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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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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불평등 대우 받는 세입자들

용산참사 법률 쟁점 토론회…
“경찰 1명 희생엔 특수공무집행방해 기소, 철거민 5명 죽음엔 아무 책임 안 물어”
등록 2009-04-09 11:26 수정 2020-05-02 04:25

서울 용산 참사에서 경찰권 행사는 적당하고 적법했는가? 인명 피해를 예상하고 있던 경찰은 진압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가? 농성자들과 경찰의 형사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용산 참사의 법률적 쟁점에 대한 토론회가 지난 4월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렸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용산철거민사망사건 진상조사단(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인권단체연석회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참여연대)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법률가와 일반 시민 등 50여 명이 참석해 4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난 4월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용산 참사의 법적 쟁점 토론회’에서 장주영 용산철거민사망사건 진상조사단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지난 4월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용산 참사의 법적 쟁점 토론회’에서 장주영 용산철거민사망사건 진상조사단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검찰은 농성 철거민 7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즉, 사망한 6명 중 경찰 1명의 사망은 망루에서 농성하던 철거민들의 시너와 화염병에 의한 것이라며 그 책임을 물은 것이다. 반면 사망한 농성자 5명의 죽음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경찰과 합동작전을 벌인 철거용역 직원들은 철거민들에 비해 솜털처럼 가벼운 기소를 당했다. 물론 그들에게 물대포를 쥐어준 경찰은 한 명도 법정에 서지 않는다.

용역에 물대포 넘긴 경찰엔 면죄부

‘강제 진압과 관련한 경찰권 행사의 범위와 한계’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 이상명 순천향대 교수는 망루 농성에 대한 경찰특공대 투입의 근거를 ‘특공대 운영규칙’ 외에는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경찰 내부 규칙에 불과한 특공대 운영규칙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37조 1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빚어진 지주조합과 세입자 간의 지극히 사적인 분쟁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경찰력의 개입이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고 중립적·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경찰 공공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이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또 특공대 투입이 ‘경찰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 원칙은 비무장한 좀도둑을 잡을 때 함부로 총을 쏘면 안 되듯 경찰권을 발동할 때는 위험의 예방이나 장해의 제거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단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찰권 행사 자체가 불필요한 상황에서 농성을 풀려는 충분한 설득·대화 노력이나 철거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호조처도 없이 강제 진압에 나섰고,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화재 발생 가능성을 무시함으로써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켰고, 강제 철거로 인해 세입자의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기 때문에 이번 경찰권 발동은 그 자체로 위법했다는 게 이 교수의 결론이다.

“특공대 투입 적합했더라도 형사책임은 져야”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권배근 광운대 교수는 “경찰특공대 투입은 농성 해제라는 목적에 비춰 그 수단이 적합했다고 본다”면서도 경찰이 형사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당시 망루 주변은 이미 물 위에 기름이 떠 있는데다 농성자들의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음에도 화재를 막기 위한 별도의 안전 조처를 취하지 않은 채 작전을 편 것은 경찰력의 집행 과정에서 상대방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최소 침해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영국 변호사 역시 “농성자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망루 타격과 해체 시도, 농성 돌입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아 농성자들의 입장이 완고할 때 진압을 강행한 점, 안전장비나 소화장비의 준비 없이 진압이 이뤄진 점 등에 비춰 이번 진압은 ‘최소 침해의 원칙’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주제인 ‘경찰과 농성자의 형사책임’ 발제를 맡은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농성자들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과 관련해 “중요한 쟁점인 발화 원인이 화염병이라는 것을 정확히 입증하지 못한 상황, 심지어 화염병 투척 행위자를 특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기소하면 무죄선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철거민들이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과 경찰의 방조·묵인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망루를 쌓고 올라간 행위가 ‘긴급피난’에 해당하는지와 경찰의 공무집행이 위법할 때 농성자들이 한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도 논쟁거리였다. 긴급피난이나 정당방위로 인정된다면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토론자로 나선 김성규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판례상 이번 사건에 경찰의 과잉 진압, 농성자들의 긴급피난, 정당방위 등의 법 논리를 적용하는 건 매우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다만 “법해석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반향도 무시할 수 없다. 사건의 배경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농성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찰력의 위치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고려할 때, 긴급피난과 정당방위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고려 사안이 돼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발제자인 최 교수는 이밖에 경찰이 진압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참사를 막지 못했으니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동시에 사람의 사망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용인·감수하겠다는 의사가 있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무전기를 끈 채 집무실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작전에 대한 지휘권자의 책임을 감안하면 공모공동정범 이론을 적용해 함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저기 사람 있어요”라던 절규의 진실

토론에 나선 장서연 변호사는 “경찰의 직무 개시 시점을 특공대가 출동한 1월19일로 봤을 때, 철거용역들에게 물포를 쏘게 한 경찰은 철거용역 업체 직원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방조 및 직무유기라는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농성자들의 변호인이기도 한 장 변호사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특공대원 김아무개씨의 발화 지점 진술과 모순된 결과를 발표한 검찰이 김씨에 대한 증거 목록 전체를 제출하지도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용산에서 망루가 불 탄 지 벌써 70여 일이 지나도록 주검은 영면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사건 현장인 용산 4구역에서는 시공사 삼성의 포클레인이 삽질을 다시 시작했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농성자들에게 어떤 선고가 내려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불타는 망루와 “저기 사람이 있어요”라던 누군가의 절규, 그 곳에 진실이 있음은 틀림없다. ‘경찰이란 위험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이미 발생한 장해의 제거를 통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보호하려는 국가 작용’이라고 한다. 경찰은 과연 그 정의에 합당하게 행위했는가. 참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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