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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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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짓다 만 아파트

분양률 10% 넘기기 어려운 대구… 미분양 아파트 87%가 지방에 몰려 있어
등록 2008-09-11 18:43 수정 2020-05-03 04:25

#사례1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아파트 공사현장이 높이 5m도 넘어 보이는 펜스에 둘러싸여 있다. 잠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관리사무소도 오랫동안 사람이 찾지 않아 먼지가 쌓였다. 작업현장은 비교적 정리가 잘돼 있지만 곳곳에 ‘고압선 주의, 감전주의’라는 팻말이 내걸려 사고 위험이 염려된다. 34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20여m 파내려간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돼 있다. 이웃 주민들은 “1년 이상 중장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곳은 대구에서 손꼽히는 ㅎ건설업체가 짓는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장이다. ㅎ건설은 2007년 2월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분양이 제대로 안 되면서 공사 비용을 감당 못해 공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였다. 건설업체들이 분양률을 비밀에 붙이는 바람에 구체적인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이 지역 건설업계에서는 전체 300채 가운데 5%도 안되는 10채 정도가 분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 경산시 사동에서 아파트 건설 공사가 절반쯤 이뤄진 상태에서 중단돼 있다. 전체 500여 세대 가운데 50채밖에 분양이 안 돼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건설업체가 결국 손을 들어 내년 4월 입주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경북 경산시 사동에서 아파트 건설 공사가 절반쯤 이뤄진 상태에서 중단돼 있다. 전체 500여 세대 가운데 50채밖에 분양이 안 돼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건설업체가 결국 손을 들어 내년 4월 입주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봐도

#사례2 대구 수성구 파동에서 또 다른 ㅎ건설업체가 짓고 있는 아파트 현장은 2006년 2월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중단됐다. 계획대로 추진하면 지난 3월에 완공돼 입주했어야 하지만 현재 이곳은 그냥 텅 빈 공터다. 전체 370채 가운데 단 한 채도 분양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구 수성구는 명문 고등학교가 몰려 2년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무조건 분양되는 물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수성불패’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요즘은 범어동과 파동의 경우처럼 수성구에서조차 분양이 힘들다.

대구 전역에서 아파트 공사 현장은 300세대가 넘는 큰 곳만 해도 50곳이 넘는다. 대부분이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김종도 대구시 건축주택과장은 “규모가 작은 지역 건설업체들은 대부분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삼성, 포스코, 두산 같이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건설업체들도 공사 기간을 늦추거나 일시 중단하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분양이 어려워지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난다. 대구에서만 6월 말 현재 2만1600채가 넘는다. 2005년 3200채, 2006년 8700채, 2007년 1만2천 채 등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대구는 전국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가장 많은 곳이 됐다. 건설업체들이 회사 이미지를 감안해 분양률을 부풀려 발표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구 지역 미분양 아파트는 적게 잡아도 3만 채가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지역 건설업체들은 분양률 10%를 넘기기가 어렵다. 업체들은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전세 2년 후 분양’ ‘입주 후 잔금 유예’ ‘공개 청약접수를 피하는 깜깜이 분양’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보지만 효과가 별로 없다. 화성산업㈜ 황보성 홍보과장은 “건설업체들이 아파트를 너무 많이 짓는 바람에 공급과잉 현상으로 빚어진 결과가 아니겠느냐”며 “정부가 세제 감면 등 조치를 발표했지만 미분양 아파트는 오히려 늘어만 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굵직한 건 대형 건설업체가 독식

대구는 정부의 ‘주택 200만 가구 공급정책’에 따라 1990년 초부터 건설업체들이 호경기를 맞았다. 청구, 우방, 보성 등 이 지역 건설업체들이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7년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대부분의 업체들이 철퇴를 맞았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건설경기가 다시 일어 4∼5년 정도 호경기를 맞았다가 2006년부터 또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2006년 초 수성불패 신화가 처음으로 깨진 뒤 3년여째 바닥을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도로, 교량, 지하철, 빌딩 등 공사 일감도 덩달아 메말랐다. 대구건설협회 조사결과를 보면, 1997년 연간 3조8천억원을 웃돌던 지역 건설업체 공사 수주 현황이 지난해 말에는 1조9천억원으로 절반이나 뚝 떨어졌다. 이홍중 대구건설협회 회장은 “지역 건설업체 경기가 바닥이다. 10여 년 동안 대형 국책사업이 거의 없었고, 최근에는 아파트 경기마저 얼어붙어 지역 건설업체들이 벼랑 끝에 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회장은 “가끔 발주하는 지하철 건설공사 등 굵직굵직한 공사는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건설업체들이 독식하는 바람에 지역 업체들이 먹고살 길이 막혀버렸다”고 하소연했다.

대구에서는 매달 말만 되면 어느 건설업체가 직원들의 월급을 주지 못했다거나 어느 업체가 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는 등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건설업체 수가 2년 만에 20여 곳이나 줄어들기도 했다. 발 빠른 몇몇 건설업체들은 경기를 덜 타고 비교적 안전한 해외사업, 관급공사, 신재생에너지 사업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전업을 서두르고 있다. 우방, 화성과 함께 지역 3대 건설업체로 꼽히는 ㈜태왕 권준호 사장은 “규모가 큰 업체들은 앞다퉈 비용과 인원을 줄이고 있으며, 소규모 업체들은 차례로 문을 닫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대구뿐만이 아니다. 부산, 대전, 광주 등 다른 지방 도시들도 건설경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토해양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한 달 새 1만3천여 채가 늘어나 14만7200채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87%가 지방에 몰려 있다. 반면 수도권은 한 달 만에 4.4%나 미분양이 줄어들었다. 지역별로는 대구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가장 많지만 경남(1만7300채)과 충남(1만6750채), 경북(1만3813채), 부산(1만1542채), 강원(1만1246채) 등지도 만만찮다. 부산에서는 면적 1천㎡가 넘는 대형 건물 27곳이 건설업체의 자금난 등으로 도심지에 공사가 중단된 채 흉물처럼 버티고 서 있으며, 대전에서는 시내 사무실 5곳 가운데 1곳이 세를 놓지 못할 만큼 부동산 거래가 뜸하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건설경기가 비교적 괜찮다고 알려진 광주에서도 몇몇 지역의 아파트가 완공을 했지만 입주민이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지방 도시 가운데 가장 잘나갔던 울산도 올해 들어 건설업계에서 “힘들어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울산 지역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1∼2년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초기 분양률이 50%를 넘어섰지만 올해 들어 30%를 채우기도 힘겹다”고 밝혔다.

“내년 하반기까지 회복 힘들 것”

지방의 건설경기는 언제쯤 풀릴까?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부동산경제연구원 김영욱 원장은 “정부가 세 차례나 대책을 발표했지만 모두 수도권 위주로 짜여 지방에서 건설경기가 회복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며 “앞으로 특별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내년 하반기까지 건설경기가 회복되기는 힘들다”고 내다봤다. 남동희 계명대 부동산정책대학원 교수도 “업계에서는 내년쯤 건설경기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접어들 조짐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며 “건설경기가 회복되는 데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놨다.

대구=글 구대선 기자 한겨레 지역부문 sunnyk@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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