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시장의 수요는 그 특성상 경기변동이나 소득수준에 민감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 특히 이동통신 시장은 성별·나이·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영업 지역도 전 국토를 포함한다. 따라서 이 시장에 일단 진입하면, 치열하고 약탈적인 경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안정적인 수입을 거의 보장받게 된다.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온갖 특혜 시비가 불거진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은 일반적으로 ‘가격경쟁’의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유효한 가격경쟁이 벌어지면 소비자 잉여(편익)는 커지게 마련이다. 대기업 3사가 경쟁하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가격(요금)경쟁이 유효하게 벌어지는 걸까?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다른 업종에 비해 경쟁이 매우 부족한 편”이라며 “제대로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 올해 KT가 KTF를 합병하면서 이동통신 시장은 ‘더 많은 경쟁’이 촉발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특히 SK텔레콤·KT·LG텔레콤 3개 업체 간의 통화 품질 경쟁력 차이가 크게 줄어들면서 요금경쟁이 불붙을 여지도 커졌다. 그럼에도 3사는 요금경쟁보다는 다단계 판매업체들을 앞세운 시장점유율 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마케팅 쪽을 보자. SK텔레콤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2008년에 지출한 광고선전비는 총 3005억원이다. 2008년 SK텔레콤 임직원 총급여액(3807억원)에 맞먹는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동통신 업체들의 또 다른 마케팅 거점은 위탁대리점이다. SK텔레콤은 위탁대리점에 가입청약 수수료(가입자 모집 건당 2만2천원)와 위탁관리 수수료(고객이 사용하는 요금 중 정상 수납액의 6%)를 지급하고 있다. 이를 포함한 ‘지급 수수료’ 지출 항목이 2008년에 무려 4조4192억원에 달했다. 이렇듯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고도 SK텔레콤은 2008년에 영업이익 2조598억원을 벌어들였다.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보전하고도 수익을 내는 비결의 원천으로 지목되는 건 ‘과다 요금’이다. 유효경쟁이 좀체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소비자가 누려야 할 편익이 오히려 업체들의 초과 이윤으로 흘러 들어가는 셈이다.
SK텔레콤은 지난 6월 말 현재 자사의 이동통신설비(망)를 이용해 최대 3324만 명의 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올 2분기 실제 가입자는 2383만 명이다. 현재 가입자보다 1천만 명이나 더 많은 가입자를 잠재 가입자로 보고 ‘과잉설비’에 가까운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동통신 3사마다 마케팅에 퍼붓는 금액에 견줘 순수하게 이동통신설비망(기지국과 중계기 등)에 지출하는 투자비용은 매우 작다. 전국에 걸쳐 SK텔레콤의 이동통신설비(망)는 올 6월말 현재 총 2조4천억원(장부가액)이다. SK텔레콤 쪽은 “한계 용량을 넘길 정도로 통화량이 급증하면 (기지국을 추가 건설하지 않고) 기존 중계기에 메모리 카드를 새로 끼워넣는 간단한 방법으로 통화 커버리지를 늘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설비 증설없이도 생산능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이동통신 업체들은 비록 초기 투자비용은 클지라도 일정 규모 이상에 이르면 가입자 한 명이 증가할 때마다 그 한계투자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가입자 증가에 비례해 그만큼 요금을 인하하더라도 충분히 정상 이윤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SK텔레콤이 1997년 이전 이동전화 가입자들한테 받았던 가입보증금 중 아직 돌려주지 않고 있는 잔액은 현재 47억9천만원에 이른다. 가입자들의 보증금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입은 10년 넘게 수익으로 챙기고 있으면서도 소비자들의 요금 인하 요구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 시장의 가격경쟁 촉진을 위해 최근 도입한 ‘결합판매’(이동전화+초고속 인터넷 등) 요금할인 허용(최대 할인율 30% 한도)과 ‘망내 요금할인’(KT의 ‘KT패밀리 요금’ 등) 정책도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합상품의 실제 가격할인율은 총상품가격(이동전화 월평균요금+인터넷 월정액)에 견줘볼 때 아직 10%에도 못 미치고 있다.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최한 이동통신 분야 토론회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철한 부장은 “결합판매가 전체 통신소비 지출액을 절감해주는 효과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요금을 깎아주는 효과를 기대하고 도입한 망내 할인의 경우도 ‘평균 소비자’가 망내 할인에 가입했을 때 받을 수 있는 평균 할인 금액은 1천∼3천원대로 나타났다. 할인 효과가 미미한 셈이다. 게다가 통화량이 많은 일부 소비자에게만 요금 절감 효과가 집중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이동통신시장 구조와 경쟁 수준에서는 결합상품 판매와 망내 할인 정책도 경쟁업체들 간의 요금할인 경쟁을 촉발시키지 못하고 있다.
결합상품들 내놨지만 요금 인하 효과는 미미이렇게 요금 인하 요구를 외면하는 국내 이동통신 업체들은 사실 인구지리적 특성과 국가가 조성해준 유리한 시장환경에서 ‘앉아 헤엄치는 장사’를 하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의 세계적으로 높은 인구밀도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라는 지리 공간적 특수성에 따라 이동통신 업체들은 매우 낮은 투자 비용으로 큰 수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즉, 서울에 몇 개 안 되는 기지국만 설치해도 1천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SK텔레콤은 “기지국과 중계기가 어디에 얼마나 설치돼 있는지는 영업비밀상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국가가 조성해준 유리한 시장환경으로는 옛 공기업 ‘한국통신’(현 KT)을 빼놓을 수 없다. 무슨 말일까? 한 KT 임원은 “한국통신이 수십 년간 독점적으로 유선전화 사업을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는데, 공기업이다 보니 그 수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일 수 없었다. 그래서 매년 이익금의 대부분을 다음해 시설투자 확대에 쏟아부었고, 그래서 전국에 통신망이 거미줄처럼 구축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이 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공기업 한국통신이란 얘기다. 사실 통신 서비스는 유선과 무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KT가 산간벽지 등 적자 지역에 통신 서비스 회선을 구축하면 이동통신회사가 이를 활용해 서비스 수익을 낸다. 강원도 산간에서 노인이 집전화를 이용해 서울의 아들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면 이동통신 사업자에게는 즉각 ‘접속료 매출’이 발생하게 된다. 무선통신 구간은 짧은 소용량 서비스일 뿐이고, 모든 통신 서비스는 반드시 대용량 유선 기간망을 거쳐야 한다. 부산 해운대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서울로 전화를 걸면 가까운 해운대 기지국으로 통신 전파가 전달된 뒤, 거기서부터는 KT 소유의 전화국 교환기와 유선 광케이블을 타고 서울까지 전파가 올라오게 된다. 무선통신은 매우 짧은 거리에서 일어날 뿐이고, 이동통신 업체들은 KT가 수십 년 전부터 구축해놓은 국가 유선 기간망을 이용해 쉽게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1996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디지털 이동통신 방식도 이동통신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을 낳은 원천이었다. ETRI 김대식 이동통신연구본부장은 “당시 GSM 방식의 선진국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아서 치고 들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투자 비용이 저렴한 CDMA 방식을 추구했다”며 “CDMA 방식은 용량(회선 보유 능력)이 매우 커서 같은 주파수 자원을 가지고도 서비스를 10배가량 더 많이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가가 더 많은 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술을 세금으로 개발해준 덕분에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투자 비용을 선진국보다 훨씬 낮출 수 있었다.
SKT 이동전화 해외 서비스 매출 ‘0원’한편,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국내 대표 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돈을 벌어 국민의 경제적 풍요에 기여하고 있지만, 이동통신 업체들은 오직 국내 소비자로부터만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올 2분기 SK텔레콤의 이동전화 서비스 해외 매출액은 ’0’원이었다.
요금 인하에는 인색한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현재 할당받아 쓰고 있는 주파수는 한정된 ’공공자원’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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