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노동사에서 ‘쟁의 있는 곳에 업무방해 있다’는 등식은 여전히 아찔한 진실이다. 사실상 노조의 업무를 방해하기 위해 태어난 ‘업무방해죄’는 국가보안법·집시법과 함께 우리 사회의 3대 악법으로 지목되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에서도 어김없이 업무방해죄가 등장했다. 코레일은 노조가 철도 운행에 차질을 초래하는 등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며 조합원 188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노조 집행부 15명에 대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다른 법조항 적용 애매한 상황에 활용돼이와 관련해 적법한 쟁의활동을 탄압할 때 회사나 수사기관이 주 무기로 들이대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철폐하거나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일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업무방해죄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위력을 이용해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때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나, 위계와 위력 등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 별도로 처벌하는 법률 조항이 존재하는 만큼 해당 조항 자체가 불필요하다”며 “그럼에도 노조의 쟁의활동이나 소비자 불매운동 등 다른 법조항을 적용하기 애매한 행위를 탄압하는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무방해죄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재개발 관련 세입자대책위의 집회 등에도 적용돼왔다.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하며 사장실 점거농성을 벌인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등이 지난 9월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도 업무방해 혐의에서 유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업무방해죄가 노동운동 탄압의 주요 도구로 활용된 지는 오래됐다. 민주노총이 펴낸 를 보면 구속 노동자 명단이 나온다. 그 첫 인물은 방용석 전 노동부 장관이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으로 불렸던 원풍모방 노조지부장을 지낸 방 전 장관에게 1972년 9월15일 적용된 구속 사유는 ‘업무방해’였다.
사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운동가들의 구속·해고 사유 중에 업무방해죄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형법 314조(업무방해)가 노동운동과 파업을 와해시키는 수단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건 1989년 이후부터다. 김기덕 변호사(법무법인 새날)는 “1980년대 말 검사들이 노동현장의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면서 유행처럼 번졌다”고 말했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펴낸 에 따르면, 1988년 3월~1991년 7월 사이 구속 사유가 확인된 노동자 1400여 명 가운데 업무방해죄가 적용된 경우가 785명에 이른다.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은 357건이었다. 업무방해죄는 1988년 17건에 불과했지만 89년 248건, 90년 308건으로 대폭 늘었다.
영국·프랑스·독일은 업무방해죄 적용 안 한 지 오래우리나라 형법에 업무방해죄가 들어온 배경을 보면 업무방해죄가 태생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펴낸 (장영민·박강우)에 따르면, 일본 구형법의 ‘상업 및 농공업을 방해한 죄’는 “농공의 고용인이 그 임금을 증액시키거나 또는 농공업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사용자 및 다른 고용인에 대하여 위계·위력으로써 방해한 경우를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현행 일본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전신에 해당하는 규정이다. 우리 형법은 일본 형법의 업무방해죄 규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법학계의 정설이다. (1997)에 실린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불가론 및 업무방해죄의 위헌성’(김순태) 논문을 보면, 사실 업무방해죄가 파업을 다스리기 위해 도입됐지만 그 본질을 흐리기 위해 노동운동이 아닌 다른 경우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업무방해’라는, 다양한 내용을 지칭하는 용어가 사용됐다고 한다. 물론, 이처럼 본래의 의도를 감추려다 보니 그 처벌 범위가 지나칠 정도로 광범위해지기도 했다.
합법 파업에는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지만, 흔히 파업의 목적 등을 꼬투리잡아 불법 파업으로 규정한 뒤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게 요즘의 양상이다. 특히 폭력 행위 등이 수반되지 않는 단순한 노무 제공 거부 행위도 업무방해에 해당될 수 있느냐가 쟁점이다.
이번 철도 파업에서도 코레일과 경찰 쪽은 “철도 운행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에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강문대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노동조합법에 폭력을 수반한 쟁의행위 등에 대한 벌칙 조항을 따로 두고 있음에도 파업에 관행적으로 형법상 업무방해까지 함께 적용하고 있다. 출근하지 않고 노무 제공을 거부한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그런 행위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민사 책임을 넘어 형법을 동원해 적용하는 건 업무방해죄 남용”이라며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 파업을 업무방해로 다스리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사용자들은 노조가 쟁의행위에 돌입하면 교섭보다는 조합원들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는 일에 몰두하기 일쑤다. 이렇게 과도하게 업무방해죄에 의존하는 이유는 뭘까?
노동조합법은 “쟁의행위 기간 중에는 현행범 이외에는 노조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업무방해를 적용하면 이를 피할 수 있다. 업무방해죄는 형량(5년 이하 징역)이 노조법 위반(3년 이하 징역)보다 더 높아 조합원을 구속시키기도 쉽다. 이러다 보니 파업이 시작되면 노조 간부들이 ‘구속결단식’을 치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기덕 변호사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경우 처음에는 쟁의행위를 범죄로 보고 형사처벌했으나 1870년대 이후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면책이 정착되고 쟁의행위를 범죄가 아니라 권리로 승인하는 과정을 보였다”며 “오늘날 근로 제공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파업에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사례는 한국뿐이다”라고 말했다.
ILO도 한국 업무방해죄 개정 권고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2007)에 따르면, 2002∼2006년간 노동자의 쟁의행위와 관련된 1심 노동형사사건에서 적용된 죄의 개수(한 사람에게 여러 죄목이 적용됐을 경우 각각의 죄목을 따로 계산해 합한 것)는 총 7624건인데, 이 중 업무방해죄가 2304건(30.2%)에 달했다. 반면 노조법 위반은 241건에 불과했다. 특히 노동형사사건 중 점거와 피케팅 등을 제외한 평화적인 파업·태업·준법투쟁이 57.9%에 달했는데, 이런 쟁의행위에 적용된 업무방해죄의 1.1%만이 무죄로 선고됐다. 이는 곧 위력을 동반하지 않는 단순한 노무 제공 거부 행위가 대부분 업무방해죄로 다스려지고 있음을 말한다.
업무방해죄는 수사기관이 인지를 하거나 고소·고발이 들어오는 경우 실제 기소까지 이어지는 비율도 다른 형법상 범죄에 비해 높은 편이다. 대검찰청이 펴낸 ‘2009 검찰연감’을 보면, 2008년에 업무방해 혐의로 접수된 건은 모두 2만5799건인데 이 가운데 기소된 비율은 48.7%(1만2576건)에 이르렀다. 이는 같은 해 특수강도(36.2%), 강도(27.5%), 강도상해(43.3%), 절도(39.9%), 업무상 횡령·배임(24.8%) 등 업무방해보다 죄질이 좋지 않다고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범죄의 기소율보다 훨씬 높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업무방해죄는 피케팅부터 시작해 파업에 이르기까지 주로 노사관계에서의 쟁의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졌고 이를 실제로 적용하기 때문에 기소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7년 결사의 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부터 매년 “(한국 정부가) 어떤 폭력도 내포하지 않은 수많은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방해를 이유로 조합원들을 체포·구속하고 있고, 업무방해죄가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체계적으로 봉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파업 때마다 불법 논란에 밀려 이슈화 실패도재형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파업은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의 행사이기 때문에 쟁의행위 자체는 업무방해죄와 무관하다. 또 근로자가 계약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지 여부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사법상 권리·의무 관계의 문제일 뿐이고, 근로계약에 위반해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뿐”이라며 “따라서 노동법적 정당성을 갖추었느냐와 상관없이 집단적 근로 제공 거부는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양대 노총은 노동기본권 차원에서 형법상 업무방해죄 적용 문제를 의제로 설정해왔다. 그러나 형법 적용의 문제라서 노사관계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못한데다,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불법이냐 합법이냐는 논란에 갇혀 업무방해죄 문제가 논쟁의 전면에 부각되지 못했다.
도재형 교수는 “현행 형법의 업무방해죄는 사회적 약자들의 직접행동을 무력화하고, 소비자의 불매운동이나 항의 서명과 같은 합법적 소비자운동에도 적용되는 극단적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제라도 폭행이나 협박, 파괴행위를 수반한 쟁의행위만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노조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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