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회장의 눈물에 비장한 삼성맨들, 옛 구도 그리며 지배구조 개선 의지 없어
▣ 김영희 기자 한겨레 경제부 dora@hani.co.kr
김석원 쌍용그룹 전 회장의 법정구속 소식이 전해진 7월3일, 삼성 전략기획실의 임원이었던 한 고위 관계자는 “가슴이 덜컥했다”고 말했다.
오는 15일 전후로 예정된 이건희(66) 전 회장 선고 공판을 앞두고 삼성의 분위기는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전략기획실 해체와 새로운 독립경영 체제 출범을 선언했건만, 일상적인 비즈니스 이외의 행보는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7월 상순께 있을 것으로 이야기됐던 이윤우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의 첫 기자간담회도 재판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이건희 전 회장이 눈물을 비친 지난 7월1일 공판 이후 삼성의 분위기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밖에선 재판과 상관없이 하던 대로 하면 그만 아니냐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삼성 관계자들은 말한다.
삼성전자·삼성생명에 ‘조직’ 생길까
삼성 안에서 ‘삼성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이건희 회장’이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창업자 집안에 대한 존경심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이런 인식 때문에 결국 새로운 체제 또한 ‘과도적 체제’로 간주해버리고, 총수 일가를 위한 계열사 경영 간섭의 모습이 슬그머니 다시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은 좀체 지우기 힘들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 전략기획실은 완전히 해체됐다. 서울 태평로 본관 26~27층의 전략기획실 임직원은 대부분 이사를 나가고 27층 옛 인사팀 공간에 사장단협의회 산하 업무지원실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임원은 “전략기획실이 해체된다 하니까, 당장 그림 대여업체가 와서 임원들 방 그림부터 떼가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장과 각 팀장의 부재·재실 여부를 알리던 ‘부재등’도 사라졌다. 남아 있는 이들은 업무지원실의 14명 정도. 조직으로는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비상설로 브랜드관리위원회와 투자조정위원회가 신설된 정도다. 지난 7월2일 첫 회의를 연 사장단협의회는 협의회가 ‘의사결정기구’가 아님을 강조했다. 계열사의 판단과 상충되거나 법적 논란이 일 소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오너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브랜드를 공유하는 느슨한 연방 체제’인 전후 일본의 기업집단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아직 독립경영 체제가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재무, 기획, 경영진단과 같은 삼성 특유의 조직과 기능을 어떤 형태로든 가져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게 소그룹 사장단의 역할이다. 재무나 기획, 인사 같은 기능을 부문별 소그룹 내에서 맡아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를 들어, 전략기획실의 인사팀을 이끌던 정유성 전무와 인사팀 사람 몇몇은 삼성전자로 이동했는데, 삼성전자 내 최도석 경영지원총괄 사장 아래 인사팀은 이미 전무급이 맡고 있는 상태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런 인사팀들이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테크윈 등 전자 계열 업종의 인사 자료를 만들어 소그룹 사장단 회의에 올리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재판에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가장 애착이 가는 기업으로 꼽았듯이, 두 회사가 전자와 금융 소그룹의 중심이 되고 두 회사 안에 전략기획실의 기능 일부를 수행하는 조직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재계 최강으로 불리던 홍보의 경우, 수장이던 이순동 사장과 윤순봉 부사장이 제일기획과 삼성물산으로 옮겼지만, 각각 브랜드관리위원회 위원장과 장기 전략을 고민하는 브랜드전략팀장을 맡아 긴밀한 협조 아래 일을 처리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도요타가 미쓰이의 산하 계열사라는 인식을 아무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삼성 계열사의 독립경영 체제가 진전되기는 힘들 것이란 얘기다.
‘총수-전략기획실-CEO’ 애착 못버려
사장들이 얼마나 능력과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아직 의문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솔직히 지난번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때 삼성중공업을 보며 전략기획실의 부재를 절감했다. 예전 같으면 그룹에서 다 나서서 처리해줬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손놓고 앉아 아무것도 안 하더라”라고 말했다. 사장들의 ‘트레이닝’도 문제지만, 구조적으로 삼성 계열사 사장들이 완전히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권한이 주어졌는지 자체가 의문이다. 원칙대로라면 사장의 교체도 이사회와 주총에서 결정할 사항이지만, ‘대주주’인 이건희 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 이는 없다. 다만 그 통로였던 전략기획실이 사라졌을 뿐이다. 사장 선임과 관련해서도 한 고위 관계자는 “사장단 안에도 다 서열이 있고 순서가 있다. 물론 외부에서 사장을 공모하겠다는 회사가 나오려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장단협의회 안에서 자연스레 결정돼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전의 ‘총수-전략기획실-전문경영인’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효율성에 대한 애착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첫 사장단협의회에서 “삼성이 리더십, 먹을거리, 브랜드의 위기라는 삼중 위기에 직면했다”고 한 말도 선장(총수)과 방향타(전략기획실) 상실에 대한 강한 아쉬움으로 읽혔다. 심지어 한 삼성 관계자는 “삼성 밖에서도 자꾸 ‘조직’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하는데, 언제쯤 가능할까?”라는 말을 슬쩍 털어놓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삼성 쪽이 여전히 지배구조 해법에 대해 ‘계속 연구 중’이라며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주회사 전환에 20조원 가까운 돈이 드는데다, 지주회사라는 체제 자체가 삼성엔 별 메리트가 없다는 게 삼성 쪽의 주장이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 같은 이들도 지주회사 전환이 ‘절대선’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삼성이 지배구조 해법을 유보하는 것은, 결국 이재용 전무가 국외 근무지를 돌며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아 명분을 쌓은 뒤 돌아올 때까지 이 문제를 미뤄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재용 경영수업’ 끝날 때까지 버티기?
이건희 전 회장은 1일 공판에서 “회사 주인은 주주고 나는 완전히 경영자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 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여전히 ‘삼성의 주인’은 이건희 전 회장이다. 아이러니지만, 뉴 삼성의 독립경영 체제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독립경영에 대한 이건희 전 회장의 강력한 심중이 전달되어야 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이 또한 재판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어 삼성의 불투명한 나날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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