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8월13일, 기사를 쓰다 잠시 쉬고 있는데 ‘찌~찡’ 하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삼성카드 정혁준님 08월13일 13만3천원 입금 확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였다. “카드 결제일은 25일인데 벌써 메시지를 보내다니. 혹시 연체할지 모르니 먼저 알려주려나 보다. 역시 삼성은 다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보통 카드회사에서는 결제일 5일 앞뒤로 그런 문자를 보내는데, 결제일을 10여 일이나 남겨두고 ‘입금 확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가 온 것은 생뚱맞았다. 그래서 ‘1588-8700’으로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콜센터 직원은 “7월25일치가 연체된 것”이라며 “연체대금을 빨리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지난달에 연체했다면 왜 지금 문자를 보내나. 그리고 기자는 삼성카드를 쓴 일도 없었다.
신분 밝힌 적도 없는데 직업 알아
잠깐 동안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몇 달 전 아내와 같이 서울역 롯데마트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카드 가입을 권유받았다. 카드가 많으면 많을수록 신용점수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아내는 발을 떼지 못했다. 아내는 카드 가입자에게 선물로 주는 까만 손지갑을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내는 가입이 안 됐다. 이미 삼성카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의 이름으로 가입했다. 가입할 때 월급통장 번호를 갖고 있지 않아서 통장과 연결하지는 않았다.
그 뒤 삼성카드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내는 삼성카드를 종종 썼다. 교통카드 기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뚜레쥬르 빵집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어 아내는 빵을 살 때마다 삼성카드를 썼다. 인터넷에서 내역을 찾아보니, 교통요금과 빵값, 재산세 1회분이 결제됐다. 삼성카드로 재산세를 3개월까지 무이자로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아내는 말했다.
다시 콜센터 직원에게 “연체가 됐을 때 전화를 줬으면 갚았을 게 아니냐”고 말했다. 콜센터 직원은 “7월29일 1차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콜센터 직원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하루에 수십 통씩 ‘보도자료 확인 바랍니다’ ‘관련 사진 보내드립니다’ ‘△△△ 최아무개 팀장입니다’와 같은 업무 관련 문자에다 ‘요즘 많이 지치시죠’ ‘급한 필요자*금’ 등의 스팸 문자를 받는다. 바쁜 일이 겹쳐 며칠 동안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하면 아예 전체 삭제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때 삼성카드가 보낸 문자도 함께 날아갔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차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잘 체크하지 못한 기자의 실수였다.
연체가 20여 일이나 됐으면 연체 정보를 틀림없이 다른 카드사나 신용평가회사에 통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그렇다면 연체 정보를 은행연합회나 신용평가회사(CB)에 통보했나?” 콜센터 직원은 “8월1일 은행연합회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확인해보니,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은행연합회는 5만원 이상의 금액을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통보받고 있다. 카드사들은 보통 5만~10만원 이상을 5일(토·일요일 제외) 이상 연체할 경우, 신용평가회사와 다른 카드회사로 연체 정보를 통보한다. 연체자가 또 다른 카드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기자의 경우에도 이들 회사에 통보가 됐다.
연체는 개인의 신용점수에 가장 치명적이다. 신용평가회사와 금융회사들은 개인 금융거래 실적을 점수화해 신용점수를 계산한다. 신용점수는 보통 0~1000점으로 세분화하는데, 이를 100점 단위로 해서 10등급으로 나눠 구분한 것이 신용등급이다. 신용등급은 금융회사가 돈을 빌려주거나 카드를 발급할 때 신용도를 평가하는 잣대로 쓰인다. 한 시중은행 신용평가 담당자는 “신용평가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적용되는데, 신용 하락에 가장 큰 점수를 차지하는 것은 연체 정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연체 정보를 통보하기 전에 전화라도 한번쯤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물었더니, 콜센터 직원은 “고객에게 연체했다고 말하면 ‘그까짓 것 갖고 전화하냐’며 화를 낸다. 그래서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자를 보내는 시간에 전화를 해주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문자는 컴퓨터가 알아서 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은 신용점수에 대해 잘 모른다. 때문에 ‘소액을 좀 연체하더라도 갚으면 됐지, 뭐’라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소액이라도 연체는 자신의 신용점수에 영향을 미치고 금리와 대출한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과연 그럴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느긋하게 대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콜센터 직원은 잠시 뒤 다시 전화를 해 “그렇다면 통보된 연체 기록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어떻게 카드사가 공유하도록 된 연체 기록을 없앨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연체를 담당하는 사람과 통화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삼성카드 콜센터에서는 단기채권 관리 부서인 ‘해피콜센터’의 아무개 과장을 연결시켜줬다. 그에게 똑같은 얘기를 했더니, “소비자보호팀과 협의해 연체 정보 통보 전에 고객에게 전화로 확인시켜주는 방법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삼성카드 홍보실의 한 직원한테 전화가 온 것이다. 삼성카드 직원에게 기자라는 신분을 밝힌 적도 없었는데, 홍보실 직원이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한 것이다.
신분이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드사 직원들이 신상정보 하나하나를 모두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업과 평균소득, 자가 유무 등등 개인정보가 카드사 곳곳을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삼성카드는 “콜센터에 전화하면, 카드번호와 주민번호 등 기본적인 정보만 뜬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문의하는 고객에 한해 그분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 직업과 회사정보 등 일부를 확인한다”고 해명했다. 삼성카드 홍보실 직원은 “(이 일에 대해) 기사를 쓰냐, 안 쓰나”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카드사마다 연체카드 사용 막는 판단 달라
이상한 일은 계속 이어졌다. 8월14일 연체 금액을 모두 갚았다. 그런데 그동안 잘 써왔던 현대카드가 그날부터 결제가 안 되기 시작했다. 현금입출금기에서 확인해 보니 ‘연체 중인 계좌임’이라는 메시지만 떴다. 연체 통보의 효력이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현대카드는 계속 결제가 안 되다, 20일 저녁에야 풀렸다. 그런데 은행카드인 ‘하나카드’는 같은 기간에 무리 없이 결제가 됐다. 두 카드는 왜 다른가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또 다시 확인해야 했다. 카드회사 연합체인 여신금융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여신협회에선 “카드사마다 연체 규정이 다르다. 은행카드의 경우 빚을 갚을 자산이 있다고 판단하면 카드 사용을 막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카드에선 “소액 연체일 경우 신용도에 따라 연체 통보가 오면 즉시 막는 경우도 있고 1~2주 동안 유예기간을 두는 경우도 있다. 고객 카드는 2주 정도의 유예기간을 뒀는데도 연체를 갚지 않아 결제를 막았다”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연체를 갚더라도 카드사에 정보가 오는 시간이 2~3일 정도 걸린다”고 덧붙였다.
취재 과정에서 다른 일부 카드사들도 삼성카드처럼 문자로만 연체 사실을 통보하는 것을 확인했다. 때문에 삼성카드가 억울하게 걸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 기사는 삼성카드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용카드사들이 고객들에게 보다 친절한 서비스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됐다.
8월20일 삼성카드에서 다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삼성카드 08/25(8/19 기준) 결제금액 16만5429원입니다 감사합니다.’ 혹 결제일을 못 지켰을 경우, “연체로 당신의 신용등급이 떨어질 모르니 연체금을 갚는 게 좋겠다”는 친절한 전화 서비스를 받아보고 싶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 대선 막 올랐다…초박빙 승패 윤곽 이르면 6일 낮 나올 수도
3번째 ‘김건희 특검법’ 국회 법사위 소위 통과
‘살얼음 대선’ 미국, 옥상 저격수·감시드론…폭력사태 대비한다
9살 손잡고 “떨어지면 편입”…대치동 그 학원 1800명 북새통
한양대 교수들 시국선언…“윤, 민생 파탄내고 전쟁위기 조장” [전문]
미국 대선 투표장 둘러싼 긴 줄…오늘 분위기는 [포토]
백종원 믿고 갔는데…“전쟁 나면 밥 이렇게 먹겠구나”
패싱 당한 한동훈 “국민 눈높이 맞는 담화 기대, 반드시 그래야”
로제 ‘아파트’ 빌보드 글로벌 2주째 1위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건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