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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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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공안’들, 화끈하게 판 벌이나

두 기수를 제치고 검찰총장에 발탁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
김경한 장관과 최강 ‘공안 콤비’ 이룰까
등록 2009-07-02 13:40 수정 2020-05-03 04:25

지난 6월21일 청와대는 전격적으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내정했다. 쟁쟁한 두 기수 선배들을 제치고 발탁된 터라,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 ‘깜짝카드’였다.

신임 검찰총장에 내정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6월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근하고 있다. 본격적인 공안의 시대가 예고된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신임 검찰총장에 내정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6월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근하고 있다. 본격적인 공안의 시대가 예고된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촛불 공포, 초고속 승진의 비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정통 공안통’이다. 내정 발표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공안통 검찰총장’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공안이란 결국 ‘공공의 안녕’인데, 국민을 편하게 하려면 공안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공공의 안녕이 잘 보장돼야 인권도 잘 보장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사전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법감시위원장인 최강욱 변호사는 “그동안 우리 공안검찰은 ‘국민의 안녕’보다는 ‘정권의 안녕’에 복무했다”고 꼬집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력의 의중을 살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개혁하라는 국민적 열망이 컸지만, 이번 인사는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통 공안 출신 검찰총장의 기용을 ‘개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다.

천 후보자는 올 1월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됐다. 공안통이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것은 1997년 안강민씨 이후 12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5개월 만에 검찰총수 후보가 됐다. 선례를 찾기 힘든 초고속 승진이다. 도대체 무엇이 ‘천성관 검찰총장’을 가능하게 했을까?

530만 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우리도 이제 질 좋은 쇠고기를 값싸게 먹을 수 있게 됐다”며 미국산 쇠고기 개방에 기세 좋게 합의했다. 전 정부의 협상 기조를 너무나 쉽게 뒤집으며 국민의 건강을 광우병 위험에 노출시킨 그의 경솔함에 시민들은 ‘촛불’로 저항했다. 집회 참여 시민 수는 늘어났고 일부는 청와대로 향하며 ‘MB 아웃’을 외쳤다. 집권 3개월 만에 터져나온 퇴진 요구는 이 대통령에게는 ‘공포’였을 것이다. 공안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대선 불복종 운동이었던 지난해의 ‘촛불’은 오버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촛불집회 상처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10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막아선 ‘명박산성’은 그 공포감을 증명하는 거대한 조형물이었다. 정권 유지에 위협을 느낀 이명박 대통령은 ‘법질서’를 강조하며 거리의 시민을 진압해야 했다. 야전에서 필요한 건 전투경찰이지만 시민들을 합법적으로 잡아넣고 벌을 주려면 법률가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공안검찰이었다. 지방검찰청의 한 간부는 “예전에는 남산(옛 중앙정보부 및 안기부)에서 잡아다가 패면 끝이었지만, 요즘은 무엇을 하든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며 “그런 법률적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공안검찰”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TK 독식’으로 끝난 첫 번째 검사장 인사에 견줘, 올 초에 단행된 두 번째 인사에서 공안통이 전진 배치된 이유로 볼 수 있다. 천 후보자는 ‘촛불’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검찰의 ‘문제적 사건들’ 지휘 라인과 경과

검찰의 ‘문제적 사건들’ 지휘 라인과 경과

부임하자마자 ‘깔끔하게’ 정리

‘소방수’처럼 서울중앙지검장에 기용된 천 후보자는 정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부임한 지 하루 만에 터진 용산 참사를 ‘철거민들의 화염병 난동’으로, 주임검사의 저항으로 전임 지휘부가 손놓고 있던 문화방송 〈PD수첩〉 사건은 ‘대통령을 향한 적개심에서 나온 명예훼손’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정권으로서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법하다. 검찰총장 인선 직후 “천성관 후보자는 평소 법질서 확립에 대한 소신이 분명한 분”이라고 추어올린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은 그를 미더워하는 정권의 시각을 보여준다.

천 후보자의 발탁은 검찰이 평소 수사만 ‘제대로’ 한다면 정권 차원에서 얼마든지 화끈하게 보상해줄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공안부에서만 공안 사건을 담당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대표적인 공안 사건인 용산 참사와 〈PD수첩〉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중심으로 이뤄졌고 이른바 ‘혹세무민죄’를 씌운 ‘미네르바 사건’은 엉뚱하게도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에서 담당했다. 공안 감각을 가지고 사건을 처리하면 TK 출신이 아니어도, 꼭 공안검사가 아니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답은 수사 이전에 이미 나와 있다. “그거 틀렸는데요”라고 말하면 임수빈 변호사(〈PD수첩〉 사건의 첫 주임검사)처럼 검찰을 떠나야 한다.

기수가 낮은 천 후보자의 검찰총장 내정을 통해 정권은 검사장 인선의 재량을 크게 넓혔다. 발표 직전까지도 가장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로 점쳐졌던 권재진 서울고검장(사시 20회)은 현재 검찰조직에서 명동성 법무연수원장과 함께 최선임 기수다. 그가 총장이 되면 검사장 인사 요인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보다 기수가 낮은 천 지검장을 총수 자리에 앉힘으로써 선배·동기 검사장을 줄줄이 사퇴시켜 승진 자리를 많이 만들어놓는 게 정권으로서는 여러 모로 이득이다. 지방검찰청의 한 간부는 “권재진 고검장이 총장이 되면 좋은 사람은 권 고검장 한 명뿐”이라며 “검찰총장이 교체되는 2년마다 대규모 인사 요인이 발생하는데, 대통령이 2년 뒤에 인사를 하려고 해도 그때는 집권 말기라 힘이 빠질 수 있다. 정권 초기에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대통령의 영도 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래 머리 좋은 사람이 얄팍하지 않나”

물론 승진 기준은 정권을 향한 충성도가 될 것이다. 한 중견 검사는 “전혀 의외의 사람을 쓰는 건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의도”라고 분석한 뒤 “앞으로 검사들은 더 공안적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원래 머리 좋은 사람이 얄팍하지 않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4월8일 검찰이 〈PD수첩〉 수사와 관련해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자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지난 4월8일 검찰이 〈PD수첩〉 수사와 관련해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자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한편 충청 출신의 천 후보자가 내정되면서 임채진 전 검찰총장과 동반 퇴진설이 나돌던 김경한 장관의 거취는 다시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유임설과 경질설이 엇갈린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이명박 대통령은 업무를 장악하고 선제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선호하는데, 김 장관이 그런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며 유임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려고 잠시 늦췄을 수도 있다. 개각 때 함께 교체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어쨌든 김 장관이 유임되면 최강의 ‘공안 콤비’가 법무·검찰을 장악하게 된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상승효과’가 우려되는 조합이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정통 공안’ 천성관
<font size="3"><font color="#006699">김낙중, 강정구, 원정화…</font></font>


수원·부산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1과장, 서울지검 공안1·2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노동 사건이 많은 울산지검장…. 1985년 임관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이력에는 ‘공안’이라는 두 글자가 유난히 많다. 그야말로 ‘정통 공안’ ‘성골 공안’이다.
검사 생활의 대부분을 공안 요직에서 보냈던 만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굵직한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1993년 서울지검 공안부 평검사 시절에는 간첩 혐의로 구속된 김낙중 전 민중당 대표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김낙중씨는 그 뒤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1998년에는 부산지검 공안부장으로 ‘영남위원회 사건’을 수사하며 김창현 당시 울산 동구청장 등 15명을 구속했다. 2001년 서울지검 공안1부장 시절에는 ‘만경대 방명록 사건’의 당사자인 강정구 동국대 교수 등도 구속했다. 수원지검장이던 2008년에는 ‘여간첩 원정화 사건’을 지휘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대형 사건이었지만 수사 과정의 무리수 때문에 스타일을 구긴 적도 많았다. ‘만경대 방명록 사건’에서는 기자들에게 “피의자들이 북의 지령을 받고 움직였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부랴부랴 이를 취소하는 경솔함을 보이기도 했다. 영남위원회 사건 피고인 15명 중에 12명이 무죄판결을 받았고,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된 원정화씨의 양아버지도 무죄로 풀려났다.
“그래도 강성 공안은 아니다”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임한 뒤에는 점점 단호하게 변해갔다. 용산 참사나 문화방송 〈PD수첩〉 사건 등의 수사 지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난 6월19일에는 〈PD수첩〉 사건 수사 결과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려는 문화방송 작가들의 검찰청사 출입을 막아 기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들이 기자회견에 앞서 불법 시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검찰총장 내정 이틀 전의 일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대체로 “친화력이 있으며 치밀한 일처리로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검사는 “사건 처리를 하는 걸 보면 시각 자체가 엘리트적이고 귀족적”이라며 “서민 대중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했다.
천 후보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이명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셈이다. 이 때문에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됐을 때 검찰 내부에서는 “하나님과 MB의 뜻”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또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경기고 동문인 덕에 정권 초기에 법무부 검찰국장 후보로 거론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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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의 공안개혁
<font size="3"><font color="#006699">약화된 듯했으나 본질은 바뀌지 않아</font></font>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도 검찰 공안 기능의 손질이 논의됐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김대중 정부의 공안부 개혁은 ‘신공안’ 개념으로 요약된다. 기존 공안검사(구공안)들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공안 사건을 다뤄보지 않은 검사들을 공안부에 배치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으로 신공안 라인은 공중분해되고 구공안이 복귀했다. “공안은 하던 사람이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노 대통령의 “현재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보여주듯, 검찰을 힘으로 제압하면서 개혁의 분위기를 숙성시켰다. 공안부 폐지나 축소, 개명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대검은 중요 업무 결정 때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는 ‘공안정책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자구책’을 선보이기도 했다. 공안부는 기피 부서가 됐고, 공안통 검사들은 특수부나 기획 쪽 업무를 통해 ‘경력 세탁’을 시도하기도 했다.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간담회를 통해 국외 연수 등을 약속하며 극도로 위축된 공안검사들을 ‘위무’할 정도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코드가 맞지 않는’ 정권과 검찰은 공안사건 처리 과정에서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2003년 10월 검찰은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구속하면서 정권과 마찰을 빚었고, 수사책임자였던 박만 당시 서울지검 1차장은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사표를 썼다. 2005년 10월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됐다.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구속 여부를 놓고 구속 뜻을 굽히지 않은 검찰을 향해 천정배 장관이 공개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이었다. 검찰청법에서 부여한 권한의 행사였지만, “정치적 중립성을 해쳤다”고 반발하는 검찰조직의 불만을 담아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힘 대 힘’으로 팽팽한 긴장관계가 계속되면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참여정부의 공안조직 손질은 공안을 담당했던 대검의 검찰 3과를 폐지하는 정도에 그쳤다.
참여정부 검찰 개혁의 한복판에 있었던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충원 과정부터 순혈주의적인 검찰은 보수적이고 공안적인 시각으로 뭉쳐져 있다”며 “10년 동안 공안 색채가 약화된 것처럼 보였으나 본질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부활한 것”이라고 지금의 상황을 진단했다. 공안검찰의 문제는 곧 검찰조직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천 의원은 “참여정부에서도 검찰 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치유 방법이 모색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외부인 참여 감찰 기능 강화를 통한 검찰권 통제 △생각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임용제도의 개선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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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2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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