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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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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예산심사’ 부르는 DBrain 독점

예산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했으나 사실상 행정부 독점 사용…
“국회·시민에 개방” 목소리
*DBrain: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
등록 2009-11-26 19:25 수정 2020-05-03 04:25

지난 10월 초 국회 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 사이에 흥미로운 공방이 오갔다. 올 상반기 예산의 실집행률을 놓고 두 기관이 ‘수치 싸움’을 벌인 것이다. 실집행률이란 중앙정부의 재정이 실제 사업을 맡은 민간이나 지방정부 등에게 전해진 비율을 이르는 것으로, 정부 재정사업의 진척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 가운데 하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10월7일 발간한 ‘2009년도 국가재정운용 점검보고서’에서 올해 재정 조기집행 계획 대비 실집행률이 70%에 미치지 못하는 사업이 13개 부처 446개에 이르고, 규모로는 9조3459억원이라고 지적했다. 각 부처에 실집행률이 70%에 못 미친 사업 자료들을 요청해 넘겨받은 뒤 분석한 결과였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11월12일 오전 2010년 예산안 관련 자료가 잔뜩 쌓여 있는 국회 예결위 회의실에서 예산안 심의와 관련한 정책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국회에선 디브레인의 통합재정정보를 보는 데 한계가 있어 예산 심의권을 침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11월12일 오전 2010년 예산안 관련 자료가 잔뜩 쌓여 있는 국회 예결위 회의실에서 예산안 심의와 관련한 정책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국회에선 디브레인의 통합재정정보를 보는 데 한계가 있어 예산 심의권을 침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이튿날 기획재정부가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예산정책처의 통계는 정부가 집행관리하는 40개 부처, 6147개 사업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이어서 대표성이 없으며,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으로 정부의 전체 사업을 분석한 결과 실집행률은 94.3%에 이른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예산정책처는 10월9일 보도자료를 내 기획재정부가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의 재정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부 사업 전체에 대한 분석은 “기획재정부만 아는 수치”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참여정부 시절 효율적 예산 배분 위해 도입

문제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이었다. 이는 예산 편성과 집행, 회계·결산, 사업관리, 통계분석 등 국가의 모든 재정 업무를 온라인으로 통합·연계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통합재정정보시스템으로, ‘디브레인’(DBrain)으로도 불린다. 예·결산 정보는 물론, 각 재정사업의 계획 단계부터 종료까지 전 과정의 사업이력, 실적, 사업현황, 감사 결과 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중앙정부·지방정부·공공기관이 모두 연계돼 있다. 또 기존 예산회계시스템에서는 해당 연도의 예산 편성·운영·결산만 볼 수 있었지만, 연도별로 모두 연동해 볼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처럼 방대한 재정정보의 통합은 참여정부의 산물이다. 국정과제의 우선순위에 따라 체계적으로 재원을 분배하고 실질적인 성과 관리를 시도하는 등 재정운용에 ‘전략’ 개념을 도입한 결과였다.

참여정부는 △국가재정법 △총액배분자율편성(중앙정부가 재정전략에 따라 부처별로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 △중·장기 국가재정운용계획 △프로그램 예산제(같은 정책 목표 아래 추진되는 여러 사업을 하나로 묶어 예산을 배정하는 것) 등을 도입하면서 국가재정 체계의 변화를 꾀했다. 그런데 이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효과를 발휘하려면 각각 분리된 기존의 예산시스템과 회계시스템으로는 어림없었다. 재정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도 없고, 사업성과 확인이나 재원의 효율적·전략적 배분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04년 구축하기 시작한 디브레인은 2008년 예산안 작성 때부터 활용됐다. 구축비용 600억원, 연간 운영비 100억~200억원 등 지금까지 디브레인에 투자된 예산만 1천억원에 이른다.

디브레인 구축엔 재정정보를 국회와 국민에게 공개해 재정운용의 투명도를 높이고, 예산 낭비의 소지를 줄이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디브레인 이용은 사실상 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10월초 예산정책처가 상반기 실집행률 분석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비판을 즉각 재반박한 것도, 국회가 예·결산을 심층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디브레인의 재정정보를 볼 수 없다는 데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였다.

디브레인 존재조차 모르는 의원도 많아

디브레인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기획재정부 내부 지침인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 권한그룹 역할 정의서’에 규정돼 있는데, 여기엔 예·결산 심의권을 가진 국회는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조차도 디브레인의 존재와 활용 범위를 아는 이가 드물다. 예산 심의를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이 디브레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는 건 역설적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예산정책처의 끈질긴 요구로 지난해 9월부터 국회에서도 예산정책처 분석관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조사관 등 28명이 디브레인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부여받은 권한은 낮은 등급이어서, 사실상 예산 심의 때 각 부처가 국회로 보내는 자료만 ‘온라인 버전’으로 보는 데 불과하다. “어차피 문서로 받는 내용과 똑같아 잘 접속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DBrain(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의 개념도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DBrain(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의 개념도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예산정책처와 진보 진영 일각에선 디브레인이 포괄하는 정보를 국회도 정부 수준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예·결산을 더욱 심층적이고 합리적으로 심의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사업 성과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다음 예산에 반영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산정책처의 ‘2009년도 국가재정운용 점검 보고서’가 디브레인의 재정정보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작성됐다면, 보고서는 “무리한 조기집행”이라고 지적하는 대신 다른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 등에 참고할 정보도 풍부해지고 신뢰도도 높아진다.

정부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특정 예산을 축소하거나 부풀리는 일도 어려워진다. 프로그램 예산제에 따라 정부는 각각의 단위사업 예산을 디브레인에 입력할 때 일반공공행정, 국방, 교육, 환경, 사회복지 등 16개 분야 69개 부문으로 분류해 입력해야 한다. 디브레인상에선 이들 단위사업 예산에 부처별 코드와 분야별 코드가 붙게 된다. 반면 국회에 문서 형태로 오는 예산안은 부처별로만 제출될 뿐 분야별 코드가 붙어 있지 않다. 따라서 부처 중심으로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에선 어떤 예산이 특정 프로그램에 포함되는 게 적절하는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전면 공개되면 예산 꼼수 견제 쉬워져

가령 여권이 “역대 최대 규모 증액”이라고 강조하는 복지 예산 81조원엔 ‘복지’로 분류할 수 없는 국토부의 보금자리주택 관련 융자금 2조6천억원이 포함돼 있다. 융자금은 정부가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복지 예산으로 잡으려면 시장 금리와 그보다 낮은 융자 이자의 차액만큼만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예산은 심사를 맡은 국회 국토해양위에 제출될 땐, 복지 분야 예산이 아니라 국토부 예산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복지 예산으로 포함돼도 좋은지 여부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반면 디브레인에선 프로그램별 예산, 즉 사업목적별 예산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보금자리주택 관련 융자금이 복지 예산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또 정부에 복지 예산 전체 내역을 일일이 요구해 받아본 뒤 분석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리지만, 디브레인을 이용하면 손쉽게 해당 내역을 검색해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디브레인 접근권 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선 애초 설계할 때의 계획대로 일반 국민까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산정책처 쪽은 “국민이 낸 세금을 얼마나 필요하고 적절한 곳에 쓰는지 제대로 감시하려면 국민·국회와 정부 사이의 ‘정보 불균형’이 해소돼야 한다. 1천억원이나 들인 시스템을 본래 취지에 맞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일반 국민도 디브레인에 접속해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브레인으로 “나라 살림이 더 짜임새 있고 투명해진다”고 홍보하는 기획재정부도 공식적으론 공개 범위 확대를 ‘검토 중’이다. 디브레인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 디지털예산회계기획단 관계자는 “국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재정정보 공개 범위 확대와 관련해 원자료를 생산하는 각 정부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구체적인 일정은 나와 있지 않지만, 협의가 잘되면 공개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론 ‘정치적 악용 우려’ 등의 이유로 정보 공유를 마뜩지 않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층적 예·결산 심의 위해 국회에도 접근권을

근본적으로는 상임위 소관 부처 예산만 들여다봐야 하는 국회의 현행 예산심의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결특위를 상설화하고, 예산안의 밑그림이 잡히는 5월 재정전략회의에도 관여해 ‘문제 예산’이 발생할 여지를 처음부터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달라진 재정운용 체계에 맞게 예산 편성과 집행을 검증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회가 예산심의권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재정전략회의부터 ‘검증’해 특정 사업의 예산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며 “재정은 사회공공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기반인 만큼, 5년 단위의 중기 재정운용 계획을 심의할 수 있는 사전예산제, 시민이 직접 예산 편성에 관여하는 시민참여예산제 등의 도입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의원들 ‘예산 장난질’ 도구 비용추계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략적인 활용 도구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비용을 수반하는 입법안을 발의할 때는 ‘비용추계서’를 첨부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비용추계서는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지출의 순증가 또는 재정수입의 순감소액에 관해 추정한 자료다. 이를 첨부하지 않을 때는 미첨부 사유서를 따로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할 때 비용추계서가 제대로 제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비용추계서 작성을 편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반드시 비용추계서 작성을 거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미첨부 사유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경우도 있고, 긴급 입법이란 이유로 비용추계서 작성을 하지 않는 일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서 작성은 예산정책처가 담당하는데, 사실 예산정책처는 국회의원을 지원하기 위한 곳이지 감시·견제하는 기관은 아니다. 의원들을 상대로 깐깐하게 따지기가 힘든 처지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법안 심사가 본격화될 때 비로소 비용추계서 제출이 논란거리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예산정책처도 시간에 쫓겨 비용추계서를 정밀하게 작성하기 어려워진다. 또 예산정책처가 비용추계서를 작성하기 위해 관련 정부 부처에 자료를 요청할 권한을 갖고는 있지만, 정부가 제대로 자료를 건네주지 않거나 자료 요청을 거부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불성실한 자료 제출에 대한 아무런 벌칙 조항도 없기 때문이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발의하는 의안은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시혜성 혹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이 많은데 작성·제출되는 비용추계서들은 많은 경우 효율성 등 의안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많고, 따라서 비용추계서는 단순 참고자료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구 개발사업 등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의도가 빤한 선심성 의안의 경우 사업을 분할하는 사례도 흔하다. 예컨대 100억원 정도의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이라면 사업별 예산 소요액이 10억원 미만이 되도록 사업을 몇 개로 쪼개는 식이다. 예상되는 비용이 연평균 10억원 미만인 경우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않아도 된다. 국고 지원이 수반되는 공공개발 사업은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사전예비타당성조사’(총 500억원 이상 소요되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센터에서 비용·편익 등 경제성을 분석·검증)를 회피하기 위해 사업을 쪼개는 일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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