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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르포상 기획] 복숭아는 피처럼 붉어라

한재구씨의 타들어가는 농심… 중국산 농산물 때문에 밭 대신 과수 늘어나며 가격 폭락
등록 2008-09-11 19:31 수정 2020-05-03 04:25

지난 8월1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경매가가 나왔다. 4.5kg짜리 복숭아 10여 상자가 상자당 31만원씩에 경매된 것이다. 11개들이 상자라고 하니, 복숭아 1개에 3만원 가까운 가격이다. 누가 보아도 터무니없는 그 가격은 그러나, 일종의 상술이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한 복숭아 작목반과 도매시장이 짜고 친 홍보 전술이었다. 여러 신문에 보도되고 지상파 방송까지 탔으니 고작 300만원쯤 들인 홍보치고는 대성공이었다고 하겠다.

복숭아를 따고(왼쪽) 선별해서 상자에 담는 한재구씨. 중국산 농산물 때문에 전국의 논과 밭에 과수가 심어지는 건 농가에 또 다른 재앙이 된다.

복숭아를 따고(왼쪽) 선별해서 상자에 담는 한재구씨. 중국산 농산물 때문에 전국의 논과 밭에 과수가 심어지는 건 농가에 또 다른 재앙이 된다.

황도 한 박스에 5천원

올해 복숭아 값이 괜찮다. 아니, 유례없이 높은 값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수확을 하는 한재구(54·충북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씨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다.

“경매가가 지난해보다 좋은 건 사실인데, 이것저것 따져보면 외려 지난해만 못해. 우선 소출이 말여….”

한씨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우선 올해 복숭아값이 나은 것은 4~5월의 이상 기온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 때문이다. 30도를 넘나드는 이상 고온이 여러 날 계속되다가 5월 들어서는 갑자기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저온 현상이 며칠 지속됐다. “사람하군 다르단 말여. 일단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믄 하늘이 도와야 되는 기 복숭아 농사여. 복숭아야 춥다고 껴입을 건가, 덥다고 벗어던질 건가.”

한재구씨의 1200평 복숭아밭에는 황도와 천중도가 각각 70주씩 심어져 있다. 재작년 겨울 한파에 11그루가 얼어죽었고 올해도 상당한 냉해 피해를 입었다. 씨방이 생기고 핵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냉해 등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복숭아는 즉각 반응을 일으킨다. 올해는 1개의 복숭아에 씨 2개가 생기는 특이 현상이 많이 나타났다. 2개의 씨가 생긴 복숭아는 처음엔 다른 것보다 빠르게 자라다가 이내 떨어지고 말았다. 아마 생명에 위협을 느끼자 그 힘이 씨를 많이 만드는 쪽으로 쏠린 것 같다는 게 한씨의 진단이었다.

“복숭아는 큰 것일수록 더 맛이 좋은 거야 알지만, 그래도 값 차이가 너무 나. 세상이 양극화인지 뭔지 되다 보니 농산물도 갈수록 그리 되는 거 같어. 최상품 값은 내가 생각해도 황송하지만, 그런 게 한 나무에 몇 개나 달리냔 말여.”

기계로 찍는 제품이 아닌 이상 전부 상품(上品)만 생산하기란 불가능하다. 상품 비율이 20% 이상이면 최고로 잘 지은 농사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도 한 상자에 9∼10개가 들어가는 최상품은 5%도 얻어내기 어렵다. 그 5%에 고가를 매기고 나머지는 턱없이 후려친다. 빨리 상하는 복숭아의 특성상 약간의 흠집만 있어도 출하가 불가능한데다 값 차이가 이렇게 크다 보니, 평균가로 따지면 농가가 직접 손에 쥐는 돈은 형편없이 적어진다. 실제로 한씨도 며칠 전 황도 21개들이 한 상자를 5천원에 판 적이 있다. 그중에서 상자값 800원, 운임 400원, 경매수수료 7%, 포장 자재비 500원 등을 빼고 나면 순수한 복숭아 값은 3천원 남짓, 과자 한 봉지 값이다. 숫제 농사지어 내다버린 꼴이다.

“남들보다 농사짓는 기술이 없어서 그런지 도무지 타산이 안 나와. 지난해에 950상자 정도를 시장에 냈는데 870만원 했어. 상자당 1만원도 안 된 거지. 근데 그 농사 하는 데 들어간 거 좀 봐.”

한재구씨의 지난해 영농일지를 보았다. 날짜별로 상세하게 작성된 영농일지는 복숭아 농사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3월30일 유황 소독을 시작으로 7월26일까지 11번의 농약 살포가 있었다. 열흘에 한번 꼴이다. 그중에서 세 번은 보르도액이나 목초액 등의 친환경 농약이었고 나머지는 화학 농약이었다. 한 번 살포할 때 약 15만원어치의 농약이 들어갔다. 다음은 비료, 칼슘, 마그네슘, 붕사, 아미노산, 효소 등이 있다. 마치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나 섭취했을 것 같은 긴 영양소 목록들이 복숭아나무들에게 주어졌다.

“사람보다 더하지. 우리네가 그런 거 언제 챙겨먹나? 하도 경쟁력, 경쟁력 해대고 비료회사들도 그런 거 안 쓰믄 아주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하니께 너두나두 쓰는 거지. 써서 나쁘지야 않을 테지만서두 그렇게 돈 들여 무슨 타산이 나와?”

그런 영양제들을 뿌려주는 데 또 100만원가량이 들었다. 열매솎기와 봉지 씌우기 작업에 일당 3만5천원의 인부가 연 24명이 들었다. 인건비 84만원. 또한 상자와 포장비 등에 100만원 정도가 들었다. 그러니까 지난해에 한씨는 약 450만원을 들여 870만원의 수입을 얻은 셈이다. 1200평의 밭이 지닌 본질가치와 가족 노동력인 그와 부인의 인건비, 농약 살포를 위한 유류비 따위는 계산에 넣지 않고도 그랬다.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 한씨는 남보다 못한 농사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걸까?

전국 논과 밭에 심어지는 과수 묘목

한재구씨가 살고 있는 충주시 산척면에는 열두 농가가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충주는 사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복숭아 농가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산척면 열두 농가는 ‘천등산복숭아’라는 공동의 이름으로 출하하는 작목반을 구성하고 있는데, 한씨는 그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계속해서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고 있는 한씨는 근동에서 소문난 농군이다. 같은 작목반 반원들도 수시로 한씨의 밭에 와서 자문을 받곤 한다. 한씨의 말대로 특별히 농사를 잘 짓지는 못해도 결코 우리나라 평균적인 농민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복숭아 농사에서 나오는 수입은 어이없을 정도다. 번듯한 직장인의 한 달 월급 수준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는 복숭아 외에도 사과와 논농사를 병행하고 있지만, 총수입이 3천만원이 넘는 경우는 좀체 없다고 했다. 상당한 규모의 농지를 가졌는데도 그는 농협에 적잖은 빚을 가지고 있다. 그는 봄이면 트랙터로 남의 논을 삼는 일을 하여 일당을 번다. 그리고 직접 지은 고추를 서울에서 식당을 하는 동생에게 대주기도 한다. 그는 비교적 나이도 젊을뿐더러 주위의 다른 농민들보다 조건이 나은 경우다. 하지만 그가 보는 농촌과 자신의 미래는 암울했다.

“희망? 난 없다고 봐. 농민들이 해먹고 살 게 없어. 잘 보라고. 지금 밭농사 지어서 1년 먹고살 작물이 아예 없어. 정부에서는 먼 특화 작물을 해야 한다는 둥 유기농을 하라는 둥 하지만 다 발등에 오줌 누기여. 잠깐은 따뜻할는지 몰러두 얼마 안 가 동상 걸리는겨. 밭농사보단 아직 과수가 낫다구 허니께 과수는 점점 늘어날 테구, 그러믄 너나 없이 다 죽는 게지, 뭐.”

중국산 농산물이 무차별 수입되면서 우리나라 과수원의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밭은 말할 것도 없고 논에까지 각종 과수원이 조성됐다. 제일 먼저 과잉 생산된 사과가 된서리를 맞았고 배가 뒤를 이었다. 배는 90년대 초만 해도 사과보다 두세 배가 비쌌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과의 반값도 안 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렸다. 지금까지는 과일의 소비가 꾸준히 늘어난 덕분에 과수 농가가 파산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경기가 하강하고 소비가 줄면 전체적인 몰락이 올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과일은 소비호환적인 성격이 있고 재배 형태도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연쇄적인 가격 폭락 사태가 올 수 있다.

지금도 전국의 논과 밭에는 계속 과수 묘목이 심어지고 있다. 그 묘목들이 자라 수확이 시작되면 생산 과잉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소비가 늘어난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 농산물의 소비로 이어진다고 할 수도 없다. 이미 물밀 듯 들어오는 오렌지 때문에 폐농의 위기에 몰린 감귤이 그 예다. 칠레와 미국의 거대자본들이 생산해낸 과일들이 소비자의 입맛을 더욱 끌어당길 것이다. 더욱이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파도가 밀려올 가능성이 크다. 여러 해 전부터 국산 과수 묘목 수백만 주가 중국으로 건너가 심어졌고 이미 수확을 시작한 그 과일들의 품질은 국산 과일 못지않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러 상황이 과수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위기로 몰아낼 수 있다.

한재구씨는 현재의 가격이 꾸준히 유지된다면 올해 복숭아 농사로 1천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농약과 비료 가격이 배 가까이 올랐고 각종 자재 값도 많이 올랐기 때문에 순수입은 지난해와 비슷하리라고 본다. 올해도 빚을 줄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한씨의 부인은 만성적으로 허리를 앓고 있으며 한씨 자신도 심장에 이상이 와 두 번이나 서울의 큰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았다. 뾰족하게 병명을 잡아내지도 못하는 병의 원인을 한씨는 농약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아무리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다 해도 안개처럼 퍼지는 농약을 들이마시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내성이 생긴 병충해를 잡기 위해 보통 두세 가지의 농약을 섞어서 살포하는데, 그 섞인 농약을 흡입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피부의 가려움증이나 구토 등의 증세는 많은 과수 농민들이 겪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국민도 아니다”

“우리 마을 21가구 중에 내가 두 번째로 젊어. 이미 농촌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봐야지. 몸은 힘들고 돈은 안 되지, 새카맣게 탄 얼굴로 시내라도 나가봐. 아예 다른 인종 보듯 하는 사람도 많다니까. 그러니 누가 이런 농사를 지으려 하겄어?”

180cm의 큰 키임에도 몸무게는 불과 60kg일 정도로 마른 체형인 한씨는 유독 손이 크고 뼈마디가 굵다. 오랜 농사일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복숭아를 따고 선별하고 포장하는 한씨의 손은 마치 예술 작업을 하는 것처럼 섬세하다. 사실 과수 농사는 거친 일인 것 같지만 하나하나의 작업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근데 말여. 난 이제 꼭 돈이 문제가 아녀. 어차피 다른 사람들하고 사는 길이 다르니께 다른 사람들 사는 거만큼 바랄 수도 없지. 근데, 요새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우리는 인제 우리나라 국민도 아닌 거 같다고. 정부에서 농토를 나라에 내놓고 은퇴하믄 농민한테 연금을 주겠다고 하대. 옛날에는 겉으로라두 농자가 천하지대본이니 어쩌구 하더니, 인젠 아예 그만두구 나가라는 거잖여. 내 자신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아서 분하단 말여.”

새 정권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더불어 농민 문제가 사회적 의제에서 밀려난 듯한 분위기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계층인 농민은 이미 고사 상태다. 어떤 작물을 심어도 생존을 위한 최소생계비가 나오지 않는다. 특수작물로 고소득을 올리는 몇몇 농가는 절대 일반화될 수 없는 홍보 효과를 가질 뿐이다.

복숭아가 붉게 익어도, 들판에 황금 이삭이 물결쳐도 우리의 농촌에는 낮은 먹장구름이 자욱하다. 한재구씨의 말처럼 농민에게 희망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글·사진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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