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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바꾸고 ‘건국’하시라

등록 2008-08-1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뉴라이트 계열 추진위원회와 인물 겹치는 기념사업위원회… 정부 지원받아 행사 준비 예산만 279억원</font>

▣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대한민국 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이하 기념위원회)를 국민 합의 없이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은 위헌이다.”

8월7일 오전 11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55개 시민단체가 헌법재판소 앞에 모였다. 이들은 이종걸 민주당 의원 등 75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정부가 다가올 8월15일을 광복보다는 건국이 강조되도록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로 노골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의 건국 60년 기념행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념위원회가 추진하는 사업이 국민투표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최소 180일이 걸리는 만큼, 지금 당장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을 중지하기 위한 ‘사업 중지 가처분 신청’도 함께 냈다.

이게 그거고 그게 이거인 전시회들

이들이 위헌을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하는” 헌법 영토조항 선언과 달리 남한 단독 수립 정부를 인정함으로써 북한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 개정 사항이다. 그러므로 셋째 ‘건국 기념 사업’을 추진하려면 헌법 개정 요건(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념위원회는 지난 5월20일 출범했다. 기념위원회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모여서 지난해 11월 만든 민간단체 ‘건국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의 변종이다. 우선 일부 위원들이 겹친다. 추진위원회의 공동추진위원장 세 명 중 두 명인 이인호 카이스트 석좌교수와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기념위원회의 고문으로 참여했고,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과 이철승 헌정회 회장 등은 양쪽에 고문으로 있다. 추진위원회의 주요 사업은 기념위원회에서 이어받았다. 김영호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건국기념관 건립운동을 진행했지만, 사실 자금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 어려움은 기념위원회가 예산 13억원을 배당해 건국기념관 건립을 추진함은 물론, 한국 현대사 전시만을 위한 현대사박물관 건립까지 주요사업으로 정하면서 해소됐다.

기념위원회의 행사들은 과잉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시사업이다. 기념위원회가 개입해 진행하고 있는 건국 60주년 관련 전시만 다섯 가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최하고 기념위원회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 외국 교과서의 한국 이미지 기획전시’(8월1~12일), 국가기록원이 주최하는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 국가기록 특별전’(8월5~31일), 국립민속박물관이 주관하는 ‘그 고난과 영광의 순간들’(7월29일~9월15일)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다. 이외에도 ‘한국현대사진 60년 1948-2008년’이 8월15일 시작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아예 대대적으로 건국기념역사관을 건립해 ‘건국’을 주제로 한 전시를 상설화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경기 과천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관 2층을 개조해 1945년부터 2008년까지의 건국 관련 사료를 전시한다.

“‘만들어낸 역사’를 획일적으로 전시”

이 모든 전시의 주제는 ‘건국’이고 전시 순서는 시대순이다. 항일운동 기간은 당연히 빠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945~48년 건국 시기에 국가를 상징하는 자료와 의식주 생활자료, 대중문화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역사를 ‘광복·건국·전쟁’ 등 건국 시기와, ‘경제·발전·절약’ 등 산업화·민주화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역시 건국 시기, 산업화 시기, 민주화 시기 등으로 구분해 관련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건국기념관 건립 사업을 준비 중인 한 연구원은 “서울은 물론이고 광주, 경기 성남 등 지역별로도 ‘건국’을 주제로 한 비슷한 전시들이 넘쳐난다”며 “모두 1950년대는 전쟁과 피해, 1960~70년대는 개발과 산업화, 1980년대는 민주화, 2000년대는 부흥기로 구분해 국가 발전의 맥락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비슷한 전시들이 너무 많아서 과연 건립기념관을 차별화한 전시관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심지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대한민국 60년을 기념한 기획전시인 ‘외국 교과서의 한국 이미지 기획전시’도 “다른 건국 60주년 전시와 차별점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콘셉트는 ‘교과서’였지만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에서 시작해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의 얼굴로 끝난다는 것. 이 연구자는 “예전에는 모두 ‘광복, 광복’ 했다면 지금은 모두 ‘건국, 건국’ 한다”며 “역사라는 것이 정권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도 “정부가 산업화, 근대화를 띄우기 위해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는 정부 주변 단체를 동원해 ‘만들어낸 역사’를 획일적으로 전시하고 있다”며 “‘건국’을 1948년이라고 봄으로써 1948년 이전의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역사 해석에 대해 학계나 국민 일반의 공감대도 형성하지 않고 권력을 이용해 홍보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국가 주도의 ‘역사 만들기’는 홍보 예산만 봐도 알 수 있다. 건국 60주년 캠페인 광고 예산은 기념위원회와 문화관광부 둘로 나뉘어져 잡혀 있다. 기념위원회는 지난 60년을 기념하는 캠페인을 8월 한 달간 진행한다. 9월부터는 문화관광부 홍보지원국에서 미래 비전에 관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기념위원회 한 달 예산은 10억원, 문화관광부 홍보지원국에서의 예산은 13억원으로 모두 23억원이 ‘건국 60주년’을 홍보하는 데 쓰인다. 당초 5월 기념위원회가 펴낸 자료를 보면 광고 예산은 2억5천만원으로 책정돼 있었지만, 두 달 만에 광고 예산만 20억원대로 10배가량 늘었다. 국가 차원에서 방송, 신문 등 매체를 통해 ‘건국’을 적극적으로 홍보함에 따라 ‘역사 만들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광고 예산 2억5천만원이 두 달 새 20억원으로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기념위원회에 전체적인 예산 운용 내역 등을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자료를 주지 않았다”며 “동북아 역사재단의 1년 예산이 100억원인데, 국가적 합의도 없는 건국 6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데만 예산이 279억원”이라며 “예산 낭비라는 이야기를 안 들으려면 어떤 행사를 준비하는 데 얼마씩이 드는지 등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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