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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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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다발적 재벌 수사 속내는?

대한통운·SK건설·태광그룹·두산·한진 등 몰아치기 수사…
“분위기 반전용” “여권의 재계 압박용” 해설 분분
등록 2009-10-16 13:38 수정 2020-05-03 04:25

검찰이 대기업에 전방위로 사정 칼날을 겨누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 뒤 침묵했던 검찰이 수개월의 공백을 깨고 몰아치기식 기업 수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해당 기업들은 촉각을 세우며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됐으나 전·현직 임원 2명의 불구속 기소로 끝난 효성그룹 수사처럼 유야무야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9월29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검사장회의에서 김준규 검찰총장(맨 왼쪽)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

9월29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검사장회의에서 김준규 검찰총장(맨 왼쪽)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

검찰은 현재 동시다발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수사 선상에 오른 기업만 대한통운과 SK건설, 태광그룹, 두산인프라코어, 한진그룹 등 대여섯 군데나 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는 지난 9월22일 국내 최대 물류회사인 대한통운 지방 지사 2곳을 압수수색하면서 대기업 수사의 신호탄을 쐈다. 이어 대한통운 부산지사의 법인자금 131억4천만원을 빼돌려 횡령한 혐의로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을 구속했다.

건설·물류 등 계열사가 주 타깃

이와 함께 검찰은 SK건설이 2001년 문화방송 일산제작센터 공사 수주 과정에서 1차 심사에서 탈락했지만 수의계약 형식으로 공사를 맡게 된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내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동시에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한찬식)는 태광이 올해 초 케이블 방송 사업자 큐릭스를 인수하면서 방송법을 어겨 편법으로 지분을 소유했다는 의혹과 정치권 로비 의혹을 내사 중이다. 태광 계열사인 티브로드는 방송통신위윈회가 큐릭스 인수 승인 여부를 논의하던 3월 말께 청와대 행정관을 유흥업소에서 접대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로비 의혹을 받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부장 전현준)는 한진의 부동산 취득 내역과 증여 내역 등의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인천지검 특수부(부장 이경훈)는 두산인프라코어 임직원이 군납 과정에서 납품 단가를 부풀려 조성한 자금 일부가 군 관계자에게 흘러갔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이처럼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곳은 주로 조선과 건설, 물류 기업들이다. 대부분 납품 단가 부풀리기나 이면계약, 하도급 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성된 비자금이 정·관계로 흘러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기획수사 부인하지만

해당 기업들과 재계는 사정 칼바람의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임원회의를 열고 검찰 수사 배경과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 차원의 ‘기획성 수사’가 아니냐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들의 투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데다 유동성 위기를 겪은 기업들의 구조조정 노력이 정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압박용으로 검찰을 동원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정부의 투자 확대 요구를 두고 정부·여당과 보이지 않은 신경전을 벌여왔다.

일부에선 SK 수사가 문화방송 일산제작센터 공사 수주 과정과 관련된 점을 들어 문화방송에 대한 우회적 압박이 아니냐고 풀이하는가 하면, 하도급 과정의 납품 단가 문제가 수사 대상에 오른 데 대해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을 염두에 둔 하청업체 보호 차원의 코드 맞추기 수사라는 얘기도 나돈다.

검찰은 지난해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전 정권과 맞물린 재계 손보기에 나섰지만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이번 수사에 앞서 검찰은 KT와 KTF 등에 대해 간헐적 수사를 벌였는데, 당시 수사도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및 로비 의혹이 주요 대상이었다. 그동안 권력형 비리란 꼬리표를 달고 도마 위에 오른 사건은 20여 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흐지부지 끝났다.

검찰이 ‘반전 카드’로 대기업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검찰이 동시다발로 대기업 비리에 칼을 대기 시작한 것은 실추한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적 독립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검찰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한 데 이어 검찰총장 후보자가 부적절한 개인 문제로 사퇴하면서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곤두박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대상 기업들은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번 수사가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추가로 회계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수사 대상 기업들은 불똥이 그룹 본사로 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경우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여부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계열사인 대한통운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에 대해 “대한통운 인수 이전의 상황이기 때문에 그룹과는 무관한 것”이라며 애써 말을 아끼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수사가 어디까지로 확대될지 노심초사하는 표정이다. 다른 대기업들은 다음 타깃이 어디가 될지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재계의 이런 우려에 대해 검찰은 기획수사가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9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수사’로 방향을 잡아가는 언론 보도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며 “기업·정치인 등 ‘대상’이 아니라 비리·부패 등 ‘범죄 유형’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이 형평성 있는 수사를 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검찰의 전방위 수사를 받는 다른 대기업과 달리 대통령 사돈 기업인 효성에 대해 검찰은 용두사미식 수사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절대권력 앞에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년6개월을 끌어오던 효성 비자금 사건에 대해 검찰은 전·현직 임원 2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 종료를 선언해버렸다. 효성 수사는 수사가 이뤄지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지부진했다. 검찰이 효성그룹과 관련된 범죄 첩보를 여럿 확보해놓고도 아예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불거져 ‘대통령 사돈 기업 봐주기’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노영민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10월7일 논평을 통해 “전 정권과 관련한 사안에는 먼지떨이식 수사로 온갖 것들을 다 들춰내던, 그야말로 기세등등하던 검찰의 모습치고는 의아할 정도로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효성 비자금을 다시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10월6일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OCI(옛 동양제철화학) 본사에 수사관들을 보내 주식 거래 내역과 이사회 회의록,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수사 통보를 받고도 3개월 이상 지나서야 압수수색에 들어가 ‘뒷북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OCI 주가는 검찰 압수수색을 비웃듯 다음날 반등했다.

검찰은 6월 말 금융감독원에서 “김재호 사장 및 경영진과 이수영 OCI 회장의 장남인 이우현 OCI 사업총괄 부사장이 2008년 초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OCI 주식을 거래하면서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의혹을 통보받고 내사를 진행해왔다. 민주당도 “한승수 전 총리의 아들 부부가 미공개 정보로 OCI 주식을 거래해 거액의 차익을 거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검찰은 7월 금감원 직원 2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한 뒤 수사팀 교체 등의 이유로 더 이상의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OCI 주식 불공정거래 사건, 효성 처리 전철 밟나

2003년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당시 검찰은 대북송금 특검 도입 등으로 위상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굴지의 대기업을 상대로 한 분식회계 수사와 그에 따른 대선자금 수사 확대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검찰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절대권력과 연관된 대기업도 성역 없이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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