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일본은 흔히 열도로 불린다. 하지만 일본은 교통에서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한 지 오래다. 혼슈와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 등 4개의 주요 섬이 모두 철도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도로는 아직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철도가 국가기간 교통망을 차지하고 여기에 도로를 결합한 ‘철도국가’인 것이다. 일본 본토 최남단 역인 규슈 가고시마현의 니시오야마역에서 최북단 역인 홋카이도의 와카나이역까지 거리는 3126km, 요금도 5만1450엔(약 50만원)이 넘는다. 쉬지 않고 환승하면 30시간22분이 소요되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빨리 가도 2박3일이 걸리는 이 종단철도를 따라가면서, 국가 교통의 핵심을 철도로 삼고 살아가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어린이·노인의 이동 책임지는 간이역
철길로 일본 국토 종단 대장정을 이어가는 출발은 가고시마현 최남단의 작은 간이역인 니시오야마역에서 시작된다. 이 역은 일본 본토 최남단 역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무척이나 소박하다. 역무원은 물론 제대로 된 건물도 없다. 하루 다섯 차례 오가는 2량짜리 지방 보통열차가 전부이고, 플랫폼 가운데 ‘일본 최남단 역’이라는 표지와 전국 각지까지의 철도 거리를 표시한 안내판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이다.
이 역은 일본의 두메산골이나 시골 해안선 철도 노선에서 흔히 마주치는 간이역의 전형을 보여준다. 일본에는 수많은 간이역이 있다. 1량이나 2량짜리 열차에 주민들은 몸도 싣고 마음도 실으며 살아간다. 간이역과 지선 철도망은 일본 철도의 실체이자 바탕이라 할 수 있다. 교통에서 소외돼가는 지역 주민들의 삶과 이동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없거나 운전을 하기 곤란한 어린이, 학생, 노인 등의 이동을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는 것이 일본 철도다. 경제성의 잣대로 지역 노선과 간이역을 폐지하는 우리 현실에서 되짚어볼 대목이다.
니시오야마역에서 시골 열차를 타면 이브스키역에서 특급으로 갈아타게 된다. 이 도시는 모래찜질 온천으로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곳이다. 이브스키에서 탄 특급은 다시 가고시마현 도심에 있는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신칸센으로 갈아탄다. 일본은 세계에서 고속열차망을 가장 먼저 실현했다. 교통량이 충분한 노선을 중심으로 고속철도망을 건설하고 이를 간선 및 지선 철도망과 체계적으로 연결해 국가기간 교통망을 운영하고 있다.
구마모토현의 신야스시로역에서 다시 특급으로 갈아타면 규슈의 중심지이자 일본에서 네 번째 도시로 꼽히는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에 닿는다. 이 지역의 거점역인 하카타역에 와보면 일본이 철도 중심 국가라는 사실을 확실히 체감하게 된다. 하카타역을 비롯해 서일본을 대표하는 오사카역, 중부 지역의 나고야역 그리고 도쿄역을 거쳐 동북 지방의 센다이역과 홋카이도의 삿포로역까지, 각 지방의 거점역에는 신칸센부터 특급·급행·보통·완행까지 하루 수백 편의 열차가 나가고 들어온다. 역마다 대부분 20개가 넘는 플랫폼이 이용되고 있다.
하카타역에서 다시 신칸센을 타고 오사카로 들어가면 도착역은 신오사카역이다. 관서지방을 비롯해 서일본의 중심도시인 오사카는 거점인 철도역도 두 곳이다. 신오사카역은 신칸센을 비롯해 특급과 급행, 보통 등을 아우른다. 오사카역은 신칸센은 없지만 명실상부한 서일본 교통의 중심역이다. 일본의 제2도시로 꼽히는 오사카의 철도교통망에서 심장과도 같은 역이다. 오사카역에서는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일본 철도의 역동적인 모습이 느껴진다. 새벽 5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까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일본은 자동차 산업의 강국답게 도로가 잘 연결된 편이지만, 국내의 교통 체계는 국가기간 교통망부터 산골 지역의 기초 시·군까지 철도가 기본적인 교통수단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메이지 시대의 근대화 때부터 철도를 건설했고, 태평양전쟁 이후의 고도성장기에도 철도 우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합의가 유지됐다. 일본은 장거리 출장이나 여행, 일상생활의 이동에서 철도가 도로보다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쭉 뻗은 신칸센과 간선·지선의 연결
오사카에서 신칸센으로 갈아타고 도쿄에 들어간다. 1964년 도쿄올림픽과 동시에 개통된 도쿄∼오사카 신칸센은 전쟁 이후 고도성장의 상징이자, 일본 교통의 상징이기도 했다. 일본의 경부선인 도카이선은 도쿄∼나고야∼오사카로 이어지며, 일본의 주요 3대 도시가 망라돼 있다. 도쿄역은 일본 철도의 정점이자 출발지다. 모든 철도선은 도쿄역을 중심으로 놓고, 나가면 하행선이고 들어오면 상행선이다.
도쿄에는 도쿄역 외에도 신칸센이 정차하는 우에노역과 시나가와역이 있으며, 이 밖에 교통 거점이 되는 신주쿠역과 이케부쿠로역 등 2개소가 더 있다. 이 역들에는 하루 수천 편의 열차가 오가면서 시민들의 발이 되고 있다. 일본의 심장 도쿄역에서 보면, 사통팔달인 철도 노선의 다양성과 그것에 기반한 편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기후변화의 시대에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국가적 의무에서도 일본은 이미 철도를 통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도쿄에서 북쪽으로 혼슈 최북 지역이자 동북 지역의 주요 광역지자체인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역까지 신칸센이 이어진다. 여기에서 현청 소재지인 아오모리역까지는 특급과 나머지 열차들이 다닌다. 아오모리역은 아오모리현의 교통 요지이자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철도망의 핵심 거점 중 하나다. 혼슈와 홋카이도는 아직 신칸센이 연결되지 않았으나 2015년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두 섬을 오가는 모든 열차의 출발·종착은 아오모리역에서 이뤄진다. 아오모리역을 출발한 열차는 세계적인 해저터널인 세이칸터널을 지나서 홋카이도로 연결된다. 이 터널은 53.85km의 해저 구간을 관통하는 터널로, 철도와 도로를 망라해 세계 최장 터널이다.
홋카이도로 들어간 특급열차는 홋카이도의 남쪽 관문이자 어업도시인 하코다테를 지나서 삿포로로 들어간다. 삿포로역도 다른 지역의 중심역처럼 홋카이도의 모든 철도망의 중심이다. 겨울이 한 해의 절반 가까이 되고 겨울엔 상상을 넘는 폭설이 일상인 홋카이도에서 철도는 도로와 비교가 안 되는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곳곳에 드넓은 평원을 자랑하는 일본의 곡창지대 홋카이도에서 철도는 시골 마을마다 연결된 그림 같은 노선을 자랑한다. 평원과 습지를 가로질러 가는 1량짜리 열차가 지긋이 철길 위를 미끄러져간다.
삿포로에서 특급으로 다시 북쪽을 향해 5시간가량 올라가면 일본 철도 최북단 역인 와카나이역에 도착한다. 일본 영토 최북단의 도시이자 철도 최북단인 와카나이는 위도상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북쪽에 있다. 사할린과는 약 15km 떨어졌다. 어업이 중심인 이 도시까지 철도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역 플랫폼 맨 끝에서 철길이 끝나고 그곳에 ‘일본 최북단 역’이라는 표지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어업 전진기지인 와카나이시에는 일본 최북단 역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만 하루 20~30명에 이른다.
일본에선 시골의 구석을 지나는 노선에서 철도 마니아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철도가 일상이자 삶이기 때문에 평소 가보지 못한 수많은 아름다운 간이역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열도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종단철도를 통해 바라본 일본 사회의 철도는 생활이자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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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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