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의 흥청망청 잔치는 끝났다. 뒤처리는 또 국민의 몫인가?’
미분양이 쌓인다. 미분양에 묶인 대형 건설사 자금이 수조원을 넘고 있다.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고 중·대형 위주로 쏟아낸 물량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대형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GS건설은 전국적으로 7천여 가구에 이르는 미분양 물량을 갖고 있다. 국내 건설사 가운데 가장 많다. GS건설의 경우 수도권과 부산, 천안 일대에 공급한 1천 세대 이상 대단지가 두 자릿수 이상의 미분양을 기록하기도 했다. GS건설의 고분양가도 미분양의 한 원인이 됐다. ‘자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고분양가 정책을 유지했지만 경기침체로 고가 주택 수요가 줄면서 대규모 미분양을 낳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미분양 물량은 대부분 6억원 이상인 고가 주택들이다.
대림산업의 미분양 물량은 17곳, 5천 가구에 이른다. 경남 양산 3차 ‘e-편한세상’의 경우 전체 884가구 중 600여 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주변 아파트보다 3.3㎡당 200만~300만원 높게 책정한 분양가도 미분양 해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림은 뚝섬에 지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처리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림은 2005년 6월 서울시가 공개 매각한 뚝섬 상업용지 3구역 경쟁 입찰에서 3.3㎡당 무려 6945만원에 낙찰받았다. 대림은 올 2월 이곳에 한 채당 40억원이 넘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한숲e-편한세상’을 내놓았으나 분양률은 지지부진하다.
현대산업개발은 4천여 가구의 미분양 주택을 갖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개나리아파트, 서린아파트 등 강남의 노른자위 땅을 재개발해 ‘아이파크’ 깃발을 꽂았다. 하지만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어렵게 되자,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2005년부터 매년 1만여 가구에 이르는 공급 물량은 대부분 지방에 쏟아졌다. 울산에선 올 초 선보인 성남동 태화강아이파크 202가구가 대부분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한화건설과 대우건설은 미분양 문제와 더불어 그룹을 위한 지원 사격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화건설은 일산 가좌마을과 뚝섬 갤러리아 포레에 미분양 물량을 갖고 있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대한생명 지분 22.35%를 인수하기 위해 8617억원을 쏟아부었다. 지난 5월에도 그룹 차원에서 추진한 제일화재해상보험 지분(0.99%) 인수를 위해 51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앞으로도 24%(약 1천억원)를 추가로 매입해야 한다.
대우건설 역시 전국적으로 5천여 가구의 미분양을 갖고 있다. 대우건설은 2007년 말까지만 해도 차입금보다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우건설은 지난 1분기에 대한통운 인수 자금으로 1조6457억원을 썼다. 대우건설은 금호그룹의 대한통운 인수 전체 금액 4조1040억원 40.1%를 부담했다. 차입금 규모는 2007년 말 8881억원에서 올 1분기 2조1599억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두산건설도 2천여 가구의 미분양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현대·롯데·SK·포스코 등의 건설사들도 1천여 가구씩 미분양 물량을 보유 중이다. 다만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우 미분양 수가 전국적으로 900가구에 그쳐 덩치에 견줘 미분양 물량이 적은 편이다.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면, 7월 말 현재 미분양 아파트는 16만 가구다. 지난해 말에 견줘 43% 늘었다. 15년 만에 사상 최고치다. 미분양 가구는 대부분 지방에 몰려 있다. 지방 미분양 주택은 13만7618가구로, 올 초 10만 가구를 넘어섰다. 건설사들이 숨겨놓은 미분양 주택을 신고하면 더 늘어날 수 있다.
건설사들, 정부 규제 탓 돌려지방 미분양 물량이 급증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수도권 중심의 투기억제 정책을 내놓자 건설사들이 지방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주택사업이 어렵게 되자 건설업체들은 물량 확보가 쉬운 지방에 주택 공급을 확대한 것이다.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면, 전국 주택 공급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2년 43.6%에서 2006년 63.4%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2007년에는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려고 서둘러 공사를 마무리한 아파트도 급격히 늘어났다. 이는 미분양 사태를 가중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건설사들은 울산이 지역 소득이 높다는 점에서, 충청권은 행정복합도시 이전이라는 이유로 화끈하게 물량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현재 울산과 충청권에선 건설사들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는 20% 정도 낮게 분양해야 하는 분양값 상한제를 피하려고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6만3천여 가구를 ‘밀어내기 고분양’을 했다. 이 물량은 대부분이 미분양 상태다.
이에 대해 건설사들은 책임을 ‘규제’로 돌린다. 한 건설사 부장은 “시장 변화에 대해 예측 능력이 부족했다고 언론에서 비판한다. 하지만 돈을 좇아가는 게 기업 생리다. 정부가 너무 수도권을 규제하다 보니 결국 건설사들은 지방에서 사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과도하게 높은 분양값이 미분양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건설업체들은 미분양 주택 처리에 미적거리고 있다. ㄷ건설 관계자는 “분양가를 내리기 힘들다. 이미 입주한 사람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브랜드 관리에도 어긋난다. 분양대금은 시행사와 나눠갖는 것인데 시행사가 분양가를 내리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대규모 미분양 사태를 빚은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로선 분양가를 낮출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돈이 안 되는 소형 아파트보다 수익이 짭짤한 중·대형 위주로 분양한 것도 문제다. 건설사들은 중·대형 수요가 없는데도 무작정 크고 넓은 아파트를 지어 비싸게 분양했다. 미분양 아파트는 소형보다 중·대형이 더 많다. 85㎡ 이상의 미분양은 7만6천여 가구로 가장 많다. 60∼85㎡는 6만3천여 가구다.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형 평수를 많이 지었던 이유는 지역 사람을 타깃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개발붐을 타고 다른 지역민들의 입주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집을 다 지어놓아도 주인을 찾지 못하는 ‘준공 뒤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침체로 주택 수요가 위축된 상황에서 준공 뒤 미분양 아파트 처분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는 곧바로 건설사의 자금 사정을 악화시켜 부도 가능성을 높이게 한다.
준공 뒤 미분양 급증 위험신호올 7월 말 기준으로 준공 뒤 미분양 수는 4만여 가구로 지난해 말에 견줘 133% 증가했다. 외환위기 당시 1만8천 가구와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미분양 물량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준공 뒤 미분양 물량은 시공사에는 부도수표와 같다. 입주 뒤에도 분양대금을 받지 못하면서 금융비용은 계속 들어가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 건설사들이 줄도산한 것도 준공 뒤 미분양 물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현식 한화증권 연구원은 “미분양 물량을 줄이기 위해선 실수요자의 집값 상승 기대심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수요가 위축돼 당분간 미분양 사태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해 이른바 ‘10·21 건설 대책’을 내놓는다. 투기 지역을 완화해 투자 심리를 살리고 건설사에 9조원에 이르는 유동성을 공급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게 뼈대다. 정부는 건설사를 A∼D 4개 등급으로 나눠 A와 B등급은 이자 감면과 만기 연장 등을 지원하고 C등급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D등급은 청산한다는 구조조정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매기는 기업 회사채 신용등급은 AAA부터 D등급까지 16단계로 나뉜다. BBB-까지는 ‘투자등급’, 그 아래 BB+부터는 ‘투기등급’이다. 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정보 등 국내 3개 신용평가사 자료를 보면, 상장 건설사 중 BB+ 이하 투기등급에 속하는 기업은 ㅅ건설, ㅇ건설, ㅎ건설, ㅇ기업 등 6곳이다.
“도덕적 해이” 비판 목소리 커져
정부의 건설사 지원에 대해,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건설사의 미분양 아파트를 왜 사주느냐는 비판이다. 건설사들은 집을 짓기 전에 분양을 하기 때문에 미분양이 생겨도 다 지을 때까지 분양가를 내리지 않고 버티다 정부에 미분양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설사들도 정부 지원을 계기로 분양값 인하, 방만한 운영 개선 등 국민에게 와닿는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도시부동산대학원)는 “현재로선 구조조정을 전제로 일부 미분양 물량을 정부가 매입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건설사들과 시행사들도 분양가를 낮추는 것과 같은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 지나치게 과대 성장한 주택 산업과 건설업이 정상화될 수 있는 수준으로 구조조정이 가혹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건설업이 급격히 붕괴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건설업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995~2006년 건설업이 생산한 부가가치 비중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전체 평균이 5.48%였으나 한국은 무려 8.80%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부 대책에는 건설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담기지 않았다. 건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만 담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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