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도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우리나라 정부가 한국고속철도(KTX) 사업을 추진하면서 프랑스의 테제베(TGV)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프랑스 철도는 유럽의 중심도시인 파리에서 동서남북으로 촘촘히 뻗어 있다. 국가기간 교통망으로 확실히 자리잡은 것은 물론이고 인접한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과도 철로로 연결된다.
파리에서 프랑스 각지로 뻗어가는 철로는 시내 6개 거점역에서 시작된다. 이 역들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프랑스 전역은 물론 유럽 각지로 뻗어간다. 독일과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동’역을 비롯해 스페인과 남서쪽 지역으로 가는 ‘몽파르나스’역, 그리고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리옹과 제3의 도시인 마르세유로 가는 ‘리옹’역이 있으며,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나 스페인 산악지역으로 연결되는 ‘오스테를리츠’역과 영국·네덜란드으로 연결되는 ‘북’역이 있다. 마지막으로 파리의 북쪽 지역과 노르망디로 연결되는 ‘생라자르’역이 있다.
6개 역에서 시작해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프랑스국철(SNCF)의 규모는 엄청나다. 2004년 말 기준으로 실제 사용되는 철도 노선의 길이는 2만8918km, 하루 운영 횟수는 1만3600회에 이른다. 2004년 여객 수송 인원은 9억4400만 명, 화물 수송량은 1억2070만t이다.
파리 6개 역에서 시작하는 철도망은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 전체로 이어진다. 해외에서 프랑스로 들어가려면 주로 비행기를 이용하지만, 인근 유럽 사람들은 대부분 비자 없이도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철도를 이용한다. 물론 도로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장거리 운전 부담과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랑스에서 철도는 국가 교통망을 넘어 유럽연합의 으뜸 교통망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 교통망의 맨 앞에는 TGV가 있다.
프랑스의 경부선이라 할 파리(리옹역)∼아비뇽∼엑상프로방스∼마르세유 노선을 따라가보자. 프랑스의 거점역이나 파리의 주요 역의 특징은 어디나 할 것이 개방형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대합실과 승차하는 플랫폼이 분리돼 있지 않고 단일한 공간 속에 배치돼 있다는 말인데, 이는 독일과도 비슷하다. 1년 내내 사람들이 붐벼 무질서한 것처럼 느껴지는 리옹역을 출발해 남쪽으로 2시간 남짓 가면 프랑스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프로방스 지역에 다다른다. 여기서 더 가면 아비뇽과 엑상프로방스를 거쳐 마르세유에까지 닿는다. 프로방스는 한국에서도 몇 권의 단행본으로 소개된 곳으로,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지방이다. 오랑주, 아비뇽, 아를 같은 도시에는 고대 로마 유적들이 즐비하고, 특히 엑상프로방스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손꼽는 곳이다.
공업도시이자 이민자가 많은 마르세유는 바다에 접해 항구까지 끼고 있어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도시다. 이런 분위기는 더 갈 것도 없이 마르세유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바로 접할 수 있다. 여기에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칸과 니스 등 유명한 휴양도시들도 마르세유에서 이어진 철길을 따라서 1시간 안에 모두 연결된다. 이렇듯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주변 주요 도시들이 TGV로 연결되고, 중소 도시나 시골 마을들과는 특급·급행·보통열차로 촘촘히 연결된다. 하루 이용객 100명 이하의 노선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철도가 국가기간 교통망 노릇을 하기까지는 1997년 전국의 모든 지방 정부와 프랑스국철 사이에 맺은 ‘지방철도지원협약’이 큰 구실을 했다. 지방 철도의 적자 노선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이 협약은 지방 노선의 운행 횟수나 서비스의 개선에 큰 도움을 줬다. 승객이 적어 적자가 나는 노선도 적절한 열차 횟수를 유지하며 운행을 계속해 지역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또 18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된 철로들을 현대화함으로써 열차 속도를 높여 TGV와의 연결이 원활하도록 했으며, 전체 철도망의 속도를 높이고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기차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게 하라이렇게 적자 노선을 살려 시골 마을에까지 기차를 운행하게 된 배경에는 1983년에 법제화된 ‘프랑스 국민 이동권’ 규정이 있다. 전국 어느 곳에 살더라도 프랑스 국민이면 언제라도 대도시로 일하러 나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이 법률이 제정되기까지는, 정부가 철도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동의가 있었다. 철도의 공공적 가치에 대해 사회가 합의하고, 이를 정부가 뒷받침하면서 ‘보조금을 지불해서라도 기차는 다녀야 한다’는 명제가 현실화된 것이다. 사실 TGV로만 설명될 수 없는 프랑스 철도의 핵심이 바로 이 대목이다. 공공성에 기반한 이런 정책이 있었기에 프랑스를 교통 선진국, 즉 지속 가능한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경영에 대한 고민은 깊다. 철도 노선을 운행하는 열차의 횟수는 승객량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 10여 명 정도의 승객밖에 없는 곳이라도 쉽게 노선을 폐쇄하지 않는다. 철도는 공공 시설물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국가의 지원과 보조는 당연한 것이다.” 프랑스국철 홍보부에서 일하는 장 폴 부레의 설명이다.
공공성을 강조하지만 효율이나 경영전략 등에 무관심하지도 않다. 한 예로, 프랑스국철은 인터넷 할인상품으로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20유로(약 3만3천원)짜리 기차표를 팔고 있다.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엔 도로 사용료만도 50유로가 넘는다고 한다. 속도가 훨씬 빠른 TGV가 가격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이는 잘 팔리는 노선에서는 더욱 많은 여객과 화물을 흡수하겠다는 영업전략이기도 하다. 또 이런 전략은 고유가 시대를 맞아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프랑스 철도의 또 다른 특징은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공공성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장치 개발을 위한 연구투자다. 이미 지방 열차 객차에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는데, 이를 고속철도 객차에까지 확대하려는 것이다. 프랑스국철은 이 사업을 그냥 ‘쇼’로 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노력을 들이고 있다. 세계적인 의상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루아가 설계한 TGV 대서양 노선 객차에는 자전거 보관 공간이 반영됐다. 인간이 도구를 통해서 실현한 가장 빠른 육상 교통수단과 가장 느린 교통수단이 이렇게 아름다운 공존을 이뤄가고 있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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