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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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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라질네이션! 21차 남녀전쟁

21세기에 돌아온 남녀유별 시대 풍경…
여 “왜 루저남, 똥개남은 없나요?”, 남 “초콜릿 복근은 괜찮고, 꿀벅지는 안 되냐!”
등록 2009-12-02 17:52 수정 2020-05-03 04:25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성역할 바꾸기 놀이도 해요. 남편은 김장을 해보고, 아내는 병영 체험을 하기도 했어요. <우리 결혼했어요> 가상커플 박재정·유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성역할 바꾸기 놀이도 해요. 남편은 김장을 해보고, 아내는 병영 체험을 하기도 했어요. <우리 결혼했어요> 가상커플 박재정·유이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사소한 것 하나부터 남녀는 너무 달라요. 남자는 화성, 여자는 금성에서 온 게 분명해요. TV가 무모하게 남녀 해부를 시작했어요. tvN ‘남녀탐구생활’, 한국방송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 따위 프로그램이 남녀를 아는 체하고 나서요. 뭐라고 하든 구라임이 분명해요. 우리가 모르는 남녀에 관한 이야기가 따로 있을 리 없어요. ‘장동건·고소영 열애설’만큼 화끈할 리도 없잖아요. 그런데 시청자의 반응이 이상해요. ‘울트라 초절정 어메이징’ 웃음폭탄이 터졌나 봐요. 사이버 월드에서도 패러디 문화가 생기고 난리예요. 남녀 모두 자기 얘기 같다며 허파에 바람 든 것처럼 웃어요. 어째 기분이 이상해요. 웃긴데 씀바귀 씹은 것처럼 씁쓸해요. 이런 우라질 시추에이션!

남녀의 차이를 알수록 서로가 더 멀어지는 기분이에요. 전통적인 남녀관계가 변했다는 건 알겠는데 왜 변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저 너도나도 속물이래요. 남자 속물의 이름은 ‘진상’, 여자 속물의 이름은 ‘된장녀’인가 봐요. 진상과 된장녀가 TV 속에서 싸워요. 전쟁이에요. 전쟁 선포는 ‘찌질남’들이 했어요. 여권신장이 이뤄진 듯 남성 인권도 보장하래요. ‘루저녀’ 논란도 터졌어요. 남자의 키와 여자의 가슴 사이즈가 자존심이 됐어요. 대장의 융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에요. ‘동물의 왕국’처럼 남녀가 으르렁대는 야만의 시대가 왔나 봐요. TV를 보면 ‘인간 동물원’을 보는 기분이에요. 화성과 금성에서 온 남녀가 함께 사는 이곳, 지구에 평화는 올까요.

누가 더 속물? 남녀 서로 지지 않아요

양성평등 사회로 가다가 경제위기 맞아서 남녀관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요. 요즘엔 오히려 전통적인 남녀구분 심해지는 퇴행도 보여요. 남자는 여전히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답고 싶어해요. 20대에 한정되지 않고 남녀의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늘었어요. 남녀관계 변화 속도가 휴대전화 업그레이드보다 빨라요. 여자들, 인형처럼 옛날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잘못하면 오작동, 옵션도 많아졌어요. 아는 만큼 더 몰라서 탐구해야 하는 시대예요. ‘남녀탐구생활’을 보면 알아요. 남녀는 뇌구조가 같아도 뇌기능이 다른 게 분명해요. 가전제품이 고장났을 때, 소개팅을 할 때, 라면을 끓일 때 하나같이 다르게 해결해요. ‘단무지’(단순·무식·지랄) 같은 남자는 뭐든지 대충이에요. 여자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모든 일을 단계를 밟아나가요. 책상 따위는 꾸미지 않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꾸미는 데 모두 32단계가 걸려요.

누가 더 속물이냐 따지면 남녀 서로 지지 않아요. 10대부터 60대까지 남자의 이상형은 같아요. “예쁜 여자”예요. 여자는 명문대생 오빠, 돈 많고 차 있는 남자를 찾아요. 한국 사회에선 젊고 잘생긴 돈 많은 미혼 남자가 최상위 계급이에요. 다음이 조건 좋은 예쁜 여자예요. 연애에도 계급이 있어요. 하지만 교환조건이 맞지 않아요. 데이트 비용이 없어 장롱에서 엄마의 돈을 불법으로 융통하는 경제력 없는 남자가 미인의 호감을 살 리 없어요. 커피숍에서 포인트는 적립해도 명품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저축 개념 없는 된장녀가 ‘취집’(취직처럼 하는 결혼)에 목숨을 걸어요. 그러니 절치부심 주야장천 꾸미고 가꿔야 해요. 그런데 돈은 없으니 발버둥치는 된장녀, 능력은 없으니 측은한 진상남, 어디서 본 것 같아요.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한 옆집·앞집·뒷집! 언니·오빠·동생이에요. 거울 속의 나도 겸연쩍어요.

직장생활 편을 보면 낄낄대다가 의문이 들어요. 남자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짱개’ 면발을 참으면서 부장과 두 번 점심을 먹어요. 인사고과가 멀지 않았어요. 32단계로 공들여 꾸민 책상을 여자는 3개월이면 비워줘야 할지 몰라요. 비정규직 여성이에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성적 불평등까지 낳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요. 그러나 남녀 모두의 ‘공공의 적’은 일 얘기로 밥맛 떨어뜨리기 신공을 구사하는 우라질 부장이에요. 부장 아저씨, 여자 직원 몰라요. 여자 직원도 남자 상사 몰라요. 그런데 사무실로 여성이 떼로 들어와요. 예전과 다른 시추에이션이에요. 승진하는 롤러코스터 타고, 점심시간에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직장남녀 탐구생활 개정판 열공이 필요해요. 추억의 드라마 에서 소지섭 오빠가 열심히 읽었던 그람시의 책에도 나왔잖아요. 과거의 것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그 때가 위기다. 지금이 그 때에요. 이쯤해서 어렵지만 새겨볼 만한 말이 더 있어요. 보편타당한 사회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한 불만이 사적 감정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시대가 되고 있대요. 간단히 말해 개별적 사안에 대한 개별적 ‘열폭’(열등감 폭발)이래요.

TV 속 일이라고 낄낄대기엔 심상치 않아요

‘남보원’을 보니 알겠어요. 소심하고 찌질한 남자들이 “여자들이 밥을 사는 그날까지” 투쟁을 다짐해요.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은 니가 사라” “니 생일엔 명품 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 “커피는 내가 샀다, 진동 오면 니가 가라”며 목 터지게 외쳐요. 데이트할 때 성적 차별을 받고 있대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투쟁이라니, 미친 게 분명해요. 개념을 쌈 싸먹지 않았다면 저렇게 당돌한 요구를 할 리 만무해요. 하지만 너그럽게 이해해봐요. 여자가 오빠에게 명품 가방을 사달라고 하는 이유는 평균임금이 낮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남친도 백수라는 거예요. 운 좋으면 비정규직이에요. 그러니 5천원짜리 커피값 때문에 붉은 머리띠를 하는 상황이 왔나 봐요. 경제적 기반은 사라졌는데 남자 역할은 계속 요구받으니 스트레스가 쌓였나요? ‘차르릉’, 요술봉으로 달래줘요. ‘남보원’의 찌질남은 곧 ‘남녀탐구생활’의 진상 대표 정형돈이에요. 찌질남의 여친은 된장녀 대표 정가은이에요. 양성평등 개념을 머리로는 실천해도 지갑으론 열어 보이지 않는 여성이 된장녀로 몰매를 맞아요. 남자들은 자신보다 잘난 여자를 된장녀로 확대해석해 열폭하기도 해요. 지지리 궁상떠는 찌질이예요. TV 속 일이라고 누워서 바라보며 낄낄대기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치 않아요. 아무리 밖에서 점잖은 얼굴로 남녀평등 운운해도 ‘추리닝’ 바람으로 집구석의 TV 앞에 앉으면 남녀유별 낄낄대요. 아무래도 밖에서 하는 말은 구라 같아요. 여성차별 바꿔온 지 얼마나 됐나고 벌써부터 양성평등 지겨운가 봐요. 허리띠 풀고 TV 앞에 앉으면 속심이 보여요.

루저녀, 남성 권위에 도전한 대가 치르네요

이런 우라질네이션! 역시 현실에서도 21차 남녀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사이버 월드에서는 ‘루저의 난’이 터졌어요. 20세기 유물인 군가산점제가 각설이도 아닌데 죽지도 않고 돌아왔어요. 게다가 개념에 꿀 발라 먹은 것도 아닌데 ‘꿀벅지’ ‘짐승남’ 같은 원초적 본능스러운 단어도 ‘찐한’ 반응을 얻고 있어요. 이런 남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 여성에 대한 남성의 투쟁, 아프가니스탄 전쟁보다 끈질기고 이라크 전쟁보다 전사자가 많은 남녀전쟁이에요.

이제는 계급도 출신도 중요치 않아요. 21세기엔 끝없는 남녀전쟁만 남았어요. <미녀들의 수다> 루저 발언, ‘남녀탐구생활’, 군가산점제 위헌결정의 헌법재판소(왼쪽부터).

이제는 계급도 출신도 중요치 않아요. 21세기엔 끝없는 남녀전쟁만 남았어요. <미녀들의 수다> 루저 발언, ‘남녀탐구생활’, 군가산점제 위헌결정의 헌법재판소(왼쪽부터).

2000년대 후반은 역사에 ‘녀녀녀’ 시리즈로 기록될 거예요. ‘된장녀’ ‘개똥녀’ ‘루저녀’…. 이렇게 해마다 신여성이 탄생하고 있어요. 이런 된장할 개똥이나 흘리고 다니는 녀들 같으니라고, 벌써 체육복 입은 고혜성들의 아우성이 들려와요. 11월9일 심야의 한마디가 남성의 자존심을 긁었어요. “키 작은 남자는 루저… 최소한 180cm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혹시나 들킬까 마음속 지하 1km 암반수로 눌러두어야 할 말을, 바보상자에 나와서 바보같이 해버린 거예요. 갑자기 하늘에서 남자들이 아니 루저들이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기를 기다린 사람들처럼 광분해요. 루저녀는 10초만에 매장됐어요. 아니, 전두환 독재도 아닌데 루저녀는 가택연금됐고, 고교생 시절 생얼 사진까지 스캔됐어요. 열흘이 지난 지금도 루저녀를 치면 ‘루저녀 퇴학’ ‘루저녀 근황’ ‘루저녀 남친’까지 연관 검색어가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따라나와요.

그래요. 허접한 말을 버젓이 한 출연자나,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자막까지 친절하게 박아가며 확인사살해주신 작가님과 PD님이 문제죠. 그래도 아시잖아요? 그거 에서 100만 명에게 물어서 나온 대답도 아니고, 무슨 여성단체에서 성명서로 발표한 것도 아니라는 거. 그렇게 물 만난 고기처럼 루저놀이 즐기시고, 게이지(게임 등에서 사용하는 수치·용량) 100배 상승 열폭하시면 너무 남자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요. ‘골 빈 여자’라는 남성이 상상하는 ‘빤따지’를 단번에 실현해준 그녀가 너무나 고마워 광분한단 소문도 있어요. 누구는 루저의 난을 거꾸로 보래요. 정말로 남자들이 열받은 이유는 말 때문이 아니래요. 감히 여자인 주제에 ‘너는 루저’라는 지적질을 했다는 거예요. 이름짓기, 금긋기, 그건 원래 아버지 남성이 하는 거래요. 그 권위에 도전했으니 너도나도 모르게 심히 불쾌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권력이든 물력이든 원래 없었던 사람보다 있다가 잃은 사람의 박탈감이 더한 법이에요. 그래서 남자들의 상실감이 은하계까지 뻗치는 것도 이해는 돼요.

그러니 여성은 자나 깨나 불조심보다 100배는 무서운 입조심. 에서도 그러잖아요. 여자 말은 한국말과 다르다고. 그러니 배시시 웃으며 “외모가 문젠가요?” 해도 남자들 이제는 대충은 “외모가 문제야”로 알아들어요. 여자말 사전을 보면서 공부도 했으니까요. 이런 현상을 전문용어로, 성별 발언에 사회적 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한대요. 공론의 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면 안 되는지 배우고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왜 ‘루저남’ ‘똥개남’ 이런 말은 없나요? 우리는 왜 된장녀에만 분개하나요? 언제부터 이렇게 한 명만 골라서 헤드록(목을 조이는 격투기 기술) 거는 세상이 됐나요?

군가산점제, ‘남보원’의 승전보가 울리겠어요

다음은 ‘남보원’의 전쟁이에요. 벌써 역차별, 역차별, 둥둥둥 절규가 들려요. “니들이 공부할 때 우리는 땅 팠는데, 공정경쟁 웬 말이냐!” 잃어버린 10년보다 아까운 잃어버린 2년을 되찾자는 목소리가 드높아요. “재방송도 지겨운데 재도입이 웬 말이냐!” 불친절한 영애씨들의 맞장 구호도 들리네요. 드디어, 남자들 역차별에 눈떴어요. 어머나, 예전엔 진상 떤다고 할까봐 못했던 구시렁도 이어져요. 요즘은 여자들이 잘났다고, 선생님도 더 많이 되고, 공무원도 많이 되고, 판검사도 많이 되고, 이런 우라질 시추에이션! 군대에 가느라 실미도 ‘열공’(열심히 공부)을 못해서 그렇대요. 벌써 잊었나 봐요. 우리 잊지 말자 20세기, 플래시백(영화에서 인물의 과거로 가는 기법) 해보아요. 1999 쌍구년에 군가산점제 위헌판결이 있었어요. 그렇게 20세기 유물은 세기의 종말과 함께 종쳤어요. 도대체 남자들의 해병대 정신은 어디로 갔나요? 한번 위헌은 영원한 위헌! 삼세번 위헌결정 하자는 건가요?

이어지는 옛날 영화예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눈물을 흘리던 시절이 있었어요.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에 고개 숙인 아버지들에 한국 사회는 고개를 숙였어요. 아버지가 불쌍해, 흑흑흑. 그렇게 권력을 잃었던 아버지는 조국이 구제의 터널을 탈출하면서 다시 절반의 영화를 되찾았어요. 그리고 군가산점제도 없어졌죠. 자고로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에요. 한번의 비극은 그나마 반전이 있었지만, 또 한번의 비극은 반전조차 없어요. 1990년대 아버지는 중장년에 직장을 잃었지만, 2000년대 아들은 잃을 직장조차 없어요.

그리하여 청년백수 봉기하기 시작했어요. 역차별 논리로 무장하고 권리의식으로 충만한 ‘아들의 난’이에요. “아버지는 누렸는데, 우리들은 못 누리냐!” 때마침 기회도 좋아요. 선군정치 이명박 정부에 안보정당 한나라당 시절이에요. 군에서 가슴에 피멍 하나씩 든 아들을 위로하는 아버지들의 손길이 각지에서 답지하네요. 노는 아들, 보너스카드로 달래는 온정의 손길을 보세요. 2008년 6월,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군가산점제를 재도입하는 개정법안을 대표발의했어요. 2008년 12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군가산점 재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전향했어요. 2009년 10월, 병무청이 재도입 추진 의사를 밝혔어요. 또 2009년 10월, 이석연 법제처장이 군복무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 방안이 필요하다 말했어요. 머지않아 ‘남보원’의 승전보가 울리겠어요.

페이지 넘기지 말아주세요. 남보원 계속 나와요. “초콜릿 복근은 괜찮고, 꿀벅지는 안 되냐!” 오빠들 심정도 백분오십초 이해돼요. 그래요, 이제 우리 막말하고 살자고요. 너도나도 속물인데, 누가 누굴 나무라냐고요. 아무리 천안의 여고생이 꿀벅지 사용금지를 청원해도 여성부는 금지할 능력이 없대요. 꿀벅지 주인공 유이의 말은 쿨해요. “나는 고맙다.” 그렇게 논란은 단칼에 끝났어요. 이렇게 아무도 나를 사주지 않는 세상에, 꿀벅지란 어여쁜 ‘레테르’를 붙여주니 고맙지 아니한가요. 그런데 이상해요. 꿀벅지라 이름나면 소주 광고 하는데, 식스팩을 보여줘도 초콜릿 광고는 힘들어요. 아무래도 여자 몸의 사용법이 ‘백’이라면 남자 몸의 사용법은 ‘십’인가 보아요. 이렇게 쓸모가 적어요. 이것이 분장실의 강 선생님이 말한 세상의 이치, 아니 상품의 이치예요.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동물스러운 이름에 침 흘리게 되었을까요? 꿀벅지가 아니라도 저희에게 이름을 붙여주세요. 이제는 아무도 저희를 산업예비군이라고도 부르지 않아요. 산업을 예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는 그냥 백수로 불려요. 그렇게 고용 없는 성장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아요.

이브를 향해 빗나간 화살 겨누지 마세요

그래요. 지금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100만 개의 허벅지 중에 꿀벅지로 뜨는 사람은 유이, 윤아밖에 없어요. 신자유주의는 말한대요. 노력하면 너희도 유이가 된단다, 성공 못하는 너희가 루저다. 유이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그래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에요. 나도 된다, 나만 되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위대한 혼자가 되었어요. 아시잖아요. 스펙 쌓고 몸까지 만들려면 시간이 없잖아요. 그런데 군대를 가래요. 싸나이로 태어나서 싫다고 하면 매국노 드립 친다(‘썰 풀다’의 현재형)고 하잖아요. 청년들의 자기애 게이지는 높을 대로 높아졌는데, 고생만 시키고 취직도 시켜주지 않는 놈의 나라니, 반감이 게이지 만땅일 수밖에요. 그러니까 군가산점은 사탕발림이래요. 무릇 국가라면 밤이면 밤마다 쌍코피 터지도록 심사숙고해서 ‘스펙터클 어메이징 언빌리버블’ 신상을 내놔야 해요. 괜히 닳고 닳은 군가산점 유행가나 리바이벌해서 여자들 죄인으로 만드는 짝퉁 이벤트 그만하고요. 제대군인 학생에게 등록금 대출을 쉽게 해주든, 세금을 깍아주든, 고민하면 100만 가지 방법이 있어요. 어머나, 그러고 보니 남녀전쟁을 조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네요. 누군지 아시죠? 그러니 이브를 향해 빗나간 화살을 겨누지 마시고, 청와대를 향해 악다구니 게이지를 올리세요. “청년백수가 중년백수 되기 전에 대안을 내놓아라!” ‘녀녀녀 시리즈’ 만들면서 열폭하면 괜히 소득도 없이 혈압만 올라요.

잠깐, ‘남녀탐구생활’ 보너스편이에요. 영화 의 페르시아 왕처럼 “나는 관대하다”고 말하고 “노력하면 너도 된다”고 말하는 신자유주의 사탕발림이 통하지 않는 두 진상이 뭘까요? 정답은 군대와 키예요. 돈 있으면 얼굴도 고치고 땀 흘리면 몸도 만들어요. 그러나 키는 한계 있어요. 신자유주의 시대 정언명령은 유연화와 슬림화예요. 그런데 군대만 유연화·슬림화는커녕 합리화도 되지 않아요. 이러니 군대와 신장은 전능하신 신자유주의의 아킬레스건, 애물단지예요. 그래서 군가산점제는 세기말, 세기초로 이어지는 질기고 질긴 논란이 되나 봐요. 군대는 정말로 답이 없어요.


어처구니 쌈 싸먹는 통계, 한국은 성평등 115위래요

이렇게 말하니 남자들이 불쌍해 참으려고 했는데, 이런 우라질네이션 어처구니 쌈 싸먹는 통계가 있네요. 여성들, 살림살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09 세계성격차지수’ 보고서 보고 혈압이 급상승해 응급실에 간 여성이 신종플루 환자보다 많다는 설이 있어요. 이거 김연아 여왕님 등장 이전에 한국 피겨스케이팅 순위보다 비참해요. 한국이 134개국 중에 115위 했어요. 중국이 60위, 일본이 75위, 자존심 상해요. 어메이징 언빌리버블! 쿠웨이트·요르단도 한국 앞에 있어요. 한국은 남녀불평등 대국이래요.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 여성경제활동 참가율도 54.7%로 뒤에서 세 번째예요. 멕시코·터키, 모든 OECD 통계에서 바닥을 깔아주는 나라 바로 앞이니까 사실상 꼴지예요. OECD 주요국에 견주면 20년 떨어진 수준이래요. 남자들, 잃어버린 2년이 억울해요. 여자들, 잃어버린 20년도 마늘과 쑥을 삼키면서 참았어요. 혹시나 싶어서 통계청 최신 자료도 분석해보았어요. 지난 8월 기준으로, 남성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100이면 여성은 39래요. 이래선 ‘죽어도 ’의 된장녀 되기는 미션 임파서블이에요. 여자들 현실은 이런데 남자들 생각은 저래요. 이래서 ‘여자가 화났다’(의 다른 코너)가 나왔나 봐요! 카오스의 세계가 끝나고 지구 평화가 도래하길 요술봉에 빌어봐요. 차르릉.




박성호·황현희·최효종 ‘남보원’ 위원 인터뷰
“남녀 모두 속물근성 벗으면 우리의 구호가 바뀔 수도”


최효종·황현희·박성호(왼쪽부터).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최효종·황현희·박성호(왼쪽부터).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가 사회적으로 추락한 남성의 인권을 찾겠다며 붉은 띠를 동여맸다. 두둥, 두둥. “벗어달라 강요 마라, 가을밤엔 나도 춥다” “집에서는 귀한 아들, 너에게는 짐꾼이냐” “니가 울면 천생 여자, 내가 울면 찌질이냐”고 구호를 외친다. 여자와 데이트할 때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뒤늦게 들리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 시대의 소심남들이다. 각자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노조위원장, 20대 직장인 대표로 분장한 박성호(35)·황현희(29)·최효종(23)은 결연한 표정으로 “20대 여자가 밥을 사는 그날까지”를 외친다. 지난 11월25일 녹화를 앞둔 ‘남보원’ 위원들을 만났다.

- 코너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황현희 정부부처에 여성부는 있는데 남성부는 없으니 성 역차별을 개그 소재로 삼아보면 어떨까 했다. 특히 데이트 중 겪는 남자들의 소심한 억울함을 말하면 재밌겠다 싶었다.
- 여성을 상대로 투쟁하는데 비난이 없다.
박성호 여성을 공격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성이 차별받는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로 살 뺐다고 하지 마라, 보정속옷 입은 것 알고 있다” 같은 말은 공격적으로 들리니까 제외한다. 우린 무조건 피해자로 간다는 콘셉트다.
황현희 남성들이 하고 싶었지만 차마 못했던 사소한 이야기는 여성도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여자들이 이런 앙탈을 즐길 수 있는 강자의 여유가 생긴 것도 같다.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은 니가 사라” 구호를 예로 들면, 팝콘을 사봤던 여자는 여유 있게 웃고, 안 산 여자는 깨닫고 웃는 거다.

- 실제로 남성이 성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나.

최효종 에피소드로 소개한 얘기들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해 만들었다. 내 여자친구는 자신이 뭔가 살 차례가 되면 내게 카드를 주고 결제하라고 한다. 주변에서 능력 없는 남자를 만난다는 시선을 받을까봐 그러는 것 같다. 우리도 여성이 약자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약속 시간 지키기처럼 인간 대 인간으로 지켜야 할 예의를 말하고 싶었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찌질해 보일까봐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 ‘찌질남들의 성토대회’라고 보기엔 ‘88만원 세대’의 모습도 담겨 있다.
황현희 우린 기름 붙은 심지에 불만 붙였을 뿐이다. 경제력으로 남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세상이잖나. 데이트 비용도 부담되는 비정규직 남자들의 위기가 드러난 것 같다.
- “니 생일엔 명품 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라는 구호가 있다. 명품 가방을 사달라는 여자가 남자보다 월급이 적은 비정규직 여성이란 생각은 안 해봤나.
일동 와~. 그 생각은 못해봤다. 그럴 수도 있겠다.
- 군대 문제 같은 건 안 건드리나.
일동 워~. 코너 문 닫고 잠적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린 작고 찌질해 보이는 문제만 얘기한다.
- ‘남보원’을 보는 시청자에게 한마디.
황현희 우리 얘기는 소심남의 앙탈이다. 여성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우리 얘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해봤다는 것 아닌가. 남녀 모두 속물근성을 벗으면 우리의 마지막 구호인 “여성들이 밥을 사는 그날까지”가 “여성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그날까지”로 변할 수도 있지 않겠나.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도움말: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강명석, tvN 이성수 PD, 연애상담가 임경선, 국민대 권김현영 강사(여성학), 경희대 이택광 교수(영미문화학·문화비평가), 영화평론가 심영섭,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문화인류학), 연세대 엄기호 강사(문화인류학),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강현희 팀장, 김신현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 김나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인권보호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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