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권은 충청권과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이러나. 심대평 전 대표 탈당 이래 자유선진당에 대해 충청 기반을 흔들고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지난 9월7일 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역정을 냈다. 새 총리로 거론되던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추진 방향을 둘러싼 이명박 대통령과 이 총재의 줄다리기에 걸려 탈당한 데 이어, 충남 공주 출신의 정운찬 서울대 교수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자 강하게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이 총재가 느끼는 불쾌감의 원인은 한 가지다. ‘핫바지론’ ‘주변부 지역주의’로 설명되는 충청 지역주의다. 패권주의적 성격이 강한 영남 지역주의, 그 반작용으로 작동하는 호남 지역주의에 가려 충청 지역주의는 상대적으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대체로 영호남 지역 구도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권은 아쉬울 때마다 충청 지역주의를 활용해왔다. 충청 총리론은 개각 때마다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등장하는 단골 소재고, 선거철엔 충청권 인사 영입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요 과제다.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치권이 때마다 충청권 구애 작전에 매달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영호남과 달리 충청에선 어느 정당이 ‘싹쓸이’하지 못한다. 대전·충북·충남 세 광역권에 각 정당이 미치는 영향력이 다르고, 작은 이슈로도 지역 정치권이 휘둘리는 것이 특징이다. 충청이 영호남 사이에서 조정·견제 구실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역대 선거 결과를 들여다보면 ‘흔들린 듯 안 흔들린’ 충청 지역주의의 특징을 좀더 알 수 있다. 지역 맹주를 자임하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지역 구도가 형성된 건 1987년 대선 때다. 5·16 쿠데타에 적극 가담하고,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는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다 신군부에 정치 활동을 금지당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이때 공화당을 창당해 충청 지역에 ‘깃발 꽂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민심은 그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충남(대전 포함)에선 전국 득표율(8.1%)의 6배 가까운 45%를 득표했지만, 충북에서 얻은 표는 13.5%에 불과했다. 오히려 충북은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후보에게 46.9%,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에게 28.2%의 표를 던졌다. ‘정권 교체냐, 아니냐’가 ‘충청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다는 말이 된다.
정치권에서 볼 때 이런 결과는 ‘정권을 잡으려면 충청도를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영호남 어느 한 곳에서 압승을 거둔다 해도 충청 표심을 얻지 못하면 최종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얘기다.
영호남 주자가 뚜렷하게 갈리는 상황을 ‘독자 후보’로 돌파하기보단 ‘대선 캐스팅보터’가 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김종필 전 총재는 3당 합당 대열에 동참해 1992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이로써 먼저 충청도의 손을 잡은 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됐다. 그 결과 김영삼 민자당 후보는 1987년 대선 때 자신이 얻었던 것보다 충남에서 20%포인트 가까이, 충북에서 10%포인트 가까이 더 득표했다. 충남의 경우는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도 1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지역 공약만으로 노무현 과반 지지주목할 대목은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직전 대선보다 충남·충북에서 고르게 15%포인트 넘게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다. 또 국민당 후보로 나온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전국 득표율인 16.3%보다도 높은 20%대 중반의 지지를 충청에서 얻었다는 점이다. 민자당이 김종필 전 총재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충청도당’으로 인식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충청 지역 유권자의 이해관계가 다양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1995년 지방선거와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선 충청 지역주의가 맹위를 떨친다. 1995년 초 김종필 전 총재는 민자당 내부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탈당한 뒤 자민련을 창당했다. 이때 김윤환 당시 민자당 의원은 “충청도 사람이 당을 새로 만든다는데, 충청도 사람들이 핫바지냐”며 김 전 총재를 비판했다. 하지만 민심은 ‘핫바지’에 꽂혔다. 그해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은 충청 지역을 모조리 휩쓸었다. 이듬해 총선에서도 충청 지역에서 46.9%를 득표해, 전국 득표율은 16.2%에 불과했지만 대전 49.8%, 충남 51.2%, 충북 39.4%의 표로 50석을 차지했다. 충남에 비해 ‘김종필 충성도’가 낮은 충북에서도 신한국당은 31.5%를 얻는 데 그쳐 자민련에 뒤졌다.
1997년 대선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P 연합’을 내걸고 충청을 끌어안았다. 여당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모두 충청 출신이었지만, 충청도는 충남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직전 대선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더 표를 몰아줬다. 단순히 출신 지역이 어디냐보다 누가 충청 지역에 더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후 선거에서도 뚜렷하게 관측된다. 2002년 대선 때 충청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놓은 ‘신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달리 김종필 전 총재와 손을 잡지 않았다. 오로지 지역 공약만으로 승부수를 던진 그에게 충청은 대전 55.1%, 충남 52.2%, 충북 50.4% 등 과반의 지지를 보냈다.
지난 대선에서도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공약으로 밝힌 이명박 후보에게 표가 몰렸다. 충남을 제외하고는 충청도 지역에서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크게 뒤졌다.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결정적인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이명박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셈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학)는 ‘한국 지역주의의 정치적 변형과 내재화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처음부터 영호남 지역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했으며 표의 수나 결속력의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열세에 위치한 충청 지역주의는 주도적으로 대권을 차지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충청 지역주의는 전략적 성격을 강하게 띠며 유연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영호남 지역주의에 비해 이념성이 약하고 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됐다. 구체적인 경제적 실리에 바탕한 새로운 형태의 지역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세종시를 둘러싸고 충청 민심이 들끓는 것도 ‘실리적 지역주의’로 해석된다. 세종시는 충청 지역 전체의 이해를 아우르는 대형 이슈이기 때문에 충청 주민 대부분이 민감하게 여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9월7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충청 지역에서 세종시가 원안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대답한 이는 67.1%로, 전국 평균 36%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권을 공략하려고 약속한 ‘세종시 원안 추진’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세종시 이슈 선점’이 표를 좌우할 듯장수찬 목원대 교수(행정학)는 “지금 (충청 지역의)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이 앞서고 자유선진당과 민주당이 오차범위 안에 있지만, 누가 세종시 이슈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 때 표쏠림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세종시 원안 추진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자유선진당 쪽으로 유권자가 결집하고 지역주의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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