통신사실확인자료(12만여건), 가입자 인적사항(28만여건) 등 모두 41만여건의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들 포털에 본인의 정보가 수사기관 등에 제공됐는지 확인을 요청한 건수는 7건에 불과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수사기관이 30일 이내에 본인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을 뿐, 포털 쪽에는 개인정보 제공 사실 자체를 공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자신의 개인정보 제공 내역을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법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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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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