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추억이 있었다. 2008년 뜨거웠던 초여름에 숱하게 많은 구호가 명멸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을 머금게 되는, 감동에 ‘절었던’ 구호도 있다. “거리를 학교로!” 광화문의 아스팔트에 붉은 스프레이로 휘갈긴 구호를 보았을 때, 속으로 ‘나이스!’ 했었다. 여기에 더하면, “촛불이 길이다” “촛불이 학교다”. 그렇게 촛불 소녀·소년은 “어린 것들이~” 하는 청소년 보호주의의 뒤통수에 시민권의 글귀를 휘갈겼다. 그렇게 촛불의 길은 학교가 되었다.
촛불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 이제는 볼륨을 높인다. 모든 청소년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세상을 향해서 볼륨을 높이는 인터넷 방송 ‘모난 라디오’(www.monanradio.net). 역사적 개국은 6월1일, 벌써 100일이 넘었다. 먼저 월요일엔 ‘발칙한 소영, 학교담을 넘다’와 ‘엠건의 M 채널’이 방송된다. ‘공기’란 별명을 가진 고등학교 1학년 소영은 “학교 안에서 일어난 숨기기 미안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지난해 수능을 거부하고 올해 졸업한 ‘엠건’은 “TV 속에 무수한 말거리들과 소설, 만화, 영화를 보고 이야기”한다. 수요일, ‘쩡열’의 ‘제발 너나 걱정하세요’에선 “자신만의 에피소드 재잘거려보기”를 권장한다. 금요일엔 탈학교 청소년 ‘난다’가 “딱 걸리는 뉴스와 의견”을 개진한다. 그리고 이들과 같이하는 20대 문화연대 활동가 ‘또연’의 ‘미심쩍은 언니의 위험한 상담소’도 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보여주고 싶어 환장한 라디오’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촛불의 거리에서 만나서 인권운동을 하던 청소년들이 라디오 방송을 하자고 작당했다. 청소년의,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방송, 모난 라디오는 “여기저기 부딪히고 깨져 삐죽삐죽한 모난 돌이 되더라도 우리는 세상과 만나고자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라디오는 이들의 자치학교다. 9월의 어느 늦은 저녁 모난 라디오 디제이(DJ) 공기, 엠건, 난다가 모여서 수다를 떨었고, 또연이 말을 보탰다. 이들이 들려준 학교 뒷담화, 촛불 추억담, 라디오 칭송담을 소개한다. 참, 모난 라디오는 문화연대와 청소년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 사회’ 공기는 정말로 촛불집회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였어요?
공기 인권이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관심사는 게임이나 외모를 꾸미는 인터넷 카페 들어가기였죠. 그런데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중학생도 야자(야간자율학습)해야 된대, 0교시도 한대, 이런 말이 학교에 나돌면서 안티 이명박 카페에 가입하고, 광우병에 관심도 가지게 됐죠.
또연 역시 MB는 지능적 좌파야.
‘야자’와 ‘0교시’에 열받아 반MB카페 가입사회 서로를 어떻게 만났어요?
공기 촛불집회 거리에서 낚였죠. 청소년 보호주의 비판에 혹했죠.
난다 (공기를 보며) 마스크 쓴 애.
또연 엠건은 제 발로 찾아왔어.
엠건 중학교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장난이 아닌 거예요. 애들이 서로 성적 때문에 눈치 보고. 그렇게 혼자서 답답해하다가 청소년 단체에 나가고, 청소년 교육감 후보 운동도 하고. 그러다 친해졌죠.
또연 난다하고 엠건은 모범생이었다며.
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1학년 때 담임이 ‘(그의 본명인) 지혜야 유학 가니?’ 그러던데.
사회 여기 ‘거리를 학교로’ 쓰고 다닌 사람도 있죠.
난다 그 말보다 ‘이딴 교육 받으면 이명박 된다’가 더 좋았어요. 그때 대학생들이 ‘MB야, 동맹휴업 무섭지?’ 이렇게 쓰고 다녔어요. 그러면 학교를 그만뒀던 우리는 ‘나는 만날 방학이다. 무섭지?’ ‘학교도 안 간다. 무섭지?’ 이렇게 쓰고 다녔어요.
엠건 사실 학교도 지겨운데, 거리까지 학교라고 해야 되냐 했어요. 그래도 그 표현을 썼던 건, 학교에서 그만큼 배우는 것이 없다고 느껴서죠.
공기 그래도 학교에 비해서 거리엔 자유가 있죠.
엠건 학교는 청소년과 어른을 완전히 분리시켜버려요. 촛불집회에 나가면서 청소년들이 갇혀 있던 생활에서 벗어나 도로에서 시위하고, 정부 비판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죠. 삶의 영역이 엄청 확장된 거죠. 그런 경험을 많이 하면 성인과 청소년의 구분이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 난다는 학교를 그만두고 경험이 넓어졌나요. 반대로 막막했을 수도 있고.
난다 처음엔 막막했죠.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학교가 그래서 무섭다고 느껴요. 내 시간을 내가 어떻게 쓸지 모르게 하니까. 지금은 제 시간표를 가지고 살지만요.
또연 오히려 뭘 할지 모르니까 무언가를 하게 되죠. 거리에 나오면 어디로 갈지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니까요. 너 왜 나왔니? 뭐 할 거니? 자꾸 물으니까 대답을 생각하게 되죠.
수박밭으로 새도 잘 살고 있죠사회 모난 라디오도 일종의 로드스쿨링 같아요.
공기 예전엔 지나쳤던 학교 일도 라디오를 하면서 주의 깊게 보게 되죠. 소재로 쓸 수 있나 하고.
또연 시골길을 걷다가 수박밭 같은 게 나오면 슬쩍 새게 되잖아요. 이 친구들은 그런 존재 같아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났는데 잘 살고 있는 거예요. 학교만 다니는 친구들에게 ‘또 다름’을 상상하게 만드는 존재들이죠.
사회 ‘차칸’ 학생들을 선동하는 방송이군요.
또연 (웃음) 그렇진 않아요. 라디오를 하면서 모두들 결코 이건 이렇다 단정하지 않아요. 그냥 짜증 나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질문을 던질 뿐이죠.
엠건 못나서 그래, 우리가.
난다 야, 못났어~ 못났어~ 하다가 모난 라디오 이름이 나온 거잖아.
또연 공부 못하는 애, 수능 거부한 애, 학교 그만둔 애, 비주류끼리 모여서 우린 왜 못났을 까 하다가 성격이 모나서 그렇구나 했던 거지.
사회 라디오 처음 할 때는 어땠어요?
공기 요약본인 콘티를 써야 하는데 대본을 쓴 거예요. 다 못 써서 어쩌나 쩔쩔매고….
또연 안녕하세요, 공기입니다~. 일일이 다 쓰려고 했죠.
공기 콘티 쓰고, 음악 파일 넣는 작업하고, 방송을 혼자서 만들다 보니까 어느새 제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학교에서 발표수업을 하는데, 파워포인트 같은 걸 써서 자료를 만드니까 무지하게 결과물이 좋은 거예요. 애들이 그러더라고요. 너는 공부 빼고 다 잘한다고. (모두 웃음)
또연 제 생일에 공기가 (크게 팔을 벌리며) 이만한 하드보드에 그림을 잔뜩 그려서 생일카드로 줬어요. (예쁜 그림이 들어간 모난 라디오 홍보물을 보이며) 이것도 공기가 다 그렸어요.
사회 어, 정말 멋진데요.
또연 공기가 자기도 몰랐던 재능을 그렇게 발견한 거죠. 나중에 공기가 ‘디자인 배워보고 싶다’ 그래요. 쟤한테 뭔가 되고 싶다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웃음)
엠건 그때부터 청소년 운동에 필요한 모든 그림을 공기가 그리기 시작했어.
사회 공기는 정말 청소년 운동하면서 얻은 게 많네요.
공기 새로 태어났다고 보시면 돼요. (웃음)
뉴스 소재로 사회문제 얘기해요또연 공기의 ‘불펌’된 자신감이 모난 라디오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뭐 하자 그러면, 벌써 일어서고 있는 애거든요. 행동력 백(100)이에요. 모난 라디오도 공기와 쩡열이 들어와서, 뚝딱뚝딱 홍보물을 만들고 (전체가) 검토하기도 전에 뿌려버린 거예요.
난다 나는 어? 어? 됐어? 어~~ 그랬죠.
엠건 나는 걱정만 하고 있고. 어쨌든 그래서 어쩌지 못하고 시작됐지.
사회 어, 시간이 11시가 넘었어요. 라디오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짧게 해주세요.
난다 제 방송은 사회문제를 얘기하는 건데요. 주로 뉴스 같은 걸 가지고요. 금요일 방송인데, 대본을 쓰기 전에 제 다이어리를 먼저 봐요. 이번주에 내가 한 일을 보고, 그걸 가지고 쓰죠. 대본을 쓰면서 활동을 왜 하는지 생각도 해보게 되고 그래요.
엠건 저는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면서 하는 방송인데요. 예를 들어 에 화랑이 나오면 청소년과 연관지어서 생각한다거나 하는 거죠. 그게 좀 재미있어요.
사회·정리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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