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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의 복고풍 패션

검찰 배지 제작·사용 놓고 내부에서도 ‘갸우뚱’… “배지 단다고 국민이 신뢰할까” 지적도
등록 2009-12-10 15:54 수정 2020-05-03 04:25

어느날 갑자기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다며 당신의 사무실에 들이닥쳤을 때, 또는 당신을 체포하겠다며 체포영장을 꺼냈을 때, 앞으로 당신은 상대의 가슴을 유심히 쳐다볼 필요가 있다. 바로 거기에, 금메달처럼 황금빛을 내는 검찰 배지(휘장)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서슬 퍼런 검찰을 제대로 응시할 여유나 담력을 가진 이는 드물겠지만.

‘현대판 마패’라는 평이 나오는 검찰 배지. 연합

‘현대판 마패’라는 평이 나오는 검찰 배지. 연합

‘검찰의 변모’ 상징한다는데

검찰이 설립 61년 만에 처음으로 조직을 상징하는 배지를 만들었다. ‘검찰의 변모’를 내세우며 지난 8월20일 취임한 김준규 검찰총장의 아이디어다. 몇 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11월30일 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김 총장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배지 수여식을 열고, 검사와 수사관 60여 명에게 배지를 직접 달아줬다. 가죽 홀더에 박힌 원형 금속 위로 방패 모양의 검찰 마크가 선명했다.

지금이 ‘○○고등학교’나 ‘××은행’의 배지를 자랑스레 달고 다니던 시대는 아니다. 있던 배지도 용도폐기하는 조직이 많다. 유독 검찰만 왜 없던 배지를 만들었을까? 검찰의 설명은 이렇다.

“국민이 검찰 업무 수행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 법집행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또 검찰공무원에게 최고 법집행기관으로서 사명감을 줘서 여기에 맞는 공직자의 자세를 갖추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공무 수행시를 제외하곤 착용할 수 없도록 제한했기 때문에 공사 구분도 될 것이다.”

검찰 내부의 반응은 어떨까?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체적으론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취지는 알겠는데, 꼭 저런 게 필요하냐’는 것이다.

실제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상징성은 있을지 모르나 실효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관리에 필요한 돈과 인력만 늘었다. 검찰은 배지를 체포나 압수수색 등 수사와 형집행 분야 등을 담당하는 이들에게만 나눠줬는데, 규모는 4500명 정도다. 배지 제작에 개당 1만원 정도가 들었다. 그러나 배지를 보여준다고 신분이 확인되는 건 아니다. 민간인을 상대하려면 여전히 지금처럼 신분증을 제시하고, 필요한 영장도 당연히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검찰은 ‘배지 도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 도용을 우려해 관리를 엄격하게 하다 보니 전에 없던 가욋일도 생겼다.

검찰은 배지를 위·변조해 사칭하는 걸 막기 위해 상표법상 업무표장 등록을 했다. 또 4500개 배지에 모두 관리번호를 따로 부여하고, 각 번호마다 비밀번호를 설정해 전산으로 관리한다. 민원인이 관리번호와 소지자의 인적사항이 일치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도록 ‘(국번 없이)1301’이나 각급 검찰청 신고전화를 운영하기로 했다. 직원이 수사 분야에서 다른 보직으로 전보가 나면 이를 반납하고 소유주 기록도 바꿔줘야 한다.

검찰은 또 이번에 배지를 만들면서 검찰의 영문 표기를 종전의 ‘Prosecutors’ Office’에서 ‘Prosecution Service’로 바꿨다.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좋은 의미가 추가됐지만, 이에 맞춰 검찰 마크와 상징물을 교체해야 하고 영문 표기도 모두 바꿔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배지가 국민의 신뢰도를 얼마나 높일지 지켜봐야겠지만 그 대가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참고로 김준규 총장은 상징적인 일련번호 ‘000001’을 받았다.

내실보다 형식에 집착하는 방증 아닌지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총장님의 뜻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바깥에 나갈 일이 많지 않아 얼마나 착용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부담이 생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역 검찰청 소속의 또 다른 검사는 “술집 가서 꺼내들고 폼 잡긴 좋겠다. 하지만 사고 부담도 있고, 실제 이걸 보며 국민이 얼마나 신뢰감을 느낄지 잘 모르겠다”면서 “검찰이 배지가 없어서 수사를 못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이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로 한때 위기에 처했던 검찰이 다시 내실보다 형식에 집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석진환 기자 한겨레 법조팀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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